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 보관하던 서빙고와 동빙고
신라 시대에도 얼음 저장한 기록
80년대 본격적으로 냉장고 보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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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위가 계속되면서 '얼음'이 더욱 간절해지는 계절이다.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천지일보 2022.07.29

[천지일보=백은영 기자] 연일 계속되는 폭염으로 밖에 나가기 무섭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한낮의 뜨거운 열기가 밤에도 쉽사리 빠져나가지 못할 만큼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으니 자연스레 냉방기기 사용도 늘고 있다. 냉방기기 외에도 땀을 비 오듯 흘리는 여름이 오면 무엇보다 소비량이 급격하게 증가하는 것이 있으니 바로 ‘얼음’이다. 지금이야 쉽게 먹을 수 있는 얼음이지만 50년 전만 해도 가정집에서 얼음을 구하기란 쉽지 않았다. 폭염이 기승을 부리고 있는 한여름. 입안 가득 시원함을 전해줄 ‘얼음’과 관련된 이야기를 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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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에서 얼음을 채빙하던 모습 (출처: 국립민속박물관) ⓒ천지일보 2022.07.29

서빙고와 동빙고
조선 시대에는 추운 겨울이면 한강에서 얼음을 채빙했다. 보통 한강이 약 12㎝ 정도의 두께로 얼었을 때인 12월에 시작해 이듬해 3월까지 얼음을 채빙해 얼음 창고에 저장했다. 얼음이 귀하던 때라 얼음을 저장할 때와 출납할 때 모두 하늘에 제사를 지냈으며, 채빙한 얼음은 동빙고와 서빙고와 같은 ‘빙고(氷庫)’에 저장했다. 이와는 별도로 왕실 전용 얼음 창고로 궐내에 내빙고를 두어 운영했다.

‘빙고(氷庫)’는 아주 옛날부터 조선 시대 말기까지 오랜 시간 지속적으로 실생활에 이용됐는데 기록에 의하면 얼음을 채취해 저장하는 일은 신라 시대부터 있었다. 다만 당시 축조된 빙고는 현재 남아있지 않다. 

조선 시대 대표적인 서빙고와 동빙고는 조선 태조 때 서울의 한강 북쪽 연안에 설치됐던 얼음 창고로 동빙고는 나라의 제사에 쓸 얼음 1만여 개, 서빙고에는 궁중 부엌에서 쓸 얼음과 사람들에게 나눠 줄 여름 13만여 개를 저장했다. 당시 빙고(氷庫)라는 직제를 두어 5품관인 제조(提調) 이하의 많은 관원들이 이 빙고를 엄격하게 관리했다고 한다. 

또한 ‘세종실록’에는 “세종이 힘든 노동인 얼음을 캐고 저장하는 사람들인 장빙군(藏氷軍)들에게 술 830병, 어물 1650마리를 내렸다”는 기록이 남아있는 것으로 보아 채빙을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을 알 수 있다.

서빙고의 얼음은 매해 여름 벼슬아치와 70세가 넘은 당상관 등에게 배급했으며, 무료병원인 활인서 환자와 의금부, 전옥서 등 감옥에 갇혀 있는 죄수들에게도 나눠줬다고 알려져 있다. 

한편 조선 시대 양반들은 삼복더위에 차가운 샘물 또는 왕으로부터 하사받은 얼음물에 국수를 말아먹었다고 한다. 밀가루가 귀했던 때라 국수는 왕을 비롯해 왕실 가족만 먹을 수 있었으며, 양반들은 주로 메밀국수를 차게 해서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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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석빙고의 모습 (출처: 문화재청) ⓒ천지일보 2022.07.29

얼음이 녹지 않는 빙고
현재까지 남아있는 조선시대의 빙고는 모두 돌로 만들어진 ‘석빙고’로 온도 변화가 적은 반지하 구조로 한쪽이 긴 봉토 고분 모양을 갖추고 있다. 지붕은 2층 구조로 바깥쪽은 석빙고 위에 흙을 두껍게 올려 바깥의 열이 들어오지 못하게 만들었다고 한다. 반면 안쪽은 열 전달이 잘 되는 화강암으로 만들어졌다. 

석빙고 천장은 아치형으로 5개 기둥에 장대석이 걸쳐져 있고, 장대석이 걸친 곳에는 밖으로 통하는 환기 구멍이 있다. 이 환기 구멍은 아래쪽이 넓고 위쪽이 좁은 직사각형 모양으로 바깥에서 바람이 불 때 빙실 안의 공기가 잘 빠져나가는 구조라고 한다. 이와 같은 구조로 인해 바깥에서 안으로 들어오는 더운 공기가 지붕의 구멍으로 빠져나가기 때문에 빙실 아래의 찬 공기가 바닥으로 내려앉아 오랫동안 머물 수 있어 얼음이 적게 녹는 원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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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석빙고 환기구 모습 (출처: 문화재청) ⓒ천지일보 2022.07.29

뿐만 아니라 얼음을 보관하는 내부 바닥 한가운데는 경사지게 배수로를 파서 얼음이 녹으면 그 물이 밖으로 흘러나갈 수 있도록 했다. 석빙고의 얼음은 왕겨나 짚으로 쌓아 보관했는데, 얼음이 약간 녹으면서 융해열로 주변 열을 흡수하게 되므로 왕겨나 짚의 안쪽이 온도가 낮아져 그만큼 얼음을 장기간 보관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우리 선조들의 지혜의 총집합이 또한 석빙고라 할 수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석빙고는 총 6개로 경주, 안동, 영산, 창녕, 청도, 현풍(달성군)에서 그 모습을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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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장고의 보급으로 이제는 한여름에도 시원한 얼음을 먹을 수 있게 됐다.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천지일보 2022.07.29

현대식 빙고 냉장고 
최초로 인공적인 얼음에 도전한 사람은 영국의 과학자 컬런으로 1748년에 물을 냉동시키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이를 산업적으로 발전시키지는 않았다. 냉장고를 처음으로 발명한 사람에 대한 의견은 분분하지만 미국의 발명가인 에번스가 1805년 냉장고에 대한 최초의 설계도를 남겼으며, 영국에서 미국으로 이주한 기술자인 퍼킨스가 1834년에 얼음 기계로 최초의 특허를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후 1851년 스코틀랜드 출신의 인쇄공인 해리슨이 냉매를 에테르로 하고 공기 압축기를 장착한 냉장고를 선보여 압축식 냉장고의 길을 열었다. 20세기 들어 냉장 산업이 급속히 성장하는 가운데 드디어 가정용 냉장고가 출시, 최초의 가정용 냉장고로는 미국의 발명가인 울프가 1913년에 개발한 도멜레(Domelre)가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1965년 금성사(현재의 LG전자)가 첫 국산 냉장고인 ‘눈표냉장고’를 출시했으며 이후 대한전선과 삼성전자가 냉장고 사업에 뛰어들었다. 이후 1980년대가 되면서 거의 모든 가정에 냉장고가 보급되기 시작했다. 드디어 한 여름에도 냉장고만 열면 얼음을 꺼내먹을 수 있는 신세계가 열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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