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우 작가 문화칼럼니스트 2015광주하계유니버시아드가 12일간의 열전을 마감하고 지난 14일 멋지게 마무리되었다. 대회에 참가했던 각국 선수단과 미디어, 관람객들 모두가 기쁜 마음으로 성화가 꺼지는 순간을 지켜보았다. 언론들은 대체로 이번 대회가 국제 스포츠 대회의 모범 사례로 꼽을만하다는 평가를 내놓았다. 대회 직전까지 마음을 놓을 수 없었던 메르스와 북한 팀의 느닷없는 불참 선언, 태풍의 북상 등 여러 악재가 있었음에도 저비용 고효율의 성공적인 대회로 마감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스포츠는 이기고 지는 것 외에도, 기쁨과 슬픔,
전경우 작가 문화칼럼니스트 일제 강점기이던 1927년 경성방송국이 설립되면서 우리나라도 방송의 시대가 열렸다. 초기 경성방송국은 일본어 7, 한국어 3의 비율로 방송했다. 그때에도 스포츠에 대한 인기가 매우 높아 스포츠 행사가 있을 때면 사람들이 구름처럼 모여 들기도 했다. 스포츠 중계가 있을 때면 라디오 앞으로 모여들었다고 한다. 경성방송국은 개국 첫해인 1927년 8월 28일 경일야구쟁패전을 중계방송 했는데, 이것이 우리나라 최초의 스포츠 중계방송이다. 초기 경성방송국의 스포츠 중계는 일본어로만 하다가 후에 한국어와 일본어로 이
전경우 작가 문화칼럼니스트 국제 스포츠 행사는 평화를 염원하는 마음으로 생겨났지만 전쟁 때문에 취소되거나 중단되는 일도 많았다. 1916년 독일 베를린에서 올림픽이 열리기로 돼 있었지만, 1차 세계대전으로 개막하지 못했다. 1940년 일본 도쿄에서 열려고 했다가 중일전쟁 발발로 헬싱키로 개최지가 바뀐 12회 올림픽과 1944년 영국 런던에서 개막하려 했던 13회 올림픽도 2차 세계대전 때문에 모두 무산됐다. 12년 동안 꺼져 있던 성화가 다시 타오른 것은 1948년 런던올림픽 때였다. 런던올림픽에는 59개국 4000여명의 선수가 참
전경우 작가 문화칼럼니스트 아득한 시절 그리스인들은 고대 올림픽을 여는 동안 신전에 불을 피웠다. 신의 세계에만 존재하던 불을 훔쳐 인간에게 가져다 준 프로메테우스를 기리기 위해서였다. 프로메테우스는 불을 훔친 죄로 독수리에게 간을 쪼여 먹히는 고통을 당했지만, 인류 문명을 태동시킨 고마운 존재로 여겨졌다. 그리스의 고대 올림픽은 신에게 경배를 올리는 제례의식으로 출발했고, 신전에 신성한 불(Sacred fire)이 타오르고 있는 동안에는 전쟁이 사라지고 평화와 화합의 노래가 울려 퍼졌다. 성화는 1928년 제19회 암스테르담올림픽
전경우 작가 문화칼럼니스트 2002년 FIFA 월드컵은 ‘4강 신화’와 함께 ‘붉은 악마’를 선두로 한 길거리 응원이라는 멋진 기억을 남겼다. 붉은 옷차림을 한 청춘들이 길거리에 모여 밤샘 응원을 하는 모습은 세계인들의 눈을 휘둥그레지게 할 정도로 신선한 충격이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같은 옷을 입고 목청껏 응원을 하는 모습은 대한민국의 역동성과 열정을 과시하기에 충분했다. 응원 열기 못지않게 스스로 질서를 지키고 거리의 휴지를 줍는 젊은이들의 선행도 보기 좋았다. 2007년 태안에서 사상 초유의 원유 유출 사고가 발생하자 국
