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맹기 서강대 언론대학원 명예교수정치는 기업에 비해 쉽다. 국내 정치야 패거리 정신으로 누려고, 어르고, 선전·선동해도 일정 부분 성공을 거둘 수 있다. ‘지구촌’ 상황은 전혀 딴판이다. 외국인을 상대로 70% 이상 국부를 증진시키는 일은 국제 분업 하에서 전문성이 바탕이 될 때 가능하다. 정치권은 숨죽여 그들의 앞길을 터줄 필요가 있다. 청와대가 앞서 기업인들을 옥죄고, 그들에게 자유, 독립 그리고 전문성을 빼앗으면 국민들은 가난에 허덕여야 한다.국내 헌법정신은 ‘자유 민주적 기본질서’를 골격으로 한다. 그렇다면 그 정신에 따라,
유재호 사회복지사/운동처방사어느 누구도 시간을 멈추게 할 수는 없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 늙는다는 것을 멈추게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따라서 우리가 이와 같은 문제에서 집중해야 할 것은 노화과정을 거부할 방법을 찾기보다는 어떻게 노화과정을 만들지에 대한 집중이 필요하지 않을까 한다. 대한민국의 급격한 고령화 현상의 속도는 OECD국가 중 가장 빠른 속도로 전 세계적으로 유일무이할 정도이다. 대한민국은 현재 전체인구 중 65세 이상 인구가 14% 이상인 고령사회를 경험하고 있으며, 나아가 2026년 노인인구가 20% 이상이
서상욱 역사 칼럼니스트거란의 요는 흥종(興宗)과 도종(道宗) 시대에 이르러 국력이 약화돼 서하의 도전을 극복하지 못했다. 서하의 조상은 선비족의 갈래인 당항인(黨項人) 척발적사(拓跋赤辭)로 황하 상류에 살다가 정관(貞觀) 초기에 당에 귀화해 이씨성을 하사받고 조공국이 됐다. 그의 후예가 섬서성(陝西省) 횡산현(橫山縣)의 서쪽 하주(夏州)에 거주하면서 평하부(平夏部)라는 호칭을 얻었다. 당말 황소(黃巢)의 난에서 척발사공(拓跋思恭)이 공을 세워 정난(定難)절도사로 임명됐다. 관할 구역은 지금의 섬서성 북부 연수(延水)의 이북에서 수원
김세곤 역사 칼럼니스트/호남역사연구원장작년 12월 중순, 체코 프라하 구시가 광장에서 얀 후스(1372∼1415) 동상을 봤다. 후스는 로마 카톨릭의 부패와 타락을 비판하다가 1415년 7월 6일 콘스탄츠 공의회에서 화형에 처해졌다.동상은 제1차 세계대전이 한창인 1915년(후스 화형 500주년)에 세워졌고, 1918년 베르사유조약에 따라 체코슬로바키아는 독립했다.후스는 마치 타오르는 불길 속에서 걸어 나온 것처럼 두 조각상 사이에 우뚝 서 있다. 오른편에는 종교전쟁에서 승리한 후스파 전사들 조각이고, 왼편에는 1630년대 반종교개
이진경 JG사회복지연구소 대표한반도는 선사시대부터 북방민족과의 접촉이 빈번해, 주변국가에서 정치적 망명, 피난, 정략결혼 등을 원인으로 귀화인들이 일찍이 등장했다. 귀화인을 조명하는 것은 우리의 역사가 다양한 이주민의 유입으로 조화를 이루고 교류하며 만들어졌다는 것을 강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환인은 아들 환웅을 태백산 정상의 신단수로 내려 보내 세상을 널리 다스리게 했다. 환웅은 곰에서 사람으로 변한 웅녀와 혼인을 하게 되고, 천신을 믿는 부족과 곰을 숭배하는 부족의 결합이라 우리 역사상 첫 다문화가정을 탄생
