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불교 조계종 진여원(회주 혜총·원장 남보타월) 소속 진여봉사단이 지난해 12월 21일 오전 부산 북구 구포시장 내에서 3000인분의 동지 팥죽 나눔 행사를 실시하고 있다. 왼쪽 앞에서 첫 번째가 남보타월 원장. ⓒ천지일보(뉴스천지)

14년째 동지 팥죽 나누며 지역봉사 실천

“가장 소외당하고 어려운 이웃들이 찾아오는 곳”
호국영령위령제, 구치소 수감자 개도 봉사 ‘눈길’

[천지일보 부산=백하나 기자] 지난해 12월 21일 오전 부산시 북구 구포시장 내 쌈지공원. ‘진여봉사단’이라고 적힌 노란 띠를 어깨에 두른 40여 명의 사람이 시장 바닥에 가마솥을 놓고 능숙하게 팥죽을 쑤기 시작했다. 이날 준비한 팥죽은 총 3000인분.

구수한 팥죽 냄새가 시장 안에 퍼지자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들었다. 어느새 시장 밖까지 줄을 길게 늘어트리고 선 사람들은 “어디서 나와 이런 좋은 일을 하느냐”며 반색했다.

“부처님 말씀을 꼭 설교로 전할 수 있는 건 아니에요. 이렇게 봉사를 하다 보면 저희 사찰이 어딘지 궁금해서 찾아오시는 분들도 여럿 있지요.”

14년째 동지 팥죽 나눔 행사를 실시하고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직할 포교원인 진여원(회주 혜총·원장 남보타월) 소속 진여봉사단의 모습이다.

남보타월 원장은 “1990년대부터 구포역, 자갈치 시장, 구포시장 등지에서 팥죽 나눔 행사를 실시해 오고 있다”며 “갈수록 성원이 더해져 올해는 팥죽 3000인분을 대접 할 수 있게 됐다”고 기뻐했다.

이날 행사에는 부산 북구 청장을 비롯한 지역 국회의원 등 유지들이 함께해 진여봉사단원과 봉사의 뜻을 교류했다.

이날 일일 봉사자로 함께한 황재관 부산 북구청장은 “진여원은 부산 북구에서 팥죽 나눔 행사는 물론 호국 영령을 위한 위령제, 무료급식 봉사 등을 진행하고 있다. 지역사회에서 좋은 일을 담당하고 있는 데 대해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봉사자들을 격려했다.

40명 남짓한 활동 인원을 두고 있는 작은 포교원인 진여원과 진여봉사단. 이곳이 14년째 봉사를 지속해 오면서 지역사회 발전에 기여하고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 구포2동 소재한 복합 상가 건물 4층에 입주한 진여원을 지난달 28일 찾았다.

진여원은 지난 1996년 처음 도반(道伴: 도를 닦는 벗)의 모임으로 시작했다. 실천 수행을 통해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워보자는 뜻에서 10여 명의 사람이 모인 것이 시초였다. 그러던 것이 이듬해인 1997년 발족, 포교원으로 공식화됐다. 창단 초기부터 급식 봉사를 시작한 진여원은 회원들의 집에서 음식을 만들며 봉사를 진행했다.

“처음에는 음식을 장만할 곳이 없어서 단원들의 집을 돌아가며 급식을 준비했었는데 어느 날은 집세를 못 내 쫓겨날 지경이 이른 적이 있어요. IMF 한파를 진여원도 비켜갈 수 없던 거지요. 그래도 저희를 기다려주시는 분들과의 약속을 생각하면서 새벽이면 시장에 나가 배추 우거지를 모으고 쌀을 얻어 주먹밥에 국을 만들어 급식을 했고 지금까지 한번도 빠지지 않고 단원들과 14년째 봉사를 해올 수 있었습니다.”

남보타월 원장이 전한 봉사에 대한 의지는 실천에 대한 깊은 철학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남보타월 원장은 “무조건 부처님께 구하는 신앙보다 실천을 통해 깨달아야 한다.

물질, 정신, 육체 등 자신이 갖고 있는 것으로 실천함으로써 가르침에 이를 수 있다는 데 회원들이 공감했다”고 말했다.

포교원의 이름인 ‘진여’는 불교에서 말하는 ‘인간의 본래 참 마음’을 말한다. 남보타월 원장은 “처음 어떻게 그렇게 큰 이름을 달고 봉사 일을 하느냐는 우려도 많이 들었다”며 “그 때는 멋모르고 지은 이름이지만 이제는 그 뜻을 이루기 위해 정진하는 진여원이 됐다”고 멋쩍은 웃음을 지어 보였다.

진여원은 10명의 회원이 모인 첫 달부터 구포역 등지에서 노숙자들에게 주먹밥을 나눠주는 무료급식 사업은 물론, 해마다 동지팥죽 나눔 행사를 실시했다. 지금은 정기적으로 소년원이나 구치소를 찾아가 선도 일을 해오고 있고, 다도교실을 통해 부처님 말씀도 나눈다.

이날 진여원 사무실 한편에는 수백 통의 편지가 쌓여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남보타월 원장은 “구치소에 있는 수감자가 매일 불경을 적어 편지를 보내온다”고 전했다.

이외에도 매년 북구 화명동 그린공원에서 순국선열들의 넋을 기리고 보훈 유가족들을 위안하기 위해 ‘2009 진여호국영령위령제와 보훈유가족 위안행사’도 진행한다. 비영리 봉사단체로 국가 인증된 진여원은 청소년이나 일반인에게 봉사 마일리지를 부여함으로써 봉사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남보타월 원장은 “불교에서는 받을 것을 생각하지 않고 베푸는 것이 목적이지만 실천을 통해 봉사의 의미를 깨닫게 하는 것도 우리의 일”이라며 “방법은 다르지만 선을 깨닫는 목적지가 같다면 봉사를 장려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14년을 쉬지 않고 달려온 진여원은 아직 목마르다.

남보타월 원장은 “정말 삶이 힘든 이웃들은 양로원이나 복지시설도 찾아가지 못 한다”며 “세상에서 가장 소외당하고 어려운 이웃들이 찾아오는 곳이 바로 진여원”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진여원은 가장 어두운 곳에서 빛이 되고 싶다고 말한다. 마치 더러운 연못에서 더 화려한 연꽃처럼 말이다. 진여원은 앞으로 ‘누구나 쉽게 찾아올 수 있는 도심 속에 법당’을 만드는 게 꿈이다.

“문턱 없는 법당을 만들고 싶어요. 누구나 쉽게 찾아와서 여가를 즐기고 진여원에서 희망을 나누며 부처님 말씀도 배울 수 있는 진여원을 만들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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