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산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은 ‘한국 산업 근대화의 주역’ ‘세기의 도전자’ ‘위기의 승부사’ 등 다양한 수식어가 방증하듯 현대경제사와 궤를 같이한 한국의 대표 기업가다. 아산이 일군 현대그룹은 자동차와 조선, 건설, 유통, 자재, 금융 등 주요 산업을 아우르는 글로벌 기업들로 성장해 경제뿐만 아니라 사회·정치적으로 한국 사회에 큰 족적을 남겼다. 1990년대 정몽헌 당시 현대전자 대표이사가 직접 스카우트해 현대전자에도 몸 담았던 박광수 칼럼니스트가 올해 75주년을 맞은 현대그룹을 파헤쳐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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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광수 한국과학기술원 자문위원은 학부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하고 삼성전자와 LG전자, 현대전자 등에서 40년간 근무했다. 연구개발·생산기술·기획·품질관리·영업·구매 관련 분야를 망라한 것은 물론 영어와 일어에 능통해 미국 일본 등 해외주재원으로도 활동했다. 현재 기업경영 컨설턴트, 기업초빙강의 전문가와 신문 칼럼니스트로 활동 중이다. ⓒ천지일보 2022.07.15

<10> 중동진출의 드라마 쓴 정주영

오일쇼크로 韓 ‘경제적 타격’ 위기 

박정희, 중동진출 모색 적극 지시

정주영 “중동은 건설 최적의 지역”

 

朴 “鄭의 생각은 비상하고 위대해”

위기를 넘어 극적인 반전의 입찰

당시 ‘수주액’ 정부예산 1/4 수준

박정희 대통령의 3공화국 시절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착실한 시행으로 대한민국은 독일의 라인강의 기적과 비교되는 ‘한강의 기적’이란 수식어를 달면서 매년 20% 이상의 고도성장을 해갔다. 이런 가운데 갑자기 1973년 10월 6일 중동지역에서 ‘제4차 중동전쟁’이 발생했다.

당시 중동지역에서 사우디아라비아의 석유장관 아메드 자키 야마니(1962~1896년 장관)가 주도한 아랍산유국(참여국가: 리비아, 이라크, 이란, 시리아, 튀니지)들은 석유를 정치적인 수단으로 활용해 갑자기 석유 공급가를 4배(1배럴당 2.9달러였던 원가를 한 달 만에 14.5달러로 인상)이상 인상하는 조치를 하게 된다.

이에 따라 아랍지역 산유국은 국제적인 정치력을 높이고, 외교적인 측면에서도 서방국가들에 압박을 가하며 미국 중심의 친이스라엘 정책에서 벗어나 친아랍 중동 정책(이스라엘이 점령하고 있던 팔레스타인 거주 지역 철수 권고 등)으로 변화시키는 계기를 만들어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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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베일 산업항 건설 자재를 실은 배. (제공: 현대건설)

◆박정희 대통령, 정주영 회장에 중동건설 지시

OPEC(Organization of the Petroieum Exporting Countries: 석유수출국기구)는 국제석유자본이 독점하고 있던 원유가격의 결정권을 자연스럽게 장악하게 됐으며, 석유의 정치적 무기화 및 자원민족주의(Resource Nationalism)를 강화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한편 석유수입국인 서방 측 선진국들은 석유의 대외의존도에 유래하는 경제적인 취약성뿐만 아니라, 그것을 안전보장상의 문제로까지 인식하게 됐다. 그리고 오일쇼크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1960년대까지 지속된 세계적인 고도성장을 종식하고 정전과 인플레이션이 동시에 발생하는 스태그플레이션의 시대를 맞게 했다. 또한 재생산이 불가능한 자원의 제약이라는 환경문제를 강하게 인식시켰을 뿐만 아니라 1979년 산유국 이란에서 혁명이 발생하면서 석유생산이 감산되며 석유 가격의 폭등도 발생했다. 

기름 한 방울도 나지 않는 대한민국은 이런 오일쇼크로 적지 않은 경제적인 타격을 받으며 두 자릿수 경제성장이 한 자릿수 이하로 내려가는 경제위기를 맞게 된다. 이런 상황을 직시하고 있던 박정희 대통령은 오일머니로 달러가 넘쳐나는 중동의 아랍국가들이 오일머니를 사용하기에 척박한 환경이지만 국가의 변화를 위한 인프라건설에 적극적인 투자를 한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아울러 박 대통령은 국내 건설사 대표들과 정부 관리들에게 중동진출 방향을 찾아보라고 적극적으로 지시했다. 하지만 중동 현지를 답사하고 온 건설사와 관리들은 그곳의 무더운 날씨와 척박한 환경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중동지역 건설시장 진출에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박 대통령은 평소 상호 간에 맘보가 딱 들어맞는 정주영 회장을 1975년 여름 단독으로 청와대로 호출했다. 박 대통령은 “중동지역 건설에 진출해 오일머니로 달러가 넘쳐나는 중동국가들로부터 달러를 벌어들일 좋은 기회가 왔는데 현장 답사를 다녀온 건설사들이 일관되게 그곳에서는 일할 수가 없는 환경이라고 반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박 대통령은 “역으로 달러를 대한민국으로 유입시켜야 대한민국 경제성장에 필요한 인프라를 정상적으로 추진될 수 있다”면서 “정주영 회장은 이런 일을 가능하게 할 유일한 사람”이라며 각오에 찬 강한 어조로 중동지역 건설을 지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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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베일 산업항 건설 현장에서 정주영 회장의 모습. (출처: 아산정주영닷컴)