이진경 JG사회복지연구소 대표얼마 전 스위스로 이민을 간 교포를 만나 들었던 이야기는 신선했다. 한국사회의 이중언어에 대해 안타까움을 얘기하며 본인의 자녀들은 5개 국어를 구사한다고 했다. 프랑스 남편과의 소통은 영어로 해야 하는 환경에서 자녀들은 아빠의 불어, 엄마의 한국어를 동시에 학습하며 성장했다는 것이다. 독일어로 학교교육을 받아 성인이 되자 중국어까지 5개 국어는 능숙하고 일본어는 시작단계라는 것이다. 축구선수 박주호 씨의 4세 된 딸이 4개 국어를 구사하는 것을 보면서 그녀가 다중언어로 자녀를 키운 사례가 떠올랐다. 여성
이진경 JG사회복지연구소 대표단일민족이라는 정체성을 유지한 한국의 성씨(姓氏)는 이름 앞에 붙여진 칭호로 혈족 관계를 나타낸다. 세계화의 흐름에 따라 외국으로 이주한 가족, 친지는 증가하고, 통계청에서는 2019년 출산율 0.98명, 인구절벽시대로 접어들었다고 해 경제·사회의 근간이 흔들릴 수 있다는 현실을 실감케 했다. 이러한 한국 사회에 체류하는 외국인이 작년 기준 240만명을 넘었다. 귀화자들이 늘면서 본인 이름 중 하나의 글자를 성씨로 깡·곰·굳·귤·길·떵·란·레·벌·에 ·짱·쩐·팜·흰씨 등으로 등록하고 있다. 아니면 자신의
김홍철 기술경영학 박사요즘은 다소 변했지만 1970~90년대에 예수님 탄생일인 크리스마스 데이를 전후해 TV에서 자주 방영했던 기독교 성극(聖劇) 영화 중 대표적인 것으로 “삼손과 들릴라”라는 영화가 있었다. 구약시대 이스라엘민족을 이끌던 판관 혹은 선지자 중 한 사람인 삼손은 엄청난 괴력을 가지고 있었으며, 이를 두려워한 필리스티아 제후들은 들릴라를 이용해, 삼손의 힘의 원천인 머리카락을 자르도록 한다. 잠든 사이 들릴라에게 머리카락을 잘리고 힘을 잃은 삼손은, 마지막 기도를 통해 힘을 회복해 자신을 압박하던 모든 필리스티아 사람
정라곤 논설실장 시인 올해는 제21대 국회의원을 뽑는 총선이 있는 해이니 정치 이야기를 먼저 해보자. 정치에 싫증이 난 혹자들은 ‘정치’라는 말만 나오면 관심이 없다거나 고개 돌려 외면하기 일쑤지만 민주주의 제도 아래서 정치는 국민생활에 깊숙이 개입돼 일상으로 내재돼 있기 때문에 무턱대고 도외시할 수도 없는 일이다. 싫든 좋든 간에 정치 속에서 정치를 이해해야 될 입장에 처해진바, 다시 말하면 우리 현실에서 정치는 필수불가결한 요소임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뜻이다. 정치(政治)는 한글사전에 풀이돼 있듯이 ‘나라를 다스리는 일’이다. 즉
이호규 대중문화평론가최근 자신의 이미지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연예인들이 오래전 혹은 최근 저지른 행적으로 구설수에 오르며 곤욕을 치르고 있다. 연예인은 이미지로 먹고사는 직업군이다. 한순간의 실수로 타격을 받으면 대중은 해당 연예인에 대한 이미지를 가지고 계속 술안주 삼게 된다. 이미지로 한순간에 타격을 받은 연예인은 가지고 있는 이미지가 땅에 떨어지며 다시 재기하기가 쉽지 않다.조용히 컴백하기 위해 한두개 예능이나 작품에 출연해도 말들이 많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들이 만들어왔던 이미지며, 그 이미지를 신뢰하고 따랐던 대중들이
