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환 유라시아전략연구소장/전 주러시아 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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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한중 수교 30주년을 맞이한다. 그간 양국 관계는 여러 분야에서 질적 양적으로 발전해 왔고 중국 또는 한-중 관계에 관해 많은 책이 나왔다. 그런데 올해에 나온 ‘짱깨주의의 탄생’만큼 화제가 된 책도 없었던 것 같다. 아마도 전직 대통령이 추천한 덕분이기도 하고 주장이 도발적이기도 하기 때문일 것이다. 현재 우리 사회에서 이 책에 대해 비판적인 견해가 상당하나 중국 담론에 있어 여러 관점과 주장이 있을 수 있고 표현의 자유라는 차원에서 저자가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것 자체를 문제 삼을 필요는 없을 것이다.

저자는 한국 매체들이 중국에 대해 편향적이고 선정적인 보도를 일삼고 있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김치 및 한복, 동북공정, 미세먼지, 공자학원, BTS의 미국 ‘밴플리트 상’ 수상 후 한국전쟁 관련 언급, 사드 배치, 쌍용차의 기술 유출, 중국인의 제주 부동산 매입, 베이징 동계올림픽 판정 시비 등과 관련한 보도를 문제 삼았다. 그중 일부는 내용을 부풀리거나 왜곡하고 또는 사실관계가 정확하지 않고, 그리고 논란을 불필요하게 키운 것이 인정된다. 또한, 중국에 대한 부정적 보도 경향은 일반적으로 한국 매체가 직접 취재를 하지 않고 서방의 ‘중국 때리기’ 기사를 그대로 베끼는 탓이라는 주장도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 다만 이슈마다 중국의 입장에서 보면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고 따라서 중국의 입장을 이해해야 한다는 듯한 저자의 주장은 너무 나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더욱이 일부 이슈에 대해서는 저자가 중국조차 하기 어려울 것 같은 주장을 펴고 있다. 발생원인이 분명한 미세먼지에 대해 중국의 책임이라기보다는 중국을 ‘세계의 공장’으로 만든 국제자본의 책임이 크다는 주장은 탁월한 궤변이다. 동북공정에 대해서는 저자가 주장하는 객관성을 유지하지 못하고 중국의 입장만을 복창하면서 ‘중국경계론’이 근거가 없다는 주장만 한다. 사드 배치에 대해서는 미국의 악의와 중국의 정당방위만을 주장한다. 이웃 나라와의 관계에서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는 것이 어느 정도 필요하다고 할 수 있는데 저자는 내재적 분석에서 그치지 않고 중국의 입장을 강요하는 듯한 주장을 하고 있다. 반면에 중국 매체들의 한국 관련 보도 경향은 어떤지 그리고 중국 측이 한국의 관점에서 이해하려는 노력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언급이 미흡하다.

더욱이 동아시아가 2차 대전 이후 미국 중심의 신식민주의를 극복하고 평화체제로 나아가려면 피식민 경험을 공유하는 중국과 연대해야 하는데 대결 구도의 지속을 통해 기득권을 유지하고자 하는 ‘안보적 보수주의’ 세력이 언론의 편향적인 보도를 통해 반중 정서를 부추겨서 중국과의 연대를 어렵게 하고 있다는 저자의 현실 인식은 80년대 운동권 학생들의 인식을 연상시킨다. 국제법상 주권 평등 원칙에 따라 국가 간 형식적인 평등은 존중되지만, 기본적으로 힘이 좌지우지하는 국제사회에서 국력의 차이에서 오는 실질적 불평등이 존재하는 것이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인데 이를 가지고 ‘신식민지’ 운운하는 것은 유치하고 다분히 정치적 의도가 있는 이념적인 언사이다. 오늘날 한국을 미국의 ‘신식민지’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한반도의 남쪽에 얼마나 될까?

저자는 중국에게서 ‘착한 외세’의 가능성을 보고 있는데 과연 그럴까? 시진핑 주석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했다는 ‘한국은 중국의 일부였다’는 발언은 무엇인가? 한반도 평화에 대해 한중 양국의 이해관계가 일치한다고 하는데 중국은 한국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안정적 경제발전에 장애물이 생기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우리에게는 평화뿐만 아니라 통일이라는 더 큰 염원이 있는데 과연 중국은 이에 대해 호의적이고 협조적일까? 중국은 내부지향적이고 대외팽창적이 아니라고 하는데 6.25 전쟁 때 수십만의 중국군이 압록강을 건너 쳐들어와서 우리의 통일을 좌절시켰던 일을 잊었는가? 중국은 반제국주의적이라고 하는데 신장, 티벳, 내몽골 등은 내부 식민지 아닌가? 또한, 우리에게 생명선과 같은 국제해상교통로인 남중국해에 대해 황당무계한 영유권 주장을 하면서 동남아시아 국가들을 겁박하고 있으며 우리 수역에서 자국 어선들이 저지르고 있는 불법 조업에 대해 ‘가난한 어민들이 생계를 위해 하는 일이니 이해하라’고 파렴치한 주장을 하는 나라이다. 우리 사회에 미국에 대해 부정적 인식을 갖고 있거나 현재의 한미관계가 불만스러운 사람들이 상당수 있겠으나 역사상 미국은 우리 민족이 상대해온 외세 가운데 가장 덜 ‘악한 나라’이다. 물론 이웃인 중국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점에 대해서는 누구나 동의할 것이다. 그럼에도 ‘짱깨주의의 탄생’을 읽으면서 너무 주장이 앞서고 그나마도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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