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환 유라시아전략연구소장/전 주러시아 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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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일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처음으로 한국 외교부 장관이 중국을 방문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이번 외교장관회담에서는 사드, 반도체 동맹(chip 4), 한류 제한 등이 주요 의제로 논의됐고 박진 장관은 우리 입장을 분명하게 개진했다고 한다. 그런데, 국내 언론이 별로 주목하지 않았지만, 이번에도 과거 정부 때와 마찬가지로 박 장관은 “지금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이 전례 없이 위협받고 있다”며 “북한이 도발 대신 대화를 선택하도록 중국이 건설적 역할을 해달라”고 했다. 한국 측의 이러한 요청은 오랫동안 계속됐는데 도대체 중국에 대해 언제까지 그러한 요청을 할 것인가?

그동안 한국은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6자 회담이 진행되고 있을 때는 물론 지속적으로 북한의 도발 억제를 위해 중국이 건설적 역할을 해달라고 요청해왔다. 중국 역시 줄곧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강조해왔다. 중국이 그렇게 하는 것은 중국의 안정적인 성장과 발전을 위한 대외 여건의 조성 차원이다. 남북한 사이 무력 충돌이 일어나면 중국은 어떤 식으로든 관여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는 중국의 경제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즉 한반도에서의 전쟁 재발 방지는 중국의 국익에 부합하는 것이지 결코 한국의 요청을 따라 추구하는 것이 아니다. 중국이 자신을 위해서 알아서 할 일을 중국에 매번 부탁하는 것은 우리가 중국에 대해 무슨 빚이라도 지고 있다고 착각하게 하는, 어리석은 처신이다. 노무현 정부 시절 6자 회담이 진행되던 때 모스크바에 들른 청와대 고위당국자에게 필자는 우리 정부가 자주 중국에 대해 사의를 표한다고 하는데 단순히 립서비스인지 아니면 진정으로 그렇게 생각하는 것인지 물었는데 그 당국자는 멋쩍게 웃기만 했다.

더욱이 중국이 북핵 문제를 해결하거나 북한의 무력 도발을 저지할 의지와 능력이 있는지 의구심이 든다. 우선 북핵 해결을 위한 미·북 정상회담이 있었던 시기에 중국은 어떤 행동을 했는지 복기하여 보자. 시진핑은 2018년 6월 1차 미·북 정상회담이 열리기 전인 3월과 5월에 김정은을 두 번이나 중국으로 초청했고 1차 이후 2019년 2월 2차 정상회담이 열리기 전까지 또다시 두 차례 초청했으며, 2019년 6월 판문점 남·북·미 정상 접촉 직후에는 자신이 평양을 방문했다. 당시 일부 국내 매체들은 마치 시진핑이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미·북 정상회담을 거드는 것처럼 보도했다. 아무리 형제처럼 가까운 나라 사이에도 양국 정상이 불과 1년 3개월 동안 무려 5차례나 상호방문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고 상식적이지 않다. 2018년 들어 미·북 정상회담의 가능성이 커지자 중국 지도부는 겉으로는 환영한다는 모습을 보였지만 속으로는 북한이 미국과 가까워질까 당황했고 특히 트럼프나 김정은의 개성으로 보아 북한과 미국 사이에 중국이 관여할 겨를도 없이 ‘깜짝 딜’이 이루어지지는 않을까 안절부절못했다고 보는 것이 맞는 분석일 것이다. 중국으로서는 북한이 대중 의존도를 낮추고 미국에 접근해 중국을 견제하려는 의도를 경계했을 것이다. 북한은 중국이 ‘미 제국주의’의 침투를 막기 위한 ‘완충지대’로서 붙들어 둬야 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2018년 5월 2차 북·중 정상회담 이후 북한이 강경하게 나오면서 일시적으로 1차 미·북 정상회담 취소 소동이 벌어진 데는 중국이 북한에 압박을 가했기 때문이라는 추측도 있었다.

최근 펠로시 미 하원의장의 대만 방문 직후 보복 조치로서 중국이 대만 주변 수역에서 봉쇄 훈련을 실시했는데 앞으로 대만 해협에서의 파고가 점점 올라갈 것 같다. 미국은 중국의 패권 도전을 분쇄하기 위해 경제적 방책에 더하여 군사적 압박도 가한다는 구상인 것 같다. 미국이 대만 이슈를 놓고 중국을 지속적으로 자극하는 것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직전 상황을 연상시킨다. 격앙된 시진핑이 대만 독립의 싹을 자르기 위해 수년 내 무력 침공을 감행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그러한 상황이 되면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중시한다는 레토릭은 사라질 것이다. 중국은 미국과의 전면전을 피하고자 대만에 대해 전격적인 군사작전을 전개해 전쟁을 단기간 내 끝내려 할 것이다. 그러려면 주한미군을 한국에 붙들어 둬야 하고 주한 미군이 소위 ‘전략적 유연성’에 따라 대만 상황에 개입하지 못하도록 대만 침공을 전후하여 또는 동시에 북한의 남침을 부추길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북한으로서는 주한 미군이 빠져나가는 상황을 적화통일의 호기로 볼 것이다. 외교에 있어 수사법이 일정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인정되나 우리 정부는 중국에 대해 하나 마나 한 말을 매번 할 것이 아니라 대만 위기에 대비한 방책을 고민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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