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우 작가 문화칼럼니스트새해 들어 스포츠 경기가 한창이다. 축구 등 올림픽 예선 경기가 본격화하면서 TV 중계방송 볼 일이 많아졌다. 긴박하게 돌아가는 정치상황이나 국제 정세와 상관없이 스포츠는 정해진 일정에 따라 차곡차곡 진행되고 있다. 스포츠가 국민의 정신을 딴 곳으로 돌린다고 해 비난 받은 적도 있지만, 고단한 현실을 잊고 마음의 활력을 얻는 데는 스포츠만한 것도 없다. 도쿄 올림픽을 앞두고 후쿠시마 방사능 유출 사고로 인한 안전 문제와 욱일기를 둘러싼 논쟁 등 이래저래 말도 많고 걱정도 많다. 그럼에도 도쿄 올림픽 열기가
전경우 작가 문화칼럼니스트과거제도는 갑오개혁으로 폐지될 때까지 조선시대 최고의 인재 등용문이었다. 과거에 합격하기만 하면 벼슬을 얻고 떵떵거리며 살았다. 초시나 진사만 되어도 뒷짐을 지고 유세를 떨었다. 선비들은 누구나 과거 시험에 매달렸다. 젊었을 때 합격해서 영감님 소리 들으며 영광을 누린 사람도 있었지만, 평생 공부만 하다 죽은 이들도 많았다. 과거에 합격하지 못해 벼슬을 못한 사람은 묘비에 학생이라 새겼다.그렇다고 게나 고둥이나 누구나 과거에 응시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문과(文科)는 양반집 자제 아니면 응시할 수 없었고,
전경우 작가/문화칼럼니스트백년 전 서울에는 초가들이 즐비했다. 서울의 집 열 채 중 일곱은 초가였고, 기와집이 둘, 반기와집이 한 채 정도였다고 기록돼 있다. 1888년 서울에 처음 온 미국의 언더우드 부인은 서울이 마치 거대한 버섯처럼 보였다고 했다. 서울에 있는 대부분이 초가였다. 돈만 있으면 신분에 상관없이 크고 화려한 기와집을 지을 수 있었다. 갑오개혁으로 신분제도가 폐지되면서 집의 규모나 형태에 대한 규제가 사라졌던 것이다.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선보인 양옥은 1884년 인천에 세워진 세창양행 사택이라고 한다. 건평 170평
전경우 작가/문화칼럼니스트강원도 대관령면 횡계리는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이 열렸던 곳이다. 이곳에는 개·폐막식장과 시상식장, 스키 경기장, 슬라이드 경기장 등이 있었다. 지금 이곳은 언제 올림픽이 열렸나 싶을 정도로 삭막하다. 개·폐막식장은 일부 건물만 남아 있고, 사람들로 북적였던 시상식장 광장엔 찬바람만 몰아치고 있다. 대한민국 최초의 봅슬레이 올림픽 금메달로 국민들을 환호케 했던 슬라이드 경기장은 인적이 끊긴 지 오래다. 강릉의 경기장들도 마찬가지다.‘연극이 끝나고 난 뒤 혼자서 객석에 남아 조명이 꺼진 무대를 본 적이 있나
전경우 작가/문화칼럼니스트요즘 베트남 사람들, 참 살 맛나겠다. 축구만 했다 하면 온 나라가 난리가 난다. 박항서 매직이 베트남을 축구의 나라로 만들고 있다. 온 국민이 축구 하나로 한 덩어리가 되고 있다. 편 갈라 싸울 일도 없고 아파트 값 치솟는다고 걱정할 일도 없다. 축구 하는 날만 되면 밤새 오토바이 타고 달리며 부부젤라 불어 재낀다. 진짜 부럽다. 우리도 저렇게 신난 적이 있었다. 벌써 아득한 시절 같지만, 17년 전 2002년 월드컵 때 꼭 저랬다. 거리가 붉은 색 물결로 넘쳤고 밤새 ‘대~한민국’을 외쳤다. 그렇게 국민
전경우 작가/문화칼럼니스트늘 한 해를 마무리 할 때면 다사다난(多事多難)했다는 말을 한다. 일도 많고 어려움도 많았다는 뜻인데, 올해도 정말 그랬다. 정치 이야기는 별로 하고 싶지만, 그럼에도 정치 때문에 온 나라가 뒤집어졌다는 말은 하지 않을 수 없다. 편을 가르고 악다구니 하면서 증오를 키웠다. 그 와중에서도 노래 부를 사람은 노래를 부르고, 춤 출 사람은 춤을 추었다.최근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우리나라 콘텐츠 산업 매출액이 125조 5천억원이었다. 작년 119조 1천억원에 비해 5.4% 성장한 것이다.
