박병환 유라시아전략연구소장/전 주러시아 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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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대통령의 영국 여왕 장례식 참석 및 유엔총회 참석차 뉴욕 방문과 관련해 야당과 일부 언론은 외교 참사가 발생했다고 날을 세웠다. 급기야 국회에서 외교부 장관 해임건의안이 통과됐고 여진이 계속되고 있다. 구체적으로 굴욕적인 대일 외교’ ‘48초짜리 정상회담’ ‘영국 여왕 조문 불발등이 지적됐다. 윤 대통령의 비속어 발언은 논외로 하고 이번 순방과 관련해 대통령실 관계자의 발언이 왜 문제인지 그리고 다자회의에서 정상회담 추진에 있어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를 살펴보고 여야를 막론하고 외교 성과에 대한 강박증이 있음을 지적하고자 한다.

첫째, 대통령실 고위관계자는 기시다 총리와의 회담에 대해 일본 측이 흔쾌히 동의했다라고 하고 바이든 대통령과의 회담에 대해서는 어떤 식으로든 이루어질 것이라고 발표했는데 나중에 보니 상대방과의 합의가 없거나 불확실한 상태에서 나온 말이었다. 외교의 세계에서 발표는 상대방과 토씨까지도 합의하고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고위관계자의 설명은 한마디로 어처구니없는 수준이었다. 무엇보다도 고위관계자 발언은 정부에 대한 비난을 자초했다. 유엔총회에는 수많은 정상이 참석하는데 각자 많은 일정이 있어 차분하게 정상회담을 하는 것이 쉽지 않으며 성사 가능성도 유동적이다. 처음부터 그렇게 설명했더라면 야당과 일부 언론의 질책이 나오지 않을 수도 있었는데 기대 수준을 높여 놓은 결과 사람들로 하여금 무언가 실패했다는 인식을 갖게 했다. 고위관계자의 브리핑은 다자외교 현장에 대한 감도 없고 정무적 센스도 없는 수준이었다. 그러한 어설픈 브리핑이 사전에 걸러지지 못했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번과 같은 사태는 또 일어날 수도 있다.

둘째, ‘정상회담에 대해 여야 모두 경직된 생각을 갖고 있는 것 같다. 일반적으로 정상회담이라고 하면 양측이 사전에 충분한 시간을 갖고 이것저것 협의해 정하고 격식도 갖춰 개최하는 회담을 말한다. 그런데 다자회의에서는 그러한 정상회담도 개최되지만 모두가 분망한 상황에서 짬을 내어 대화를 갖는 것이 오히려 일반적이다. 그런데 정부는 회담이라는 표현에 집착하고 야당은 회담을 무조건 격식을 갖춘 회담으로만 생각하고 그러한 수준이 아니면 외교가 실패했다고 정부를 몰아세운다. 사실 다자회의에서는 정상회담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말고 정상 간 대화또는 정상 간 만남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본다. 이번 한일 정상 간 대화에 대해 일본 측은 간담(懇談)’이라고 표현했는데 우리 쪽은 어떻게 해서든지 회담으로 하고 싶은 마음에 약식회담이라고 우기는 촌극이 벌어졌다. 우리가 일본 측보다 무게 있는 용어를 고집하는 것은 우리가 지고 들어가는 것이다. 다자회의에서의 정상회담과 관련해 특히 지적할 것은 다자행사에 미국이나 일본 정상이 오면 반드시 별도로 만나야 하는 것으로, 만나지 못하면 무슨 큰일이라도 나는 것처럼 생각하는 점이다. 다자회의에서의 정상회담에 대해 의연한 태도를 보였으면 좋겠다.

셋째, 정상 외교에 대해 반드시 가시적인 성과가 있어야 한다는 강박증이 심한 것 같다. 야당이야 정치적 목적에서 그러한 주장을 하겠으나 언론이 그런 태도를 보이는 것은 안타깝다. 우선 외교의 세계에서는 성과를 거두는 데 때로는 몇 년 정도의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그리고 외교는 상대방이 있는 바 일방이 이익을 보는 일은 매우 드물다. 일반적으로 정상회담의 결과는 양측이 외교적 수사로 두리뭉실하게 표현한다. 그런데 한국은 정부가 매번 성과를 내세우려 하고 언론은 성과를 주시한다. 그러다 보니 정상회담에 맞춰 정부 차원은 물론 민간 부문에서의 합의서 서명까지 늦추거나 서두르도록 종용하기도 한다. 우리가 성과를 거두었다면 상대방은 무언가 손해를 봤을 수도 있다. 성과를 떠들면 상대방은 무언가 손해를 본 것 아닌가 하고 경계심을 갖게 될 것이다.

넷째, 영국에 가서 여왕의 관을 보지 못했다고 해서 야당은 조문이 완전하지 못했다고 몰아세우고 정부와 여당은 영국 외교장관이 참배 불발에 대한 언급 없이 한국 대통령이 조문하러 와주어 고맙다고 했으니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반박하고 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하면 양쪽 모두 밑바탕에는 사대주의적 사고방식이 깔려 있는 것은 아닐까? 대통령이 영국까지 가서 조문록에 서명하고 장례식에 참석했으면 된 것 아닌가?

다음 달이면 윤 대통령은 인도네시아에서 열리는 G20 정상회의에 참석할 것이다. 지난 60년간 온 국민이 노력해 경제적으로 한국은 세계에서 손꼽히는 나라가 됐고 정치적으로 민주화도 이루어냈다. 이제 외교의 세계에서도 달라진 모습을 봤으면 좋겠다. 한 마디로 세련된 모습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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