전경우 작가 문화칼럼니스트 얼마 전 이집트 프로축구 경기장에서 난투극을 벌인 사람들이 무더기로 사형선고를 당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지난 2012년 이집트 지중해 연안도시 포트사이드에서 벌어진 프로축구 경기에서 홈팀 ‘알 마리스’가 수도 카이로를 연고지로 한 최강 ‘알 아흘리’에게 승리하자 홈팬과 원정팀 팬들이 경기장에 난입, 난투극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74명이나 숨지고 1000여명이 부상했다. 1996년 과테말라 시티에서 벌어진 경기장 난투극으로 78명이 숨진 이후 최악의 경기장 폭력 사태였다. 이집트 법원은 여기에 가담한 주
전경우 작가 문화칼럼니스트 동네에서 굿 하는 소리가 심심찮게 들리던 시절이 있었다. 동네가 떠나 갈 듯 징소리 북소리가 요란하게 울리면, 어느 집에서 굿을 하나 보다 했다. 집안에 아픈 사람이 있거나 불행한 일이 생겨도 굿을 하고, 별 탈 없이 살고 있으면서도 더 잘 살게 해 달라며 굿을 했다. 굿을 한 덕에 신통한 일이 벌어졌다는 소리는 거의 없었지만, 그럼에도 사람들은 굿판을 벌였다. 굿은 무당이 하는 것인데, 옛날에는 무당이 정치를 하고 나라의 제사를 이끄는 지도자 노릇을 했다. 정치와 제사가 분리되면서 무당은 정치에서 손을
전경우 작가 문화칼럼니스트 스타벅스는 커피를 갈아 금으로 만드는 기업, 천 년의 커피 역사를 뒤집은 성공신화의 기업으로 불린다. 우리가 ‘별 다방’이라 부르기도 하는 이곳의 CEO는 하워드 슐츠다. 그는 가난한 트럭 기사의 삼남매 중 맏이로 태어났다. 아버지가 일찍 세상을 떠나자 집안의 살림살이는 더욱 어려워졌다. 어머니의 헌신적인 노력과 격려 덕분에 용기를 잃지 않았고, 나중에 성공하면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사람이 돼야겠다고 마음먹었다고 한다.그는 미식축구 장학생으로 대학에 들어가면서 뉴욕 빈민가를 벗어날 수 있었다. 대학 졸업
전경우 작가 문화칼럼니스트 얼마 전 어느 대학 축제 현장에서 이 학교 총학생회 간부들이 무대 앞 가장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사진이 인터넷을 통해 퍼지면서 논란이 됐다. 양복 차림에 넥타이를 맨 젊은 학생들이 허리를 뒤로 젖힌 채 일렬로 앉아 있고, 연인으로 보이는 여성의 모습도 보였다. 그 뒤로 군복 차림의 학생들이 일반 학생들이 그 구역으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열심히 경호를 서고 있었다. 사람들은 혀를 찼지만, 사실은 우리들이 많이 봐 왔던 풍경이다. 사진 속 그들은 새파란 청춘들이었고, 그래서 화가 났던 것이다. 아이는 어른
전경우 작가 문화칼럼니스트 흑백 TV 시절 프로 레슬링은 최고의 인기 스포츠였다. 프로 레슬링 경기가 중계되는 날이면 동네 사람들이 TV가 있는 집에 모여들었다. 김일 선수가 덩치 큰 서양 선수의 머리에 박치기를 꽂아 쓰러뜨리면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여금부 선수가 일본 선수의 머리통을 허리춤에 꿰어 차고 알밤을 먹이면 조무래기들이 좋다며 소리를 질렀다. 태권도 고수인 천규덕 선수가 상대의 가슴팍에 당수를 때리거나 장영철 선수가 몸을 던져 두 다리로 상대의 목을 휘감아 쓰러트리는 장면도 볼만했다. 프로 레슬링 중계 다음날이면 아이들
