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터 이사장 

 

우리 민족은 병자호란 때를 떠올릴 때마다 약소국이 당했던 처참한 비극을 되살리곤 한다. 또 일제 강점기 때도 우리의 꽃 같은 여성들이 일본 군대의 성노리개로 끌려가 혹사당한 아픈 기억을 영원히 잊을 수 없다. 그렇다면 오늘은 그 뼈아픈 역사가 종식됐는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는 데 심각성이 있다. 탈북민들, 특히 극히 일부 여성들에게 송구한 마음이지만 오늘 칼럼은 현재 중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탈북 여성의 인권에 대한 글을 쓰고자 한다. 도무지 분노를 삭일 수 없기 때문이다.

얼마 전 월간중앙은 10월 말부터 11월 중순까지 이인실씨를 포함, 총 5명의 탈북여성과 심층 인터뷰를 진행한 사실을 공개했다. 모두 중국에서 인신매매를 경험하고, 가까스로 탈출에 성공한 탈북민들이었다. 그녀들은 자신의 문제를 국적, 이념, 정치적 문제와 별개로 기본적 자유와 권리를 가지는 한 사람의 보편적·천부적 ‘인권’의 문제로서 바라봐 달라고 신신당부했다. 더 이상 이런 비극이 계속되지 않도록 막아달라는 절규의 목소리였다. 

2008년 한국에 들어온 박은수(가명)씨는 20대 초반의 나이에 중국 항저우의 농촌 마을에 팔려갔다. 그녀는 비싼 돈 들인 ‘노예’ 취급을 받으며 10년이 넘는 시간을 버텼다고 말한다. “처음 그곳에 갔을 때였죠. 북한 여자가 왔다는 소문이 동네에 돌자, 남자들이 시도 때도 없이 구경을 왔어요. 어떤 날은 남편이라는 사람이 성관계를 요구하고, 어떤 날은 시아버지란 사람이, 또 어떤 날은 시아주버니라는 사람이 요구했고…. 그곳에서 저는 가족의 일원이 아니라 그저 성 노예에 불과했죠.” 

앞서 소개한 이인실 씨는 매매혼을 당하는 경우는 그나마 나은 경우라고 담담하게 말했다. 그녀 주위에는 악질 브로커를 만나 중국 동북 3성 주변의 성매매업소로 팔려간 후, 매춘부의 길로 들어선 이들도 더러 있었다. 중국 내 탈북 여성을 향한 성 노예화 유형은 ▲인신매매 후 강제결혼 ▲강요에 의한 성매매 ▲웹캠 등을 이용한 사이버 성매매 등으로 크게 분류된다. 최근 중국 내부의 인터넷 보급률이 높아지면서 탈북여성들이 사이버 성매매에 강제 동원되는 문제가 국제 사회의 주요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사이버 성매매의 종류에는 흔히 ‘몸캠’이라 부르는 신체 노출 동영상 촬영에서부터 인터넷 방송을 하며 시청자에게 돈을 받고 주문형 성행위를 보여주는 유형까지 다양하다. 

인터뷰 진행 과정에서 실제로 사이버 성매매 피해자들을 여럿 봤다고 증언한 탈북 여성을 만날 수 있었다. 김현아(31, 가명)씨는 탈북 후 중국 해림 시골 마을로 팔려가 강제결혼을 당했다가 몇 번의 탈출 시도가 무산되면서 브로커에 의해 끝내 성매매 업소로 팔려갔다. 당시 김씨는 근처에 북한에서 온 젊은 여자들이 감금당해 있다는 얘기를 종종 들었다고 한다. 그녀는 “나는 그때 이미 삶을 반쯤 포기한 상태였기 때문에 희망 없이 하루하루를 버티기만 했다”며 다음과 같이 돌이켰다. “하지만 어린아이들은 나와 상황이 다르다고 생각했다. 그들에게 인간답게 살 권리를 주고 싶었고, 아는 브로커를 통해 한국 선교단체에서 그 아이들을 구해줄 수 있는 방법이 없는지 수소문하기도 했다.” 

북한 인권단체 ‘코리아 퓨처 이니셔티브(Korea Future Initiative)’는 지난 5월 ‘성노예: 북한여성의 중국 내 매춘과 사이버섹스, 강제결혼’ 보고서를 공개했다. 인터뷰에 응한 김예나(24, 가명)씨는 이 같은 사이버 성매매의 피해당사자다. 그녀는 갇혀 있는 동안 자신이 겪었던 상황을 전화상으로 짧게나마 증언했다. “중국에 가면, 연예인도 맘껏 보고 평범한 여자로 살 수 있을 줄 알았어요. 북한에서 갖지 못한 자유를 중국에서는 누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죠. 그런데 나이가 어리단 이유로 사이버 성매매업소로 팔려갔어요. 포주는 나에게 하루 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 남자들이 요구하는 성적인 행위에 응할 것을 강요했어요.” 

우리 정부와 인권단체들은 이런 비극이 이어지지 않도록 적극적인 대책을 세워줄 것을 강력히 호소하는 바이다. 우리 정부가 나서지 않으면 이런 비극에 종식은 절대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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