◆“각하, 저는 할 수 있습니다”

지시받은 정 회장은 즉시 중동으로 답사차 출장을 가게 됐다. 일주일 만에 귀국해 박정희 대통령을 단독으로 만난 정주영 회장은 특유의 뚝심과 모든 일은 하기 나름이라는 긍정적인 마음가짐으로 “각하 저는 할 수 있습니다”라고 보고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말이 있듯이 대한민국을 알라신이 돕는 것 같다”고 보고하자 박정희 대통령은 무슨 엉뚱한 말이냐고 되받아쳤다. 그러자 정주영 회장은 “중동은 이 세계에서 건설공사 하기에 가장 좋은 지역이다. 1년 12달 비가 내리지 않아서 하루도 안 쉬고 공사를 지속할 수 있다. 건설에 필요한 모래, 자갈이 현장에 지천으로 넘쳐나서 자재 조달이 쉽다. 까짓거 한낮에 50도가 넘어가는 날씨 환경은 더운 낮에 근로자들에게 천막에서 잠을 재우고 날씨가 선선해지는 밤에 횃불이라도 켜서 일을 하면 능률도 오르고 한국인들 특유의 신바람 나는 분위기를 만들어 주면 근로자들이 열심히 일할 수 있다”고 보고했다. 

또 정 회장은 “모래바람과 싸워서 이겨낼 자신도 있고 부족한 물은 바닷물을 정수해 민물처럼 마시면 된다”고 했다. 그는 이어 “그래도 부족하면 오일을 가득 싣고 대한민국에 오일을 팔면서 떼돈을 번 아랍국가의 유조선이 빈 탱크로 중동으로 가게 된다”며 “탱크를 청소하고 한국산 물을 가득 싣고 무상으로 중동으로 보내면 수십만명의 근로자들이 1년 이상 먹고 마실 물이 된다”고 역설했다.

이 말을 들은 박정희 대통령은 역시 “정주영 회장의 생각은 비상하고 위대하다”며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당장 중동시장 건설업에 진출해 달러를 벌어오라고 말하고 건설부 장관에게 현대건설이 중동에 진출하는 데 정부가 지원할 수 있는 모든 소스를 총동원해서 지원하라고 지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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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베일 산업항 공사 자재 운송. (출처: 아산정주영닷컴)

◆드라마틱한 주베일 항만공사 입찰

그리고 1976년 사우디아라비아는 당시 20세기 최대의 공사로 불리어지는 주베일 산업항 공사의 입찰이 있었다. 현대건설로는 한 편의 드라마를 써 내려가듯 아주 드라마틱한 입찰 결과를 가져왔다. 

그해 7월 현대건설은 사우디아라비아가 최소금액 기준으로 약 10억 달러 규모의 항만 공사를 계획 중이라는 정보를 입수했다. 하지만 그 당시는 이미 서구의 대형 건설사들이 몇 년 전부터 입찰을 준비해온 시점이라서 다들 준비과정도 이미 늦었다고 반대했다. 하지만 정주영 회장은 특유의 뚝심으로 “지금 시작해도 결코 늦은 것이 아니다. 이번 기회가 대한민국이 해외에서 대형 프로젝트도 수주하고 오일머니로 번 중동국가들의 달러를 한국으로 유입시킬 절호의 기회”라고 판단했다. 그리고 나서 정 회장은 주베일 산업항 공사 수주 전쟁에 출사표를 던졌다.

그러면서 그는 “우리 현대건설의 목표는 이 대형 수주전에서 승리하는 것뿐”이라고 비장한 각오를 밝혔다. “이 세상에 불가능이란 말은 나에게는 없다. 끊임없이 도전하다 보면 안 보이는 길도 보이게 된다. 즉 길이 없다면 뚫고 나가다 보면 반드시 길은 열리게 된다”라는 정 회장의 긍정적인 신조를 엿볼 수 있다. 

정 회장은 박 대통령과의 약속을 반드시 지켜야 하는 절체절명의 순간에도 현대건설의 사운을 걸다시피 전력을 다해 주베일 산업항 공사입찰을 진행했다. 

하지만 현대건설이 입찰을 준비하고 있을 때 사우디아라비아는 이미 입찰 예정 10여개 업체 중 9개 회사를 선정해 놓고 있었다. 현대건설은 여기서 포기하지 않고 천신만고 끝에 뒤늦게나마 입찰에 참여할 기회를 갖게 됐다.

당시 입찰보증금이 공사 예정액의 2%나 됐기에 현대건설은 입찰에 참여하려면 2000만 달러가 있어야 했다. 하지만 그 돈을 어디서 구해야 하는지 몰라서 자금 담당 임원은 발을 동동 구르며 한숨만 내쉬고 있었다. 당시 현대건설은 그만한 자금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현대건설에 알라신의 도움인지 모르나 행운이 계속 따라주게 됐다.

