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겸 동국대 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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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간의 코로나19와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간 전쟁의 여파가 점차 세계적인 경제위기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인플레이션을 잡겠다고 미국이 금리를 계속 인상하면서 세계 각국은 금리 인상의 압박을 받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금리 인상 문제로 경제에 큰 부담을 느끼면서 고심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도 정치권은 겉으로 민생을 챙긴다고 하면서도 서로 흠집 내기 공방으로 세월을 보내고 있다.

정치·경제 이슈로 세상이 시끌벅적한 상황에서도 살인과 같은 흉악범죄는 여전히 우리 사회에 충격을 주고 있다. 얼마 전 신당동 역무원 살인사건이 발생하면서 스토킹 범죄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그런데 이 사건은 조금만 가해자를 주시했다고 한다면 살인이란 끔찍한 결과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란 안타까움이 남는다. 보도에 의하면 가해자는 이미 직위해제된 상태에서 스토킹 혐의로 1심 재판을 앞두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 사건이 발생하자 스토킹 범죄 대책이 미흡하다는 여론의 비판이 있었다. 그리고 수사당국도 사건의 중대성을 인식해 가해자 신상공개를 했다. 과거 피의자의 신상공개가 인권침해 논란을 일으키면서 연쇄살인범과 같은 흉악범죄 혐의자에 대해서도 신상공개를 하지 않음으로써 논란을 일으켰다. 그러나 헌법상 무죄추정원칙과 피의자의 개인정보보호라는 관점에서 신상공개를 하지 않는 것을 무작정 비판하기는 어려웠다.

흉악범죄자에 대한 신상공개를 금지하는 것이 피의자의 인권을 보호하는 것일 수 있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범죄로부터 국민을 보호해야 하는 국가의 책무와 범죄 발생상황에 대한 국민의 알 권리 보호차원에서 범죄혐의자의 신상공개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많았다. 양쪽의 견해를 고려해 국가는 범죄혐의자의 신상공개를 위한 기준을 마련했다. 신상공개제도가 피의자나 피고인의 인격권과 개인정보보호에 관한 권리를 침해할 수는 있지만, 이보다 더 큰 공익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면 기본권을 침해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우리나라는 전 세계에서 거의 유일하게 주민등록번호라는 국민 개개인의 개인식별번호를 운영하고 있다. 행정상의 목적으로 도입된 주민등록번호는 개인의 중요한 기본적 정보가 담겨 있고 이를 근거로 다양한 개인정보에 접근할 수 있다. 주민등록번호의 활용도가 높아서 과거 민간기업 등은 이를 수집해 다양하게 이용했다. 이렇게 수집된 주민등록번호들은 빅데이터가 돼 영리 목적으로 활용됐고, 이 과정에서 개인정보가 유출되면서 많은 국민이 피해를 입는 사고가 여러 차례 발생했다.

개인정보보호를 위해 2011년에서는 개인정보보호법을 제정·시행했지만, 개인정보수집에 명확한 규제조항이 없어서 민간기업을 중심으로 개인정보 유출사고가 빈번하게 발생하자 민간기업이 주민등록번호 등 개인정보를 수집하는 것에 대해 규제하기 시작했다. 그런 상황에서 개인정보보호법을 개정해 법에 규정된 것 이외에는 개인정보를 수집하지 못하도록 했다.

헌법재판소는 2005년 헌법에 명문으로 개인정보보호에 관한 권리를 규정하고 있지 않으나, 개인정보가 개인을 식별하고 알 수 있는 중요한 정보라는 점에서 이를 보호하고 활용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개인정보 주체만이 결정할 수 있는 것이란 점에서 개인정보자기결정권이 헌법에 열거되지 않은 기본권이라고 했다. 개인정보는 개인에 속한 모든 정보를 의미하기 때문에 인격권과 사생활을 위해서도 보호돼야 한다.

유럽연합은 20세기 말부터 개인정보보호를 중요한 인권으로 보고 이를 보호하기 위한 지침을 마련했고, 21세기에 들어와서는 유럽연합 인권헌장에 개인정보보호권을 인권으로 명문화했다. 오늘날 상당수 국가는 개인정보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이를 기본권 차원까지 격상해 보호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개인정보보호권이라 할 수 있는 개인정보자기결정권은 기본권으로서 최대한 보장돼야 한다. 우리나라는 익명이나 가명도 개인정보에 해당한다고 법을 개정해 보호하고 있다. 그런데 헌법은 절대적 기본권을 인정하지 않으며, 성범죄자에 대해서는 신상공개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그렇지만 다른 범죄에 대해서는 일정 기간이 지나면 범죄 기록도 삭제하고 있다. 개인정보는 보호돼야 하지만 범죄피해자 보호와 범죄예방을 위해 제한을 할 수 있다. 과거 저지른 범죄와 관련해 필요하다면, 공공분야에 국한해서라도 취업할 때 이를 해당 기관에 알리고 관리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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