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철 기술경영학 박사

 

요즘은 다소 변했지만 1970~90년대에 예수님 탄생일인 크리스마스 데이를 전후해 TV에서 자주 방영했던 기독교 성극(聖劇) 영화 중 대표적인 것으로 “삼손과 들릴라”라는 영화가 있었다. 구약시대 이스라엘민족을 이끌던 판관 혹은 선지자 중 한 사람인 삼손은 엄청난 괴력을 가지고 있었으며, 이를 두려워한 필리스티아 제후들은 들릴라를 이용해, 삼손의 힘의 원천인 머리카락을 자르도록 한다. 잠든 사이 들릴라에게 머리카락을 잘리고 힘을 잃은 삼손은, 마지막 기도를 통해 힘을 회복해 자신을 압박하던 모든 필리스티아 사람들을 죽이고 자신도 죽는 비극으로 막을 내린다. 이때 삼손을 유혹하는 들릴라는 성경에서도 치명적인 매력을 가진 여인으로 서술되고 있으며, 1949년 이 내용이 영화화했을 때 삼손역인 ‘빅터 마추어’의 상대역인 들릴라역으로 출연했던 빼어난 미모의 배우가 바로 ‘헤디 라마(Hedy Lamarr; 1914~2000)’이다.

본명이 헤드비히 에바 마리아 키슬러(Hedwig Eva Maria Kiesler)로 다소 긴 이름의 헤디는 오스트리아 빈에서 부유한 유태계 은행가 집안에서 태어났으며, 자신이 희망하던 연기와 영화를 위해 16세때 베를린 소재의 연극학교에 입학, 이른 시간인 10대 후반부터 영화에 출연해 큰 인기를 모았다.

또한 당시 시점에서도 다소 빠른 시기인 20세에 오스트리아 군수품 제조업자와 결혼을 했다. 비록 첫 결혼생활이 오래 가진 못했지만 헤디는 무기상인 남편의 직업상, 정부 관계자, 과학자, 혹은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를 만나 그녀의 과학적 지식을 높일 수 있는 계기를 얻을 수 있었다.

위 소개한 “삼손과 들릴라”외에도 다양한 작품활동을 하면서 영화배우로서의 명성을 쌓아왔던 헤디는, 그러나 특출한 아름다운 외모가 그녀의 천재적인 과학적 성과가 무시되고 완전히 묻혀져 버리게 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만들게 됐다. 헤디 라마는 무선통신의 기본 개념인 ‘주파수도약’을 발명한 특별한 과학자이다. 헤디는 독일 군수업체 대표인 그녀의 첫 남편에게서 들은 ‘원거리 조종어뢰 제작’ 계획의 곤란함, 즉 어뢰가 정확하게 목표물을 찾아가도록 원거리에서 조종할 수 있는 궤도조정기술이 필요한데, 이 때 무선전신기를 이용하면 적에게 미리 궤도가 파악되거나, 방해전파로 인한 원격조종 불가로 목표물 파괴가 곤란하다는 약점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후일 나치의 추종자인 첫 남편과 결별하고 미국으로 이주한 헤더는 이와 같은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주파수도약’이라는 아이디어를 고안해 냈다.

그녀가 고안해 낸 주파수도약(Frequency Hopping)이란 우리나라가 세계 최초로 성공적인 상용화를 이루어, 진정한 IT강국으로서의 입지를 구축한 CDMA이동통신 방식의 핵심 이론이며, 현재 사용 중인 블루투스, 와이파이 등 무선 서비스 출현에 큰 영향을 준 매우 중요한 기술이다.

주파수 도약이란, 보내고자 하는 신호를 실은 주파수인 반송주파수(반송파)를 기존보다 훨씬 크게 확장해, 이렇게 확장된 반송파내에서 신호를 계속 옮기면서 -hopping하면서- 전달함으로써 적이 전달하려는 실제 신호를 실은 그 특정 주파수를 탐지하지 못하게 한 것이다. 만약 반송파의 크기가 1~1000Hz(헤르쯔)라고 가정했을 때, 이 중 반송파 내부에 있는 1, 10, 38, 15, 267, 785, 16… 등의 아주 불규칙한 순서로 주파수를 선택해 신호를 싣는다. 즉 어느 순간에는 신호가 1주파수에, 다시 10, 또 다시 38… 이런 순서로 계속 hopping할 경우, 적의 입장에서는 신호를 실은 주파수를 순간 탐색했다 하더라도, 이미 그 주파수는 다른 주파수로 hopping하므로, 실제 신호를 실은 주파수를 탐색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 될 것이다. 수신측에서는 이미 약속된 주파수 hopping의 패턴을 알고 있으므로 이를 대조해 자신에게 보내준 신호를 실은 반송파를 추출하고 송신한 신호를 추출하게 된다. CDMA방식에서는 왈쉬코드라는 패턴을 만들어 수많은 반송파 중 송신측이 자신에게 보내온 신호를 파악한다. 이것이 ‘주파수도약’의 기본적 이론이다. 이러한 주파수도약 이론은 1942년 특허로 등록됐으나 당시에는 크게 주목받지 못했으며, 실제 이론이 상용화됐을 때는 이미 특허권한이 종료돼, 헤디는 아무런 금전적 이득도 얻지 못했다.

그러나 비록 늦었지만 그녀의 사후인 2014년, ‘미국발명가 명예의전당’에 이름을 올려 그 공로를 인정받았다. 아름다운 외모에 가려졌던 그녀의 탁월했던 지식과 성과, 상상력의 발로에 다시 한번 경의를 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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