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우 작가 문화칼럼니스트

 

새해 들어 스포츠 경기가 한창이다. 축구 등 올림픽 예선 경기가 본격화하면서 TV 중계방송 볼 일이 많아졌다. 긴박하게 돌아가는 정치상황이나 국제 정세와 상관없이 스포츠는 정해진 일정에 따라 차곡차곡 진행되고 있다. 스포츠가 국민의 정신을 딴 곳으로 돌린다고 해 비난 받은 적도 있지만, 고단한 현실을 잊고 마음의 활력을 얻는 데는 스포츠만한 것도 없다. 

도쿄 올림픽을 앞두고 후쿠시마 방사능 유출 사고로 인한 안전 문제와 욱일기를 둘러싼 논쟁 등 이래저래 말도 많고 걱정도 많다. 그럼에도 도쿄 올림픽 열기가 슬슬 달아오르는 분위기다. 그간의 사정을 보자면 올림픽이고 뭐고 모른 척 해주고 싶지만, 그렇게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열심히 올림픽을 준비해 온 선수들도 그렇고 나라 체면이라는 것도 있으니 말이다. 일본은 올림픽과 인연이 깊은 나라다. 동양에서 가장 많이 올림픽을 치렀고, 올림픽과 관련된 일화도 많다.

서양의 열강들처럼 국제무대에서 대접을 받고 싶었던 일본은 올림픽에도 일찌감치 관심을 가졌다. 1940년 12회 올림픽이 원래는 도쿄에서 열리기로 돼 있었다. 우리가 일본의 식민 지배를 받을 때다. 그런데 중일전쟁이 일어나는 바람에 무산되고 말았다. 1940년 도쿄에서 열리기로 했던 올림픽이 헬싱키로 장소가 변경됐다. 하지만 바로 한 해 전인 1939년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하면서 2차 세계대전이 터졌고 이 때문에 올림픽이 또 열리지 못했다.

바로 4년 전 1936년 베를린 올림픽을 통해 게르만 민족의 우수성을 뽐냈던 히틀러의 독일이 전쟁을 일으키고 이로 인해 올림픽 개최가 날아가 버린 것이다. 역사의 아이러니다. 1944년에는 영국 런던에서 13회 올림픽이 예정돼 있었다. 그러나 이마저도 2차 세계대전으로 없던 일이 되고 말았다. 전쟁으로 두 번이나 무산된 뒤, 1948년에 다시 올림픽이 문을 열었다. 꺼졌던 성화의 불씨가 12년 만에 런던에서 되살아난 것이다.

1, 2차 세계대전의 후유증이 채 가시지 않아 전 지구촌이 얼얼하던 시기였다. 평화의 제전이라는 말이 실감나는 올림픽이었다. 59개국, 4천여명의 선수가 참여했다. 독일과 일본은 패전국이라 해서 아예 참가자격이 박탈됐다. 1948년 런던올림픽은 우리나라와도 인연이 깊다.

당시 우리는 해방되고 정부도 세워지지 않은 상태에서 미군정하에 있었다. 그럼에도 태극기를 앞세우고 올림픽에 참가했다. 이것이 대한민국의 첫 하계올림픽 참가다. 바로 그 전 해인 1947년 보스턴 마라톤에서 우승한 서윤복은 아쉽게도 메달 획득에 실패했다. 그러나 복싱 플라이급의 한수안과 역도 75kg의 김성집이 동메달을 따내 사상 처음으로 올림픽 시상대에 태극기가 게양되는 감격을 누렸다. 

나라를 빼앗겨 태극기 대신 일장기를 가슴에 달고 시상대에 오른 적도 있고, 전쟁의 참화 때문에 올림픽에 참가하지 못할 뻔한 적도 있다. 그럼에도 동, 하계올림픽과 축구 월드컵 등 주요 국제대회를 모두 치른 나라가 됐다. 올 여름 도쿄올림픽에서는 호텔을 통째로 빌려 우리 선수단을 위한 전용 식단을 제공키로 했다. 많이 성장하고 발전했다. 올림픽뿐 아니라 나라에도 좋은 일이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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