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증산량 65만→10만 배럴
지난 7·8월 증산량 15% 수준
소폭 증산에도 국제유가 하락세
“중동 순방 발표 이후 하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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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사우디아라비아 방문에도 불구하고 OPEC+가 미미한 원유 증산을 결정했다. 사진은 바이든 대통령이 15일(현지시간) 사우디 제다에서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와 인사를 나누고 있는 모습. (출처: 뉴시스)

[천지일보=안채린 기자] 치솟는 국제유가를 안정시키기 위해 지난달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사우디아라비아 방문을 통해 석유 증산을 요청했지만 석유수출국기구(OPEC) 회원국과 비회원국 연합체인 OPEC+는 증산 속도를 크게 줄이기로 결정했다. 이에 따라 그간 바이든 대통령이 사우디 방문에서 ‘빈손’으로 돌아왔다는 혹평이 현실로 드러났다는 지적이 쏟아졌다. 

OPEC은 3일(현지시간) 비회원국과의 31차 화상 회의를 통해 9월 한 달 동안 하루 10만 배럴 증산에 합의했다고 밝혔다. 이는 7·8월 증산량(하루 64만 8천 배럴)의 15%에 불과한 양으로 역대 최저 수준이다. 

이를 두고 미국 외환중개업체 오안다(OANDA)의 선임 애널리스트인 에드워드 모야는 AFP 통신에 “현재 국제 에너지 위기에 거의 도움이 되지 않는 수준의 증산량”이라고 평가했다. 

바이든 대통령의 사우디 방문 후 처음 열린 이번 회의에서 참가국들은 초과 생산 역량이 제한된 상황에서 공급 혼선에도 주의 깊게 대응해야 한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회의에 앞서 OPEC+ 장관급 감시위원회(JMMC)는 경기 침체 우려 등을 이유로 하루 10만 배럴 증산을 권고하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재확산 추세가 세계 원유 수요에 미칠 영향도 고려 사항이었다고 설명한 것으로 로이터 통신이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했다.  

이와 함께 OPEC+는 이날 정례 회의 후 “추가 생산 여력이 많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에 이를 매우 신중하게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무함마드 빈살만 사우디 왕세자도 지난달 바이든 대통령 방문 직후 현재 사우디는 증산 여력이 없는 상태라고 선을 그은 바 있다. 

미 경제방송 CNBC도 산유국의 여유 용량이 제한돼 있고 사우디가 우크라이나 관련 제재로 타격을 입은 러시아를 희생시키며 생산량을 늘리는 것을 꺼릴 수 있다고 분석했다.

그간 OPEC+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 이후 국제유가 급등에 따른 서방의 추가 증산 요구에도 완만한 증산 속도를 유지해왔지만, 최근 유가가 고공행진하며 일부 압박을 받아왔다. 

바이든 대통령뿐만 아니라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도 지난 3월 사우디를 방문해 무함마드 왕세자와 만나 원유 증산을 촉구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지난달 무함마드 왕세자를 엘리제궁으로 초청해 우크라이나 사태의 부정적인 영향을 완화하는 데 협력하기로 했다.

블룸버그 통신 조사에 따르면 지난달 사우디의 원유 생산량은 하루 1078만 배럴이다.

◆미미한 증산에도 저유가 추세

3일 OPEC+가 증산량을 대폭 줄이겠다고 발표하면서 유가는 한때 2% 이상 올랐지만 다시 하락세로 돌아선 상태다. 

이날 CNBC 등 외신들에 따르면 브랜트유 선물은 3.7% 하락한 96.78달러에 거래를 마감해 지난 2월 21일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서부텍사스산원유(WTI)도 전 거래일 대비 3.76% 하락한 배럴당 90.66달러에 거래를 마쳐 지난 2월 10일 이후 최저 수준으로 마감했다. 

CNBC는 미국 원유 재고량이 늘며 유가가 내렸다고 분석했다. 미 에너지정보청(EIA)에 따르면 지난 29일까지 한 주간 원유 재고는 전주 대비 446만 7천 배럴 늘어난 4억 2655만 3천 배럴로 집계됐다. 미국 원유 재고는 지난주 수출이 줄고 정유사들이 가동률을 낮추면서 시장 예상치인 60만 배럴을 훌쩍 뛰어넘었다. 

케이플러의 매트 스미스는 마켓워치에 “수입은 증가하고 정제 활동은 5월 초 이후 최저로 떨어지면서 원유 재고가 강한 증가세를 보였다”라면서도 “OPEC+가 10만 배럴 증산에 그치면서 균형추 구실을 해주고 있다”고 말했다.

◆유가 하락 강조나선 백악관

바이든 대통령은 그간 중간선거를 앞두고 고유가 국면 해결을 위해 힘써왔지만 지난달 사우디를 방문했음에도 원유 증산 약속을 받아내지 못하고 귀국하면서 거센 비판을 받아야 했다. 

미미한 증산 결정이 나오자 CNN 등 미국 언론은 업계 전문가들을 인용해 ‘굴욕’이라고 표현했다. CNN은 “바이든 대통령이 무함마드 왕세자와 사이좋게 지내려는 정치적 도박이 미국인들이 주유소에서 느낄만할 의미 있는 식으로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는 점은 자명하다”고 평가했다. 

미 정치컨설팅업체 유라시아 그룹의 라드 알카디리도 “(증산 규모가) 무의미할 정도로 너무 작다”며 “물리적인 관점에서 보면 미미한 감소고 정치적 제스처로 해석하자면 거의 모욕적”이라고 풀이했다.

OPEC+ 발표 이후 여론이 악화하자 그간 OPEC+의 회의에서 좋은 소식이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보여온 백악관은 미국의 유가 하락 추세를 강조하고 나섰다. 카린 쟝피엘 백악관 대변인은 언론 브리핑을 통해 “유가 하락세가 지난 6월 14일 시작됐으며, 그날이 미국정부가 바이든의 이스라엘 및 사우디 방문을 발표한 날”이라고 밝혔다. 또 그는 “중요한 것은 석유와 가스 가격이 내리고 있다는 점이다. 바이든 대통령이 중동 방문을 발표한 순간부터 유가가 하락하기 시작한 것을 우리는 분명히 보았다”고 말했다.

바이든 대통령의 중동 순방 발표만으로도 유가 폭등을 잡았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보이지만, 정말 바이든 행정부의 순방 발표만으로 유가가 하향세를 보이고 있는 것인지 상관관계를 입증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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