아랍 수리조선소 공사 관계로 거래 중이던 바레인 국립은행에 입찰보증금 지원을 요청했는데 극적으로 입찰 마감 나흘 전에 지급보증을 해주게 되면서 현대건설은 기사회생을 했다.

현대건설이 주베일 산업항 건설을 위해 2640만 달러 한도 내에서 무조건 지급보증을 받아야 했는데, 바레인 은행이 이를 해결해 줌으로써 위기를 극적으로 모면한 것이다.  

입찰 수주전은 전쟁하는 듯 상호 간에 숨 막히는 암투의 현장 전이었다. 현대건설을 포함한 세계 굴지의 10대 건설회사(미국의 브라운 앤 루트, 산타폐, 레이몬드 인터내셔날, 영국의 코스테인 타막, 서독의 보스, 네델란드 스티브, 프랑스 스피베타놀 등)들이 모두 참여했다. 또한 어느 회사가 얼마를 입찰가로 적어 넣는지가 최대의 관심사로써, 이것은 극비에 붙여졌기 때문에 치열한 눈치작전이 벌어졌고 입찰 당사자들 사이엔 극도의 긴장감이 팽배해 있었다고 한다.

정주영 회장은 처음에 공사액을 15억 달러로 예상했지만, 너무 금액이 많다고 판단해서 12억 달러 정도로 낮췄다. 그러다가 정 회장은 반드시 공사 수주를 해야겠다는 욕심이 생기자 약 9억 달러 이하라도 적자입찰이 아니라는 다소 무모하지만, 저돌적이고 파격적인 가격으로 입찰하겠다고 1차 판단했다.

그런데 9억 달러 이하로 떨어지면 너무 억울하다고 당시 현대건설의 전갑원 입찰 담당 상무는 정주영 회장의 최종 결정에 이의를 제기했다. 하지만 정 회장은 “우리 현대건설은 반드시 이번 입찰에 성공해야 해. 입찰에서 2등은 꼴찌나 마찬가지라고. 8억 7000만 달러라도 현대건설은 이익을 남길 수 있다”고 고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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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공된 주베일 산업항의 모습. (출처: 아산정주영닷컴)

◆지옥→천국 오간 전갑원 상무의 선택

드디어 1976년 2월 16일 마침내 현대건설의 운명이 걸린 입찰의 순간이 다가오자 정주영 회장이 지시한 입찰가에 이의를 제기했던 전갑원 상무가 현대건설을 대표해 입찰실로 입장했다.

그런데 입찰을 마치고 나온 전갑원 상무는 죄인 같은 표정으로 정주영 회장에게 보고했다. 전 상무는 “아무리 생각해도 8억 7000만 달러는 너무 싼 금액 같아서 9억 3114만 달러로 변경해서 써넣었다”고 보고했다. 

그러자 정 회장은 어이없는 표정을 지으며 웃고 말았다. 사실은 ‘현대가 떨어지면 어찌하나’ 하고 속이 쓰린 상황이지만, 정 회장은 불같이 화를 내지 않고 “전 상무 그동안 고생이 많았어. 입찰 결과가 나오는 시간까지는 호텔에 가서 푹 쉬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 회장은 “어젯밤 꿈속에 부모님 얼굴이 오랜만에 보였다”며 “아마도 알라신이 우리를 돕는다면 반드시 좋은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정주영 회장은 특유의 대범한 성격을 그대로 보여줬다. 주사위는 던져졌으니 입찰 결과를 조용히 호텔에서 쉬면서 기다리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하늘은 현대건설 손을 안 들어 줬는지 미국 건설사가 적어낸 9억 444만 달러에 공사가 낙찰됐다는 소문이 들려왔다. 입찰에 임했던 현대건설 전갑원 상무의 얼굴은 사색이 돼서 쥐구멍이라도 찾아 들어가고 싶은 상황이 연출됐다.

정주영 회장이 지시한 8억 7000만 달러로 적어 넣었다면 현대건설로 낙찰이 되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하늘도 현대건설을 도왔는지 나중에 확인해 보니 미국 건설사가 써넣은 투찰액은 유조선 정박시절 부문에만 한정된 것이었다.

 따라서 사우디아라비아는 9억 3114만 달러를 써넣은 현대건설의 손을 들어 주면서 부연설명을 했다. 사우디아라비아 측은 “현대건설의 모든 서류는 완벽했다”며 “특히 44개월의 공사기간을 조건없이 8개월 단축하겠다는 제의에 감명받았다”고 말했다. 이 한마디가 낙찰의 사유였다. 정 회장의 지시를 어기고 9억 3114만 달러를 적어서 낸 고집불통의 전갑원 상무는 한순간에 전화위복 돼 현대건설의 영웅이 됐고, 정주영 회장이 제시한 금액과 비교해 약 6114만 달러를 더 벌게 해줬다.

이 금액은 당시 대한민국 정부예산의 4분에 1에 해당하는 천문학적인 숫자로서 한국경제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정리 = 유영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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