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겸 동국대 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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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정부가 수립된 지 100일이 지났지만, 행정부는 아직 미완성이다. 입법부인 국회도 하반기 원구성으로 진통을 겪었다. 국민의힘은 아직 집권당으로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정권을 잡은 집권당이 정권 초기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하는 모습은 생경하기까지 하다. 그런가 하면 야당이 된 더불어민주당도 원내 다수당이지만 대선과 지방선거를 연이어 패배하면서 당을 쇄신하겠다고 당대표 선거에 들어갔다.

장기간의 코로나19로 민생경제는 인플레이션 위험 속에 놓여있고 금리와 물가는 계속 오르고 있다. 팬데믹에 이은 우크라이나 전쟁과 미국과 러시아·중국의 대립이 심각해지면서 세계 경제는 예측하기 어려운 국면에 접어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국정을 책임지고 있는 정치권의 혼란은 결코 바람직한 것이 아니다. 지금은 정치권이 대립을 중지하고 대한민국의 미래를 생각하며 민생을 챙겨야 할 시점이다.

우리나라는 근대화를 제대로 경험하지 못했으나, 군사정권의 독재적 드라이브에 힘입어 현대화를 어느 국가보다도 빠르게 진행했다. 오늘날 우리가 한류라는 이름으로 한국문화의 덕을 보는 것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오천 년의 역사 속에서도 주변 국가의 수많은 침략을 극복한 가운데 우리 문화를 지켜왔기 때문이다. 일제의 식민지도 6.25전쟁도 군사독재도 억척같이 극복하며 자유민주주의를 실현해 간 덕택이다.

우리나라는 한강의 기적이라 불리는 눈부신 경제발전으로 분단국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선진국으로 진입했다. 전통문화의 바탕에서 대중문화는 세계화를 선도하고 있다. 경제와 문화가 발전하고 정보통신분야의 눈부신 성장으로 사회도 급속하게 변화하고 있는데, 여전히 변화를 느끼지 못하는 분야가 정치이다. 검찰·사법개혁은 주장하면서도 정치는 스스로 개혁하지 못하면서 개혁의 대상임을 국민에게 보여주고 있다.

우리나라는 국가의 최고규범인 헌법을 정점으로 해 법질서를 구축하고 있는 법치국가이다. 헌법은 우리나라가 민주공화국으로서 국민이 국가의 주체이고 국민이 선출한 대표에 국정을 위임하는 대의제민주주의를 채택하고 있음을 밝히고 있다. 정치는 국가를 다스린다는 것을 뜻한다. 국민이 선출한 대표가 국정을 운영하는 대의제민주주의에서는 정치가 헌법에 합치되도록 해야 한다.

법치국가란 법의 지배를 받는 법적 통치를 받는 국가를 말한다. 정치는 가변적이고 자의적이어서 예측하기 어렵다. 법치국가에서는 헌법이 정치의 자유로운 영역을 보장하지만, 정치가 헌법을 넘어서 자의적으로 행사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국정의 방향을 정하고 정책을 수립하는 과정은 정치적이지만, 이를 구체화하는 과정과 그 결과는 법을 통해 실현된다. 국정운영이 투명하고 공정하기 위해서는 법에 근거하고 법을 준수해야만 한다.

법치는 정치의 자의성을 통제하기 위해 등장한 법의 원리이다. 법치가 제대로 실현되기 위해서는 법의 형식과 내용이 정의롭고 정당해야 한다. 법치가 실현되기 위해서는 법이 어떤 국가권력보다 우위에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그래서 입법부인 국회는 헌법을 준수하고 합헌적인 법률을 제정해야 한다. 또한 법을 적용하고 집행하는 행정부와 사법부는 헌법과 법률에 합치되도록 권한을 행사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분단국가로 분단된 지 80년이 가까워지고 있다. 그런데 대한민국은 여전히 사회주의에 기반한 인민민주주의공화국인 북한의 존재로 이제는 지구상에서 사라져 가고 있는 이념 갈등이 남아있다. 한반도 평화유지라는 관점에서 핵으로 무장한 북한과 공존해야 하는 우리나라의 어려움이 정치적 현실을 더욱 어렵게 하고 있다. 그렇지만 대한민국은 자유에 기반하는 민주공화국이다. 어떤 경우와 상황에서도 헌법이 규정하고 있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배해서는 안 된다.

정치권은 오랫동안 국민의 요구라는 점을 앞세워 검찰·사법개혁을 부르짖었다. 그리고 이번 국회는 공수처를 신설하고 검수완박이란 이름으로 검찰의 수사권을 박탈했다. 또한 부동산투기를 잡고 주택시장을 안정시키겠다고 부동산관련법들을 수차례 개정했다. 그러나 현실은 국회의 입법과 다르게 가고 있다. 헌법을 무시하고 현실을 고려하지 않는 입법은 법치를 훼손한다. 이는 행정부나 사법부라고 해서 다를 바가 없다. 법치국가는 정당한 법에 의해 실현된다. 그래서 정치는 법치를 통해 실현되고 사회정의도 법에 의해 실현된다는 점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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