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대 사회를 풍자한 해학 창극 ‘배비장전’이 새롭게 재구성돼 관객 앞에 나선다. 사진은 지난 ‘배비장전’ 공연 중 한 장면. (사진제공: 국립극장)

타령 없이 현대어 대사로 듣기 쉽게 재구성
줄거리 새롭게 각색… 캐릭터 성격 탈바꿈

[천지일보=박선혜 기자] 현대 사회를 풍자한 해학 창극 ‘배비장전’이 새롭게 재구성돼 관객 앞에 나선다.

국립창극단이 재미있고 감동이 있는 연말을 위해 21세기형 코미디 창극 ‘배비장전’을 오는 8~16일까지 국립극장 달오름극장 무대에 올린다.

이번 작품을 위해 한국 창작뮤지컬의 대모인 오은희 작가, 2008년 대한민국연극대상 등을 휩쓴 연극 ‘리어왕’의 연출자로 잘 알려진 이병훈 연출가가 손잡았다.

작품은 고고한 척 위선을 떨던 배 비장이 기녀 애랑의 유혹에 그 본색을 드러내는 과정을 담은 ‘배비장타령’에 기반을 두고 있다.

기존의 타령은 없다. 시공간적 배경은 조선시대 원작 그대로이나 극 중 인물들의 대사는 현대어에 가깝다. 창극 관람의 어려움 중 하나가 특유의 사설조와 고어체임을 고려해 뮤지컬과 영화 대본에서 명성을 쌓아온 작가 오은희가 나서서 대사 정리를 한 결과다.

오 작가는 창극의 특성상 현대적으로 손 봐서는 본연의 맛이 살지 않는 필수적인 표현이나 인용구만을 옛 언어로 했다. 그러면서 일부 어려운 표현은 대사 속에서 ‘뜻풀이’를 해주는 친절함까지 더했다.

줄거리는 소설 ‘배비장전’을 토대로 국립창극단이 해학과 풍자를 곁들여 활기차고 재미있게 재구성했다.

제주목사인 김경과 배 비장이 ‘정의현감 벼슬을 받는 것’과 ‘제주도민 모두가 보는 앞에서 벗은 몸으로 행차하기’라는 조건을 내걸고 내기를 한다. 현대 사회의 취업난, 승진난, 연예인 등의 공약을 연상하게 하는 대목이다.

애랑의 캐릭터도 완전히 탈바꿈했다. 예전의 애랑은 제주목사 김경의 명을 받아 작전을 수행하던 수동적 여성. 하지만 이번의 애랑은 자신이 유혹해보겠다고 직접 아이디어를 내는 적극적인 여성으로 변모했다.

또 1996년 판 ‘배비장전’에서 배 비장은 ‘정의현감’이라는 벼슬을 얻고, 애랑은 배 비장을 흠모하게 돼 그를 속인 것을 반성하는 엔딩이었다면, 이번 작품은 오로지 망신을 당한 희극적 정점에서 막을 내린다.

특히 배우 훈련에 정평이 나 있는 연출가 이병훈은 창극단 배우들의 연기를 자연스럽게, 차진 입담은 더욱 세련되게 구사하도록 했다.

이에 따라 각각의 인물은 현대적으로 재해석됐다. 배 비장은 융통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고지식한 공무원상, 기녀 애랑은 당차고 현명한 현대적 여성상으로 표현된다.

무대는 배우들이 둥그렇게 둘러앉아 연기하고 퇴장하는 열린 형식의 마당극적 구조를 도입해 신선함과 독특함을 더한다. 마이크를 사용하지 않아 육성의 생생한 질감을 오롯이 즐길 수 있는 가운데, 안숙선 명창의 작창이 진가를 발휘할 것으로 보인다.

또 국악기가 소리를 따르는 수성반주를 통해 배우의 연기와 소리의 즉흥성 더욱 돋보이며, 여기에 작곡가 황호준의 음악이 세련되게 입혀져 단순해 보이는 무대를 가득 메운다. 배우들의 재미있는 의성어와 의태어 등 비일상적인 소리도 즐거움을 더한다.

핵심 인물인 배 비장과 애랑은 더블캐스팅 됐다. 국립창극단의 간판스타인 남상일·박애리 커플과 신예인 김준수·이소연 커플이 서로 다른 색깔로 관객의 호흡을 맞춘다.

공연은 100분간 진행되며, 영어와 중국어로 자막 서비스된다. 티켓은 R석 5만 원, S석 3만 원, A석 2만 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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