전경우 작가/문화칼럼니스트군대에 있을 때 가장 부러운 일은 선임이 제대를 하는 것이다. 가슴과 모자에 예비군 마크를 턱 붙이고 부대 문을 나서는 선임의 뒷모습을 보며, 나에게도 저런 날이 올까 싶어 공연히 심란해지는 것이다. 별 탈 없이 군대를 제대하는 것도 대견하지만 무엇보다 제대만 하면 온 세상이 내 것 같고 무서울 게 없을 것 같다는 생각도 한다.그런데 막상 제대를 하고 군대 물이 조금 빠지기 시작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민간인으로 돌아가 버리고 만다. 현역 시절 그 부럽던 예비군 마크를 달고 예비군 훈련 받으러 가는 것도 여간
전경우 작가/문화칼럼니스트‘강화오일장 꽃팬티 옆에/ 빨간 내복 팔고 있소// 빨간 내복 사고 싶어도/ 엄마가 없어서 못 산다오// 엄마를 닮은/ 늙어가는 누나도 없다오// 나는 혼자여서/ 혼자 풀빵을 먹고 있다오// 빨간 내복 입던/ 엄마 생각하다 목이 멘다오.’공광규 시인의 시 ‘빨간 내복’이다. 요즘은 보기 어렵지만 빨간 내복이 크게 유행한 적이 있다. 첫 월급을 받으면 부모님에게 빨간 내복을 사 드리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겼다. 많은 색깔 중에 왜 하필 빨간 색인지 누구도 설명해 주지 않았고 누구도 묻지 않았지만 아무튼 내복하면
전경우 작가/문화칼럼니스트자본과 상업 영화 제작 시스템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주제와 형식으로 만들어진 독립영화가 크게 주목을 받은 적이 있다. 10년 전 ‘워낭소리’ ‘똥파리’ 등이 10만 관객을 맞으며 관심을 모았던 것이다. 자본의 논리에 얽매이지 않는 독립예술영화가 전성기를 구가할 지도 모른다는 기대도 컸다. 이후 독립영화 제작이 꾸준하게 이어져 왔지만 그때만큼 이목을 끌지 못하고 있다. 독립영화의 위기론이 그래서 나오는 것이다.2018년 우리나라에서 개봉된 독립영화는 113편으로 평균 관객 수는 9774명이었다. 2014년 개봉
전경우 작가/문화칼럼니스트손흥민 선수가 눈부신 활약을 펼치며 국민들을 즐겁게 하고 있다. 대한민국뿐 아니라 세계의 축구 레전드로 꼽히는 차범근을 뛰어넘는 대기록을 달성했다. 차범근 전 국가대표 감독도 소셜미디어를 통해 “우리 흥민이, 우리 흥민이”하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손흥민 선수의 대기록도 반갑지만 축구 선배의 따뜻한 격려와 애정이 보는 사람들의 마음을 흐뭇하게 한다.손흥민은 ‘차붐’을 뛰어넘는 역사적인 순간에도 기뻐하는 대신 두 손을 모으고 기도하는 세러머니를 했다. 그 전 경기에서 자신의 태클로 부상을 당한 선수에 대한
전경우 작가/문화칼럼니스트영화 ‘82년생 김지영’이 인기다. 대박이 터질 조짐이다. 한국 영화 인기가 시들해지면서 위기론이 나오고 있던 차에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흥행 성공과 함께 논란도 있고 잡음도 끊이지 않는다. 영화관에서 퀸의 노래를 함께 부르며 한 마음으로 즐기던 모습 대신 논쟁과 비난이 난무하고 있다.1982년에 태어난 김지영이라는 주인공이 가사노동, 육아, 직장, 시댁 문제 등으로 고민하고 힘들어 하고 있는 모습을 그린 영화다. 주인공이 빙의에 걸려 많이 아프다는 사실 말고는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다. 헛
전경우 작가/문화칼럼니스트1964년 동경 올림픽은 처음으로 미국과 유럽을 벗어나 아시아에서 열리게 됐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찾을 수 있다. 백인이 주도하던 올림픽을 아시아인이 주관함으로써 올림픽이 전 세계적인 축제로 거듭날 수 있게 된 것이다. 일본도 그 점을 십분 활용했다. 2차 세계 대전에서 패배한 열등국가에서 선진국들과 나란히 어깨를 겨누는 일등 국가로 인정받고 싶다는 열망이 올림픽에 투영됐고 결과는 성공적이었다.일본은 동경올림픽을 앞두고 대대적인 공사에 돌입했다. 7만 5천명을 수용할 수 있는 메이지 올림픽 스타디움과 스포츠
전경우 작가/문화칼럼니스트90년 전인 1929년 10월 지금의 서울 계동 현대그룹 빌딩 자리에 있던 휘문고등보통학교에서 첫 경평축구대회(京平蹴球大會)가 열렸다. 서울인 경성과 평양은 조선의 남과 북을 대표하는 도시였는데 이 두 도시가 서로 축구 경기를 펼쳤던 것이다. 일제강점기였다.경평축구대회는 스포츠를 통해 민족정신을 고취시키기 위해 조선일보가 마련했다고 한다. 조선일보가 무슨 민족정신이냐고 가자미눈으로 흘겨보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아무튼 그랬다. 1회 대회에선 모두 3차례 경기를 펼쳐 평양이 2대 1로 승리했다.그 다음해인 19
