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 서면 조사 사실상 거부해
與 “전직 대통령도 성역 없어”
野 “직권남용으로 고발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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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연합뉴스) 문재인 전 대통령이 29일 경남 양산시 평산마을 사저에서 이재명 대표 등 더불어민주당 신임 지도부의 예방을 받고 대화하고 있다. 2022.8.29 (더불어민주당 제공.)

[천지일보=이대경 기자] 문재인 전 대통령이 감사원의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 서면 조사 요구를 거부한 가운데 여야가 정면충돌 조짐을 보이고 있다. 국민의힘은 “전직 대통령이라고 사법·감사에 성역이 있을 수는 없다”며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고, 민주당은 감사원을 향해 “직권남용으로 고발하겠다”고 맞받았다.

3일 정치권에 따르면 감사원은 최근 문 전 대통령 측에 이메일과 전화 등을 통해 서면 조사에 응하라고 통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문 전 대통령은 “대단히 무례한 짓”이라고 언급하며 사실상 서면 조사를 거부했다고 더불어민주당 윤건영 의원이 전했다.

윤 의원은 이날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상황을 상세하게 설명했다. 그는 “감사원은 평산마을 비서실로 전화해 서면 조사를 요청했고, 이에 비서실은 감사원이 조사하려는 내용이 정확히 무엇인지 확인을 요청하며 질문서 수령을 거부한다는 의사를 밝혔다고 한다”며 “이후 감사원은 다시 비서실로 문 전 대통령의 이메일을 발송했고, 비서실은 30일 이를 반송했다”고 전했다.

윤 의원은 “당초 감사원의 권한이 아닌 것을 하자고 하는 것이라 당연히 거절하는 것이 맞고, 만날 필요도 없고 메일에 회신하는 것도 적절치 않아 한 것”이라며 “반송은 수령 거부의 뜻”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간접적으로 확인한 바에 따르면 감사원 서면조사는 감사원장의 결재를 득한 것으로 보인다”며 “감사원의 정치적 중립을 내팽개치고 권력의 하수인을 자처하고 나섰는데 진상을 밝혀야 한다. 배후 세력이 있다면 명명백백히 밝히겠다”고 말했다.

민주당 윤석열 정권 정치탄압 대책위원회는 이날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감사원은 무엇을 조사하겠다는 건가. 해당 사건과 관련해 이들은 아직 서훈·박지원 전 국정원장도 조사하지 않은 상태에서 그 윗선인 대통령에게 불쑥 질문서를 들이밀었다”고 주장했다.

위원회는 “감사원은 올해 하반기 34개나 되는 특정사안감사를 새로 개시하면서 감사위원회의 개별 의결도 거치지 않았다”며 “감사 방법도 특수부 검찰수사를 방불케 하며 말이 특정감사지, 문 정부의 모든 사안에 대한 포괄적 감사로 감사원이 감사권을 남용하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범계 위원장은 “윤 대통령이 휘두르는 칼날은 결국 윤 대통령의 발등에 꽂힐 것”이라며 “윤석열정부의 정치 탄압에 대한 범국민적 저항운동을 제안한다”고 밝혔다. 민주당 박성준 대변인도 지난 2일 “퇴임한 대통령을 욕보이기 위해 감사원을 앞세운 정치보복에 분노를 금할 수 없다”며 “국민이 진정 촛불을 들길 원하는 것이냐”고 언급하기도 했다.

이들은 기자회견 후 기자들과 만나 감사원에 대한 구체적인 고발 사유에 대해 “특정사안감사의 경우 말 그대로 특정 사안에 대해 좁고 특별히 진행하는 감사”라며 “반면 이번 감사의 경우 문 정부 사안과 관련 34개 분야로 광범위하게 돼 있어 포괄적 감사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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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일보 2022.10.03

이에 대해 감사원은 이날 보도자료를 통해 “해당 감사와 관련해 사실관계의 확인 등이 필요해 ‘감사원법’ 제50조에 따라 문 전 대통령에게 질문서를 작성했다”며 “감사 수행 과정에서 실체적 진실을 밝히기 위해 필요한 경우에는 전직 대통령에게 감사원장 명의의 질문서를 발부한다”고 반박했다.

감사원은 전직 대통령에 대한 질문서 발부 사례를 언급하며 “1993년 노태우 전 대통령, 1998년 김영삼 전 대통령에게 각각 질문서를 보낸 바 있으며, 노 전 대통령과 김 전 대통령은 질문서를 수령해 답변했고 감사원은 이를 감사 결과에 활용했다”며 “최근 들어서도 2017년 이명박 전 대통령, 2018년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각각 질문서를 전달하려고 했으나 두 전 대통령들은 질문서 수령을 거부해 감사원은 기존에 확보한 자료 등을 통해 감사 결과를 정리한 바 있다”고 설명했다.

