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환 유라시아전략연구소장/전 주러시아 공사

image

지난 4일 젤렌스키는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와의 화상 인터뷰에서 중국이 막강한 정치·경제적 영향력을 사용해 전쟁을 종식시키는 데 힘써 달라고 촉구하면서 “러시아의 공격이 시작된 이후 우리는 중국에 공식적으로 대화를 요청했지만 성사되지 않았다. 시진핑과의 직접 대화를 모색하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중국은 나토의 확장 등이 이번 전쟁의 단초를 제공했다는 러시아의 입장에 동조하고 있다. 러시아와 중국은 지난달 7일 인도네시아 발리에서의 외교장관 회담에서 미국과 유럽연합이 유엔을 거치지 않고 채택한 대러 제재는 국제법에 어긋난 위법 조치이고, 따라서 용납할 수 없다고 의견을 모았다. 중국은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에도 서방의 제재 대상인 러시아산 석유를 대량으로 사들이고 있다. 중국의 입장이 이와 같고 현재 서방이 우크라이나를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는데 젤렌스키는 왜 중국의 도움을 청하고 있나?

이미 지난 6월 중순 영국 가디언은 서방 언론의 우크라이나 사태에 관한 관심이 줄어들고 있어 우크라이나 정부는 서방의 지원이 끊기지는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우크라이나의 전쟁 수행은 전적으로 서방의 무기 지원에 의존하고 있는데 서방이 전쟁의 장기화 가능성을 우려할 것이므로 그러한 보도가 나오는 것은 자연스럽다. 그동안 서방에서 최신 정밀 무기를 지원할 때마다 ‘게임 체인저(game changer)’가 될 것으로 보고 우크라이나군의 선전을 기대했으나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최신 무기들은 별로 써보지도 못하고 러시아군의 공격으로 파괴되거나 러시아군의 손에 넘어가기도 했으며 심지어 암시장에 매물로 나오기도 했다. 이러한 현실로 인해 지난 7월 워싱턴타임즈에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지원은 러시아의 군사작전을 분쇄하는 방책이 못되며 이미 지원한 무기에 대해서는 통제를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글이 실리기도 했다. 조만간 서방이 우크라이나에 대해 무기 공급을 중단할 것이라고 예단하기는 어려우나 적어도 서방은 우크라이나가 지원받은 무기의 사후관리를 소홀히 하는 데 대해 상당한 불만을 갖고 있는 것 같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우크라이나는 서방이 신속하게 무기를 공급하지 않는다고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서방의 무기 공급은 전쟁을 연장할 뿐이고 전세를 변화시키지는 못할 것이라는 러시아의 주장이 점차 설득력을 얻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그간 우크라이나군이 파괴한 러시아의 탱크 등 군사 장비의 잔해를 베를린에 있는 러시아 대사관 앞에 전시하려 했으나 현지 당국에 의해 거부됐다. 서방의 관심을 유지하려는 목적으로 보인다.

또한, 지난 5일 러시아 리아노보스치 보도에 따르면 서방이 우크라이나에 대해 재정지원(80억 유로) 약속 이행을 늦추고 있는 데 대해 젤렌스키 대통령이 불만을 토로했다고 한다. 그는 “매일 다양한 경로로 유럽연합 지도자들에게 우크라이나의 연금수급자, 난민, 교사 등 국가예산으로 현금을 지급해야 하는 사람들을 서방의 우유부단과 관료주의의 인질로 만들지 말라고 이야기하고 있다”라고 했다. 이는 한마디로 우크라이나가 나라 살림조차 상당 부분 서방의 지원에 의존하고 있다는 이야기이다. 서방의 대러 제재가 러시아의 전쟁 수행 능력에 타격을 주지 못하고 있고 오히려 부메랑이 돼 서방 국가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보니 ‘곳간에서 인심 난다’는 말이 있듯이 어느 나라고 우크라이나 국민들을 챙길 여유가 많지 않을 것이다. 객관적으로 말해서 현재 서방은 대러 제재가 기대한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고 무기 지원 역시 전세를 역전시키지 못하고 있어 우크라이나에 대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식 지원을 계속할 것인가 고민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궁지에 몰리고 있는 젤렌스키 대통령은 서방에게 러시아에 대해 더 혹독한 제재를 취하라고 요구하는 한편, 대러 제재를 무력화시키고 있는 중국이 우크라이나 편에 서준다면 러시아에 결정적 타격을 줄 것이라고 기대하고 시진핑 주석과의 대화를 간절히 원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지난 5월 나토동맹국들이 중국을 ‘포괄적인 도전’으로 규정한 새로운 전략개념을 채택한 데다 지난주 펠로시 하원의장이 전격적으로 대만을 방문하는 등 미국이 노골적으로 중국을 자극하고 있는 상황에서 과연 중국이 우크라이나를 위해 나설 것인가? 중국이 젤렌스키 대통령의 희망에 부응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국제법을 위반하고 정의에 반하는 것이라고 아무리 외쳐봐도 우크라이나가 원하는 만큼의 국제적인 지원을 기대하기 어렵고 게다가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우리는 각국은 자국의 이익을 우선시할 수밖에 없는 국제사회의 엄연한 현실을 목도하고 있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키워드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