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상욱 역사 칼럼니스트  

 

춘추시대 주왕실이 쇠약해지자 각국은 치열한 전쟁에 돌입했다. BC684년, 채애후(蔡哀侯)가 진(陳)의 여자를 아내로 맞이했다. 동시에 식후(息侯)도 채부인의 자매인 규(嬀)와 결혼했다. 같은 소국이었지만 양국의 정치적 노선은 달랐다. 채후는 동방의 강국 제와 가까웠고, 식후는 남방의 강국 초와 가까웠다. 채후는 빼어난 미인인 식부인을 넘보았다. 어느 날 식부인이 친정으로 가는 길에 채를 방문했다. 채후는 처제를 희롱했다. 귀국한 식부인이 남편에게 고자질했다. 식후는 초문왕에게 채후를 징벌해달라고 요청했다. 초문왕이 채후를 생포했다가 제를 의식하여 석방하기로 결정했다. 송별연에서 채후가 아쟁을 연주하던 여자를 아름답다고 하자, 초문왕은 더 아름다운 여자가 있느냐고 물었다. 채후가 말했다.

“식부인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식부인이 보름달이라면 등잔불에 불과합니다.”

초문왕은 호색한이었다. 초문왕이 한 번이라도 볼 수 있다면 죽어도 좋겠다고 말하자, 채후는 속국의 여자인데 무슨 문제냐고 부추겼다. 초문왕은 순수(巡狩)를 핑계로 대군을 이끌고 식으로 갔다. 식후가 잔치를 열고 초문왕에게 술잔을 올렸다. 초문왕은 식부인께서 축하의 술잔을 권한다면 좋겠다고 말했다. 식후는 등골이 오싹했다. 그러나 감히 종주국 군주의 청을 거절하지 못했다. 식부인의 잔을 받은 초문왕은 호탕하게 마시고 돌아갔다. 호색한의 본능은 강했다. 그녀를 포기할 수 없었던 그는 강제로라도 탈취하기로 결심했다. 다음 날 덥례를 명분으로 잔치를 열고 식후를 초대하고, 연회석 주변에 복병을 숨겨두었다. 자리가 무르익자 초문왕이 정색하고 말했다.

“과인은 식부인을 위해 수많은 군사들을 희생했소. 식부인께서 위로해야 하지 않겠소?”

식후는 식은땀을 흘리며 아내에게 물어보고 대답하겠다고 말했다. 초소왕은 갑자기 안색을 바꾸며 식후가 자기를 희롱한다고 꾸짖었다. 복병이 나타나 식후를 결박했다. 미리 소식을 들은 식부인은 이리가 방안으로 들어왔으니, 자업자득이라고 한탄했다. 그녀는 재빨리 우물로 뛰어들었다. 그러나 곧바로 달려온 초군이 그녀를 끌어냈다. 식규가 오자 초문왕은 천하를 얻은 것보다 좋아하며 체면불구하고 달래기에 바빴다. 식부인이 끝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식후를 살려주겠다고 약속했다. 초문왕은 식을 영토로 편입하고 식규를 부인으로 삼았다.

춘추시대 전기에 제후국은 영토와 이권을 챙기기 위해 치열하게 싸웠다. 소국인 채, 식, 진은 단결로 국가를 보전하는 것이 순리적이었다. 세 나라의 국혼은 이러한 필요성 때문이었다. 그러나 채와 식 두 나라는 국가의 존립을 위한 정책과 외교노선이 달랐다.

갈등이 격화된 것은 여자 때문이었다. 먼저 채후가 처제를 집적거리는 결례를 범했다. 식후는 동네 건달이 다른 놈에게 가까운 ‘성님’에게 달려가 도움을 청하는 것처럼 종주국으로 모시던 초문왕을 찾아갔다. 그러나 그는 초문왕이 호색한이라는 사실을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초문왕은 식과 초의 갈등을 이용해 식을 멸하고, 내친 김에 미녀까지 얻은 일거양득의 묘수를 과시했다. 식규는 두 아들을 낳았지만, 끝까지 초문왕과 대화를 하지 않았다. 그녀가 말했다.

“나는 두 남편을 섬겼습니다. 죽을 수는 없으나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

그녀가 죽지 못한 것은 친정인 진 때문이었다. 초문왕은 자신이 채를 멸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오해했다. 초왕은 직접 채를 공격하여 멸망시켰다. 어떤 사람이 말했다.

“상서(商書)에서 ‘나쁜 일은 들판에 불이 번지는 것과 같다. 다가갈 수 없으니 어떻게 끌 수가 있겠는가?’ 이는 채애후를 두고 한 말이다.”

겉으로는 여자 때문에 나라가 망한 것 같지만, 그것은 남자들의 핑계일 뿐이다. 식규는 경국지색이 아니라 끝까지 조국을 생각한 애국자였다. 비난의 대상은 채후와 식후이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