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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관우 역사작가/칼럼니스트 

2022년은 백의정승(白衣政丞)으로 알려졌던 명재(明齋) 윤증(尹拯)의 백부(伯父)가 되는 석호(石湖) 윤문거(尹文擧)의 서세(逝世) 350주년이 된다. 그동안 다양한 인물의 생애를 칼럼을 통하여 소개하였는데 본 칼럼을 통하여 윤문거의 생애를 소개하는 것을 뜻 깊게 생각한다.

윤문거는 1606(선조 39)년에 탄생하였는데 그 생애를 본격적으로 다루기 전에 석호가 탄생할 당시의 시대적 배경을 살펴본다. 윤문거가 탄생한 1606(선조 39)년은 조선에 심대한 타격을 주었던 임진왜란(壬辰倭亂)이 발생한지 14년이 되는 해로서 선조(宣祖)가 승하(昇遐)하기 2년 전이었다.

윤문거는 선조 대에 탄생하여 광해군(光海君), 인조(仁祖), 효종(孝宗)을 거쳐 현종(顯宗)이 승하하기 2년 전에 생애를 마쳤는데 특히 석호의 연령(年齡) 31세에 발생한 병자호란(丙子胡亂)은 그의 인생에 있어서 중대한 전환점(轉換點)이라 할 수 있었다. 이제 본격적으로 윤문거는 조선에 어떤 발자취를 남겼는지 구체적인 생애를 소개한다.

윤문거의 본관(本貫)은 파평이요, 자는 여망(汝望)이요, 호는 석호로서 1606(선조 39)년 8월 26일 팔송(八松) 윤황(尹煌)과 우계(牛溪) 성혼(成渾)의 딸인 창녕성씨(昌寧成氏) 사이에 6남 3녀 중에서 4남으로 탄생하였다.

이와 관련해 석호는 윤황이 북청판관(北靑判官)으로 재임할 당시 관아(官衙)에서 탄생하였다는 점인데 1608(선조 41)년 선조가 승하하고 광해군이 즉위한 이후 팔송이 관직생활(官職生活)을 그만두고 노성으로 낙향할 때 그도 함께 간 것으로 생각된다.

여기서 윤문거의 가계(家系)를 소개하면 조부(祖父)는 윤창세(尹昌世)이고 증조부(曾祖父)는 윤돈(尹暾)이며, 고조부(高祖父)는 충청병마절도사(忠淸兵馬節度使)를 역임한 윤선지(尹先智)이다. 또한 윤문거는 가족관계라는 관점으로 볼 때 동토(童土) 윤순거(尹舜擧)의 동생이며 명재(明齋) 윤증(尹拯)의 부친이 되는 미촌(美村) 윤선거(尹宣擧)의 형이기도 하다.

이와 같이 윤문거는 명문가(名文家)의 후손(後孫)이라는 배경에서 성장하였는데 윤증이 지은 석호의 묘표(墓表)에 의하면 그는 어려서부터 침착하고 온화하여 보는 사람마다 옥인(玉人)이라 칭송하였다고 한다.

한편 1628(인조 6)년 논산시 노성면 병사리에 윤순거가 중심이 되어 문중사립학교(門中私立學校)라 할 수 있는 종학당(宗學堂)이 설립되어 경술국치(庚戌國恥)로 국권을 잃기 전까지 280년 동안 유지되었으며 이곳에서 문과 급제자가 42명이나 배출되었다는 것이니 그 위상이 대단하였다는 것을 엿볼 수 있는데 윤문거도 종학당에서 과거시험(科擧試驗)을 준비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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