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터 이사장 우리 민족은 병자호란 때를 떠올릴 때마다 약소국이 당했던 처참한 비극을 되살리곤 한다. 또 일제 강점기 때도 우리의 꽃 같은 여성들이 일본 군대의 성노리개로 끌려가 혹사당한 아픈 기억을 영원히 잊을 수 없다. 그렇다면 오늘은 그 뼈아픈 역사가 종식됐는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는 데 심각성이 있다. 탈북민들, 특히 극히 일부 여성들에게 송구한 마음이지만 오늘 칼럼은 현재 중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탈북 여성의 인권에 대한 글을 쓰고자 한다. 도무지 분노를 삭일 수 없기 때문이다.얼마 전 월간중앙은 10월 말
최창우 안전사회시민연대 대표지난 2일 서울 성북동의 빌라형 주택에서 네 모녀가 사망한 채로 발견됐다. 사망자는 70대 어머니와 40대 딸 세 명이다. 국과수는 최종 결과는 아니지만 부검 소견으로 일산화탄소 중독이 의심된다고 밝혔다. 자살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2013년부터 두 딸이 주얼리 가게를 운영했지만 사업은 안 되고 월세 200만원은 감당하기 힘들어 보증금까지 까먹는 처지가 됐다. 3년 뒤 가게를 접고 보증금 3000만원에 100만원 월세 집을 얻었다. 4명이 함께 살면서 셋집에서 온라인 쇼핑몰을 운영했다. 최근 월세를 수개월
이호규 대중문화평론가82년생이면 현재 38세다. 조남주 작가의 동명 원작 소설이 그랬던 것처럼, 영화 역시 제목에서부터 이 시대의 30대 여성들을 대변하고, 가장 흔한 대한민국 여성 이름인 ‘김지영’에서 느낄 수 있듯이 가장 전형적이고 평범한 여성들을 이야기하고 싶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영화 82년생 김지영은 이 시대의 전형적인 여성을 그려내고 현실을 조망하는 데 디테일하게 신경 쓴 모습이 많이 보였다. 서사는 가족의 이야기로 단순하게 흘러갔지만 플롯이 탄탄하다 보니 몰입을 높였으며 배우 김미경을 포함한 박성연, 이봉련, 공
서은훤 행복플러스연구소 소장살다보면 심각하게 부딪칠 때가 있다. 부딪쳐서 이겨도, 져도 마음이 편하지 않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승패의 점수를 49대 51이라고 생각한다면 그로 인한 마음의 상처를 줄일 수 있다. 필자는 요즈음 의식에 대한 책을 읽고 있는데 우리 모두는 비슷한 의식을 가진 사람끼리 만나게 돼있다. 의식이 맞지 않으면 자연스럽게 헤어지게 된다. 결국 의식이 비슷한 사람만이 남게 된다.필자의 경우도 최근에 가까운 사람 때문에 서운한 일이 있었다. 그런데 ‘그래 알았어. 내가 졌어. 49대 51로’ 이렇게 생각하니 한결 마
전경우 작가/문화칼럼니스트TV가 귀하던 시절이 있었다. 동네 구멍가게에서는 과자를 사면 TV를 볼 수 있게 해 주었고, TV가 있는 집 안방은 동네 사랑방이 되곤 하였다. 여름밤이면 동네 사람들이 평상에 둘러 앉아 함께 TV를 봤다. 동네에서 TV가 있는 집 아이는 골목대장을 할 수 있었다. 혹시 녀석의 마음에 들지 않을까, 아이들은 TV 있는 집 아이 눈치를 살폈다.살림살이가 나아지면서 집집마다 TV가 생겼다. 집안마다 TV 한 대씩 거의 다 들어온 게 30년 전이다. 88올림픽이 열린 다음해인 1989년이다. 우리나라에 TV가
