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정치체제 위상·대외관계 규명 사료

▲ 왼쪽부터 고분 발굴지 전경, 동경출토사진, 금동신발 세부 (사진제공: 전북대박물관)

토기류 40점·철기류 100점 이상 출토
금동신발, 타출기법 마름모모양 무늬
청동거울, 무령왕릉 출토품보다 앞서

[천지일보=박선혜 기자] 최근 가야계 고분군에서 권력 최고층이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금동신발과 청동거울이 출토돼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러한 유물이 가야계 고분에서 발견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특히 금동신발은 가야 문화권에서 처음 출토됐고, 청동거울은 왕릉급 고분에서 부장된 사례로는 삼국시대 최초로 판단되고 있어 중요한 역사적 가치를 지닐 것으로 조사단은 보고 있다.

전북대박물관 조사단은 남원시로부터 의뢰를 받아 유적 학술정비 차원에서 지난 5월 29일부터 남원 두락리․유곡리 고분군(전라북도 기념물 제10호)에 관한 조사ㆍ발굴을 진행했다.

조사 결과 이곳 고분군 중 대형분에 속하는 제32호 무덤이 봉분 지름 21m인 평면 타원형이며, 기반층인 화강암층을 평탄화해 정지한 후, 수혈식 석곽 2기를 시설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고분 중앙에는 주곽과 부장곽으로 이뤄진 2기의 석곽(돌로 쌓은 상자형의 공간)이 나란히 축조됐는데, 주곽은 길이 7.3m, 너비 1.3m, 깊이가 1.8m에 달하는 초대형이다. 이를 통해 주인공을 매장하는 시설인 주석곽(主石槨)과 껴묻거리를 넣는 공간인 부장곽(副葬槨)을 평행하게 별도로 설치한 ‘가야계 고분’으로 드러났다.

주석곽은 약 10×4m 크기로 마련한 구덩이에 석곽을 안치한 형태다. 또 부장곽은 5.8×1.4m 깊이의 구덩이에 석곽을 배치하는 모양으로 설치됐다. 둘 사이 간격은 35㎝다.

또 이 고분군에서는 금동신발과 청동거울이 발견돼 학계의 이목이 쏠린다. 가야계 고분으로 확인된 곳에서 이러한 금동신발과 청동거울이 발견되기는 이번이 처음이기 때문이다.

▲ 금동신발 파편 (사진제공: 전북대박물관)

금동신발은 주석곽의 함몰된 개석(뚜껑돌)에 의해 심하게 훼손됐다. 금실과 단면 방형의 금동 못들이 함께 출토됐으며, 타출기법의 능형문(마름모모양)이 새겨졌다는 점에서 익산 입점리유적, 나주 신촌리유적 출토 금동신발과 유사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금동신발은 가야문화권에서 처음 출토된 예로써 앞으로 이 지역 정치체제의 위상과 대외관계를 규명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청동거울은 지름이 약 17.8㎝ 정도의 크기로, 무덤의 주인공 머리 위에서 발견됐다. 보존처리 전이라 현재 정확한 문양 파악이 어려운 상태이지만, 전체적인 형태, 크기, 돌기, 구조 등에서 무령왕릉 수대경(국보 제161호)과 많은 공통점을 보이고 있다.

조사단에 따르면 이 청동거울은 무령왕릉 출토품보다 30년 정도 앞서 부장된 것으로, 전세품이 아닌 당대의 거울이 왕릉급 고분에 부장된 예로서는 삼국시대 최초라고 조사팀은 판단하고 있다.

이외에도 이 봉분에서는 토기류 40점, 금·은·금동 장식품을 포함한 철기류 100점 이상이 출토됐다. 제사에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는 말 머리뼈도 함께 발견됐다.

조사를 총괄한 김승옥 전북대 고고문화인류학과 교수는 “출토 유물로 미뤄보아 32호분의 연대는 5세기 후엽으로 보인다”며 “이 운봉고원 일대 삼국시대 정치체제는 고령의 대가야, 웅진기의 백제에 버금가는 강력한 고대국가를 건설했을 것으로 판단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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