감사원은 북한 피살 공무원 사건 실지 감사를 오는 14일 종료할 예정이다. 감사원은 “중대한 위법 사항이 확인된 사람들에 대해서는 실지 감사 종료 시점에 수사를 요청하고, 그 내용을 간결하게 국민들께 알려드릴 것”이라며 “향후 감사위원회의 등 내부 처리 절차를 거쳐 감사 결과가 확정되면 그 내용을 소상히 공개하겠다”고 말했다.

국민의힘은 ‘법 앞의 평등’과 ‘성역 없는 수사’를 강조하며 문 전 대통령과 야권을 향한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국민의힘 장동혁 원내대변인은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권력이 있다거나 전직 대통령이라고 해서 사법 또는 감사에서 성역이 있을 순 없다”며 “감사원은 감사원의 일을 하고, 수사기관은 그 일을 하고, 국회는 각자 일정으로 자기들의 할 일을 하면 된다”고 말했다.

장 원내대변인은 “(문 전 대통령은) 메일을 되돌려 보내며 ‘무례하다’고 불쾌감을 표시했다고 한다. 유족의 절절한 아픔과 고통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전직 대통령으로서 미안한 마음이 있다면 그와 같은 표현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그런 표현이 유족의 마음을 더 아프게 하고 가슴에 피멍이 들게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감사원이 공정하게 중립적인 감사를 할 것이고, 수사기관은 수사해나갈 것”이라며 “(야당이) 정치보복이라는 프레임으로 국정감사 공세를 말하는데 입으로만 민생, 국익, 국민을 이야기할 게 아니라 민생국감으로 임해주시길 당부드린다”고 말했다.

국민의힘은 또 문 전 대통령 서면조사에 “유신 공포정치가 연상된다”고 비판한 민주당 이재명 대표에게도 날을 세웠다. 이 대표는 지난 2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감사원이 문 전 대통령에 대한 서면조사를 통보했다는 믿기 힘든 보도를 접했다”며 “온갖 국가 사정기관이 충성 경쟁하듯 전 정부와 전직 대통령 공격에 나서고 있어 유신 공포정치가 연상된다”고 글을 올린 바 있다.

양금희 수석대변인은 논평에서 이 대표를 겨냥해 “범죄 리스크에 ‘도둑이 제 발 저린’ 감정이입의 전형일 뿐”이라며 “아무리 민주당의 정치가 정략적으로 비정하더라도 국민의 죽음을 두고 정쟁을 할 수는 없다”고 비판했다.

그러자 이 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취재진과 만나 “국민이 맡긴 권력으로 민생을 챙기는 게 아니라 야당을 탄압하고 전 정부에 정치 보복을 가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며 “정치는 국민과 역사를 두려워해야 한다. 국민 앞에 겸허해지길 바란다”고 반박했다.

당권주자인 김기현 의원은 페이스북에 “문 전 대통령은 지난 5년간 편협한 정당의 이념적 당리당략에 경도돼 국민의 생명은 뒤로한 채 김정은 위원장과 함께 호형호제하며 널리 북한을 이롭게 하는 데 앞장섰다”며 “이제 억지 변명은 그만하고 진상규명에 적극 협조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권성동 의원은 페이스북에 “문 전 대통령이 서면조사마저 ‘불쾌하다’며 반송했다고 한다. 적폐 청산 구호를 외치며 전임 정부를 털어댔던 과거는 유쾌한 일이고, 자신이 조사받아야 할 현재는 불쾌하단 말인가”라며 “민주당은 정부의 정당한 법과 절차 집행에 대해 ‘촛불을 들길 원하느냐’고 엄포를 놓고 있다. 국회의원이 되어서 법 대신 불부터 찾는다면 민주당은 헌법기관이 아닌 배화교(조로아스터교) 신자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라고 적었다.

대통령실은 관련 사안에 특별한 입장을 보이고 있지는 않다. 감사원은 독립적인 헌법 기관이고 서면 조사 결정도 감사원 자체 판단에 따른 것이라는 점을 강조함과 동시에 이전 정부에 대한 정치보복이라는 야권의 공세에 휘말릴 수 있다는 우려가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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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일보=박준성 기자] 국민의힘 주호영 원내대표가 2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국기에 경례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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