최병용 칼럼니스트“꽃으로도 때리지 말라!” 굳이 아이나 여성이란 대상을 특정하지 않더라도 사람이 또 다른 사람을 폭력으로 제압하는 것은 인권을 짓밟는 파렴치한 범죄로 지탄받아 마땅하다. 전남 영암에서 발생한 베트남 이주여성 가정폭력 사건은 박항서 축구 감독이 몇 년간 일군 한-베트남 우호관계를 한순간에 무너뜨렸다. 사실여부가 확인되지 않은 국적취득 위한 기획폭력설이 있긴 하지만 폭력남편에게 면죄부를 줄 정도는 아니다.지난해 12월 경남 양산에서는 필리핀 이주여성이 21살 연상 남편에게 살해당했다. 2011년 한국에 들어온 이 여성은
서상욱 역사 칼럼니스트 담장 없는 박물관이라는 소흥(紹興)을 찾았다. 유명한 황주(黃酒)에 취하는 것보다 왕희지(王羲之)와 서위(徐渭 1521~1593)에게 취하고 싶었다. 서위가 아니었다면, 청등서옥은 소흥의 외진 골목에서 사라졌을 것이다. 나와 성이 같다는 것도 작은 이유였지만, 고호를 닮은 삶을 영위한 그가 그리웠다. 400여년 전의 서위는 여전히 등나무 의자에 앉아 있었다. 두 눈을 감고 지난날을 되새기는 것 같았다. 청년시절 그도 당당했던 시절이 있었다. 왜구토벌을 지휘하던 직절(直浙)총독 호종헌(胡宗憲)을 면접할 때, 삼
전남 영암에서 베트남 부인을 폭행한 남편 김모 씨가 구속됐다. ‘한국말을 잘 못해서였다’는 김씨의 아내 폭행이유에 나라망신이라며 공분이 일고 있다.청와대 국민청원에는 김씨에 대한 강력처벌을 촉구하는 청원글이 올라왔다. 김씨가 구속되면서 남긴 말도 혀를 차게 만든다. ‘다른 남자도 나와 같았을 것’이라며 자신의 폭행을 정당화한 것을 넘어 한국 남성 전체로 일반화시키려했다. 두 살배기 아이 앞에서 부인을 몇 시간 동안 주먹과 소주병으로 폭행한 이 사건은 한국 남성 다수가 지닌 가부장적 사고의 단면을 보여준다. 또 가정폭력에 대한 낮은
서상욱 역사 칼럼니스트 춘추시대 주왕실이 쇠약해지자 각국은 치열한 전쟁에 돌입했다. BC684년, 채애후(蔡哀侯)가 진(陳)의 여자를 아내로 맞이했다. 동시에 식후(息侯)도 채부인의 자매인 규(嬀)와 결혼했다. 같은 소국이었지만 양국의 정치적 노선은 달랐다. 채후는 동방의 강국 제와 가까웠고, 식후는 남방의 강국 초와 가까웠다. 채후는 빼어난 미인인 식부인을 넘보았다. 어느 날 식부인이 친정으로 가는 길에 채를 방문했다. 채후는 처제를 희롱했다. 귀국한 식부인이 남편에게 고자질했다. 식후는 초문왕에게 채후를 징벌해달라고 요청했다.
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 최근 다시 탈북민 사회에서 탈북자란 이름을 ‘자유민’으로 바꾸자는 여론이 대두되고 있다. 알고 있는 바와 같이 현재 탈북민의 법정 용어는 ‘북한이탈주민’이다. 이명박 정부 때 대통령이 나서 “거 너무 이름이 긴데 그냥 탈북자라고 하면 안 될까” 해서 탈북자가 되었고, 탈북민들 스스로는 ‘자’가 들어가는 격하된 말보다 부드러운 ‘민’이 좋아 대충 ‘탈북민’으로 부르고 있다. 앞서 탈북민은 월남귀순용사, 새터민 등을 거쳐 현재의 북한이탈주민으로 정착하였다. 북한이탈주민은 북한 사회에서 이탈한 사람, 즉 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