전경우 작가/문화칼럼니스트지금으로부터 백 년 전인 1919년 10월 27일, 서울 종로에 있던 단성사에서 ‘의리적 구토(義理的仇討)’라는 연쇄극(連鎖劇)이 공연됐다. 연쇄극이란 연극 막간에 영화가 상영되는 것인데, 연극과 영화가 혼합된 새로운 작품 형식이었다. 연쇄극은 주로 일본인들에 의해 주도되었고, 이날 첫 선을 보인 ‘의리적 구토’는 김도산이 이끌던 신파 극단 신극좌가 만들어 무대에 올렸다.‘의리적 구토’는 일반 연회장으로 인기가 높았던 단성사를 1918년에 인수해 전문 영화상영관으로 탈바꿈시킨 박승필(1875~1932)이 제
전경우 작가/문화칼럼니스트최근 이란에서 여성들도 축구 경기장에 입장할 수 있게 됐다는 뉴스가 나왔다. ‘세상에 이런 일이’라고 하고 싶지만 이란에서는 그게 현실이다.여성이 축구 경기장에 들어가는 것이 너무나 당연하고 심지어 여성 팬이 없는 스포츠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우리들로선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얼마 전에는 이란의 한 여성이 남장 차림으로 축구 경기장에 들어가려다 적발돼 체포까지 되자 분신자살하는 황당한 사건도 있었다. 실제로 이란에서는 남장을 하고 경기장에 들어가려는 사례가 많다.이란은 1979년 이슬람혁명 이후 여성이
전경우 작가/문화칼럼니스트군대에서 가장 힘든 과정 중 하나는 유격훈련을 받는 일이다. 한겨울 혹한기 훈련을 몇 번이나 받는지, 유격훈련에 몇 차례나 참여하는지가 군대 복을 좌우한다. 대한민국의 수많은 남자들이 제대를 하고 나서도 군대 꿈을 꾸고, 꿈속에서 유격훈련을 받으며 낑낑댄다. 분명히 제대를 했는데도 다시 군대에 가서 유격훈련을 받는, 참으로 얄궂은 꿈을 꾸기도 한다.유격훈련을 받을 때는 이름과 계급 따위는 상관없다. 이등병과 병장이 똑같은 자세로 똑같이 취급받으며 함께 뒹군다. 조교의 기세도 등등하다. 창이 긴 빨간 모자를
전경우 작가/문화칼럼니스트트로트는 구한말에서 일제 강점기 시절 일본의 엔카가 우리나라에 들어오면서 시작된 것이라는 주장이 있다. 서양의 춤곡 중 하나인 폭스트로트가 일본으로 건너가 엔카로 변했고 엔카가 다시 우리나라로 들어와 트로트가 됐다는 것이다. 트로트의 원조가 일본이라는 것이다. 트로트는 우리 전통 소리인 민요에서 나온 것으로, 일본 운운하는 것도 말도 안 된다는 의견도 있다. 엔카의 원조가 도리어 한국의 민요라는 주장도 있다.우리나라에 방송이 시작되고 대중가요가 보급되던 시기가 일제 강점기다. 당시 기생들이 대중 가수로 활동
전경우 작가/문화칼럼니스트리더십이 크게 관심을 모은 적이 있다. 기업이나 국가의 리더들이 갖춰야 할 덕목이 무엇인지, 자식들을 미래의 리더로 키우기 위해서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 지에 관한 강의나 책들이 인기를 끌었다. 히딩크 감독이 새로운 리더의 모습으로 각광받기도 했고, 과거의 위인들을 모델로 한 리더십 강연이 유행하기도 했다.“커서 뭐가 될래?” 하고 물으면, 어린 아이가 소매로 콧물을 닦으며 “대통령”이라고 대답하던 때가 있었다. 순수하고 어리숙한 시절 이야기였다. 하지만 지금은 대통령이 꿈이라고 말하는 아이들은 별로
전경우 작가/문화칼럼니스트1980년대 후반 서울 동숭동 마로니에 공원 앞 대로가 사람들로 북적이기 시작했다. 정부에서 이곳을 문화예술의 거리로 만들겠다며 대학로라는 이름을 붙인 것이다. 주말에는 자동차 통행을 막고 사람들이 도로 위에서 마음대로 놀도록 했다. 평소 자동차가 달리던 넓은 도로가 사람들 차지가 되었다. 교련복을 입은 대학생들이 도로 위에 둘러 앉아 막걸리를 마시고 기타를 치며 자유로움을 느꼈다. 그렇게 촌스러운 모습으로 시작된 대학로는 과연 문화와 예술의 거리라는 이름값을 톡톡히 해냈다. 젊은 층은 청춘의 달콤한 낭만으
전경우 작가/문화칼럼니스트1999년 문화부에서 제작된 음반 를 통해 한류(韓流)라는 말이 통용되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올해가 한류라는 말이 탄생한 지 20년 째 되는 것이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 하였지만,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세상이고 보면, 그 동안 변한 것들이 참으로 많고, 한류도 양과 질적 측면에서 몰라보게 성장하고 발전하였다.한류라는 말이 처음 만들어지던 이 시기부터 한류 콘텐츠 수출이 국가적 차원에서 논의되고 전략이 마련되었던 것 같다. 2000년대 들어 우리 문화 콘텐츠가 상당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