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우의 문화 찔러보기] 아이 낳고 싶은 나라 될 수 있을까
[전경우의 문화 찔러보기] 아이 낳고 싶은 나라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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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우 작가/문화칼럼니스트

 

군대에 있을 때 가장 부러운 일은 선임이 제대를 하는 것이다. 가슴과 모자에 예비군 마크를 턱 붙이고 부대 문을 나서는 선임의 뒷모습을 보며, 나에게도 저런 날이 올까 싶어 공연히 심란해지는 것이다. 별 탈 없이 군대를 제대하는 것도 대견하지만 무엇보다 제대만 하면 온 세상이 내 것 같고 무서울 게 없을 것 같다는 생각도 한다.

그런데 막상 제대를 하고 군대 물이 조금 빠지기 시작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민간인으로 돌아가 버리고 만다. 현역 시절 그 부럽던 예비군 마크를 달고 예비군 훈련 받으러 가는 것도 여간 성가신 게 아니다. 복장을 갖춰라, 줄을 똑바로 서라, 짝 다리 짚지 마라, 호주머니에 손 넣지 마라, 모자 똑바로 서라, 총을 꿩 사냥 나가듯 어깨에 걸치지 마라, 조교나 교관의 잔소리 듣는 것도 고역이 아닐 수 없다.

부대에 모아 놓고 훈련을 시키는 동원 훈련 기간이 요즘은 사흘로 짧아졌지만 예전에는 일주일이었다. 외출도 안 되는데다 밤이 되면 무료함을 견디는 것도 힘들다. 얼른 훈련이 끝나고 집에 가야겠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국방의 의무가 사나이의 본분인 줄은 알지만, 귀찮고 힘들게 여겨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이것을 잘 알고 있는 정부 당국자가 꾀를 낸 게, 예비군 훈련장에 가서 정관 시술을 받으면 조기 귀가 시켜주는 것이었다. 1970년대부터 시작된 예비군 대상 정관수술은 꽤 오래 유지되었다. 빵 하나 얻어먹고 단체로 시술을 받고선 조기 귀가하는 것이었는데, 집에 빨리 갈 요량으로 아무 생각 없이 덜렁 그곳을 묶어 버리는 이들도 있었다. 나중에 후회를 할지언정 당장 예비군 훈련만은 피하고 싶었던 것이다. 한 번 묶은 사람이 다음 해 또 시술을 받겠다며 손을 들고 나갔다가 퇴짜를 맞는 일도 있었다.

그러고 보면 그것도 제발 아이 좀 그만 낳으라고 국가가 나서서 말릴 때 일이다. 6.25전쟁이 끝나고 출산율이 엄청 높아지면서 정부에서도 고민이 깊었다. 1960년대 초반 우리나라 국민소득이 겨우 100달러 쯤 될 때였다. 당장 먹을 것도 없던 시절이었다. 그러니 입을 하나라도 줄여야 했다. 정부는 가족계획사업이라 해서 아이를 덜 낳도록 엄청 애를 많이 썼다. 예비군 정관 시술도 가족계획사업의 일환이었다.

1960년대 산아제한 사업은 ‘덮어놓고 낳다 보면 거지꼴을 못 면한다’는 구호와 함께 대대적으로 전개됐다. ‘3.3.35’ 운동이라 해서, 3명의 자식을 3년 간격으로 35세까지만 낳고 더 이상은 낳지 말자고 했다. 당시로서는 3명만 낳아도 엄청 자제하는 것이었다. 1970년대 들어 산아제한 운동 효과로 출산율이 많이 떨어졌다. 구호도 ‘아들 딸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로 바뀌었다.

덜 낳자고 하던 세상이 이제는 제발 좀 낳자고 하는 세상이 됐다. 내년에는 우리나라 사망자수가 출생수를 앞지르는 일이 벌어진다고 한다. 통계청 전망이 그렇다. 나라가 늙어가고 있는 것이다. 당장 나만 먹고 살다 가면 될 일이 아니다. 대대손손 나라가 건강하게 유지되어야 한다. ‘아들 딸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는 구호를 다시 외쳐야 할 판이다. 아이 낳고 싶은 나라가 돼야 할 텐데,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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