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처세상] 82년생 김지영, 젠더 평등 외치지만 여성 삶의 고충만 다뤄 안타까워
[컬처세상] 82년생 김지영, 젠더 평등 외치지만 여성 삶의 고충만 다뤄 안타까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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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규 대중문화평론가

 

82년생이면 현재 38세다. 조남주 작가의 동명 원작 소설이 그랬던 것처럼, 영화 역시 제목에서부터 이 시대의 30대 여성들을 대변하고, 가장 흔한 대한민국 여성 이름인 ‘김지영’에서 느낄 수 있듯이 가장 전형적이고 평범한 여성들을 이야기하고 싶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영화 82년생 김지영은 이 시대의 전형적인 여성을 그려내고 현실을 조망하는 데 디테일하게 신경 쓴 모습이 많이 보였다. 서사는 가족의 이야기로 단순하게 흘러갔지만 플롯이 탄탄하다 보니 몰입을 높였으며 배우 김미경을 포함한 박성연, 이봉련, 공민정 등 연극배우 출신인 조연급 배우들의 연기는 작품의 깊이를 높이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이 영화의 흥미코드는 ‘빙의’다. 김지영의 캐릭터에 삽입된 이 장치는 원작소설에서 제한됐던 극적인 상황을 빙의를 통해 상대방이 지니고 살았던 아픔과 상처를 표현해주고 보듬어주는 역할까지 한다. 82년생 김지영에서는 ‘엄마가 되어봐야 엄마의 마음을 안다’는 말을 진리로 포장한다. 영화에서도 지영의 엄마 미숙은 지영이에게 “지영아, 엄마가 도와줄게. 너 하고픈 거 해”라며 가슴 속 깊은 딸에 대한 사랑을 내비친다.

이 영화는 분명 결혼한 3040여성에게는 “나와 가장 가까운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느낄 것이다. 친정엄마하고의 관계, 30대 후반이 되기까지 지니고 살았던 상처, 고통, 아픔과 자신의 가족이야기, 최근 3년간 산모 10만~15만명 가량이 겪고 있다는 산후우울증, 아이 양육에 대한 고충, 경단녀(경력 단절 여성) 등 여성에게 해당되는 너무 많은 키워드들을 담고 있다. 결혼한 3040대 여성들이 이 영화를 보고 공감을 못한다면 문제가 있는 것이며 자연스럽게 이 사회 속에서 흥행과 직결될 수밖에 없는 소재들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영화를 보고 기분이 개운치 않거나 아쉽다고 느끼는 이들도 많다. 공감하기 힘든 윗세대들, 특히 남성들이다. 자연스럽게 영화는 페미니즘과 연결되고 있다. 남성의 고충과 어려움은 빠져 있고 오직 1인칭 시점에서 결혼한 여성 중심의 인권과 권리, 감수성과 추억만을 소재로 이야기를 끌고 나갔다.

“아이 하나 키우는 데 저렇게 힘들어? 영화가 너무 포장했네” “옛날 여자들은 아이 6~7명 낳고 잘만 키웠는데” 등 김지영에게 호들갑 떨지 말라고 공감할 수 없다는 의견도 많이 내비친다. 이와 달리 김지영만의 특화된 장치는 더 젊은 세대들에게 “결혼을 꼭 해야 하나”라는 또 다른 질문들을 던졌다. 특히 젠더 감수성이 많이 풍부한 지금의 2030세대들에게 힘들어하는 ‘82년생 김지영’은 페미니즘 선물뿐만 아니라 “결혼은 비극인가”라는 질문을 정확하게 묻고 있다. 이미 해외 선진국에서는 20년 전부터 젠더 키워드가 사회의 중요한 이슈로 급부상했었다. 한국은 불과 5~6년 전 부터다. 82년생 김지영 같은 젠더 평등을 시사하는 작품들은 계속 쏟아져 나올 것이다.

김지영은 결혼하고 아이를 키우는 자신을 피해자라고 여긴다. 이 공간 속에 아이에 대한 사랑, 남편에 대한 사랑, 가족이 꿈꾸는 미래는 없다. 스스로를 피해자라고 여기는 김지영은 탈출 창구로 엄마를 무척 그리워한다. 그리고 엄마도 나처럼 피해자였지 라는 강한 믿음과 애틋함으로 엄마가 이루지 못했던 ‘선생님’이라는 꿈에 대해 깊게 공감한다.

영화 82년생 김지영에서는 굳이 어떤 특정 인물이 나쁘거나 악한 것이 아니라 유교적 관습에서 묻어져 나온 이 사회 시스템을 꼬집고 가부장제도를 비판하고 일련의 틀에 박힌 ‘사회적 피해자’인 여성에 대한 고정관념에 정면으로 도전한다. 아직 10대나 결혼하지 않은 20대들은 이 작품에 쉽게 공감하지 못할 수 있다. 어쩌면 그게 당연한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공감하는 작품에 박수를 보내고 눈물을 흘린다. 이 사회 속에서는 젠더뿐만 아니라 계급, 왕따, 취업, 학벌, 미래에 대한 불안 등 우리가 공감할 수 있는 너무 많은 요소들이 등재돼 있다.

82년생 김지영이 어쩔 수 없는 편가르기식 반응을 주는 것은 아닐 것이다. 독특한 메타적 서술은 분명 결혼한 많은 주부들과 경단녀들에게 큰 울음과 공감을 선사하고 있다. 또래 관객뿐 아니라 중장년층까지도 다양한 의견, 다양한 시선이 존재하고 많은 평가들이 나오는 것은 그만큼 이 작품이 딸의 입장에서, 엄마의 입장에서, 남편의 입장에서 크게 와닿았다는 방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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