전경우 작가 문화칼럼니스트 86아시안게임의 최고 스타는 육상 선수 임춘애였다. 그녀는 800미터와 1500미터, 3000미터에서 금메달을 따내 3관왕에 올랐다. 안방에서 열린 세계적인 대회에서 무려 3개의 금메달을 따내자 국민들은 열광했다. 그녀가 ‘라면만 먹고’ 달린 불우한 선수였다고 알려지면서 국민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녀는 ‘라면만 먹고’ 달리지 않았다. 코치가 “간식으로 라면을 먹는다”고 말한 것을, 기자가 ‘라면만 먹고’ 달렸다고 뻥튀기 한 것이다. 그녀는 후에 당시 도가니탕, 뱀탕도 먹었으며, 자신을 ‘
전경우 작가 문화칼럼니스트 중국 송(宋)나라 때 문필가였던 구양수(歐陽修)는 자신의 저서 ‘귀전록(歸田錄)’에서, 마상(馬上), 침상(枕上) 측상(廁上)을 글짓기 구상이 잘 되는 곳이라고 했다. 말 위와 이부자리, 화장실이 시문(詩文)을 생각하기에 가장 좋은 장소라는 것인데, 이 세 가지를 삼상(三上)이라 했다. 이제는 말 대신 흔들리는 지하철 안이라 해야 되겠지만, 침대 위나 화장실에서 번개처럼 멋진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일이 많은 걸 보면, 요즘 세상과 다르지 않다. 구양수가 삼상(三上)을 예로 든 것은, 그곳들이 생각하기 좋은
전경우 작가 문화칼럼니스트 ‘태풍이 지나간 이른 아침에/ 길을 걸었다/ 아름드리 플라타너스나 왕벚나무들이/ 곳곳에 쓰러져 처참했다/ 그대로 밑동이 부러지거나/ 뿌리를 하늘로 드러내고 몸부림치는/ 나무들의 몸에서/ 짐승 같은 울음소리가 계속 들려왔다/ 키 작은 나무들은 쓰러지지 않았다/ 쥐똥나무는 몇 알/ 쥐똥만 떨어뜨리고 고요했다/ 심지어 길가의 풀잎도/ 지붕 위의 호박넝쿨도 쓰러지지 않고/ 햇볕에 젖은 몸을 말리고 있었다/ 나는 그제서야 알 수 있었다/ 내가 굳이 풀잎같이/ 작은 인간으로 만들어진 까닭을/ 그제서야 알고/ 감사하며
전경우 작가 문화칼럼니스트 카메라가 귀한 시절이 있었다. 집집마다 사진기가 있던 때가 아니어서 학교에서 소풍을 가거나 하면 사진관에서 카메라를 빌리곤 했다. 필름을 사진관에 맡기면 며칠 후에 인화된 사진을 찾아 볼 수 있었다. 사진이 인화돼 나올 때까지는 잘 찍혔는지 어떤지 알 길이 없어 은근히 마음이 설레기도 했다. 사진이 잘 나오면 기분이 좋았지만 필름 한 통이 통째로 못 쓰게 돼 한 장도 못 건졌다는 슬픈 소식을 듣기도 했다. 때로는 여행지에서 낯선 청춘들이 사진을 찍어 주고 우편으로 사진을 보내면서 연애가 시작되기도 했다.
전경우 작가 문화칼럼니스트 식당에 혼자 들어가 밥을 먹는다는 것은 곤혹스러운 일이다. 점심시간이나 손님이 많이 몰릴 때는 말할 것도 없고 손님이 뜸한 시간조차 혼자 식당 들어가는 것이 쉽지 않다. 주인이 눈치를 주지 않더라도 먼저 주눅이 들고 미안해지기 때문에 웬만한 배짱 아니고서는 어렵다. 주인의 따가운 시선을 모른 척 하며 혼자 자리에 앉지만, 가시방석이 따로 없다.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주문을 하고 마침내 밥이 나와 먹지만, 먹는 내내 목구멍에 가시가 걸린 것처럼 불편하다. 그렇게 먹는 밥이 맛있을 리가 없다. 식당에서 혼자
전경우 작가 문화칼럼니스트 봄 햇살 좋은 요즘 여기저기서 축제다 뭐다 해서 행사가 많이 열린다. 꽃잎이 흩날리는 가운데 팡파르가 울려 퍼지고, 자리를 빛내 주신 분들 소개가 이어진다. 계급 순서에 따라 차례로 이름이 불리면 자리에 앉아 있던 사람들이 일어나 인사를 한다. 줄줄이 사탕처럼 이름들이 이어지고 사람들의 박수 소리도 점점 흥을 잃어간다. 박수칠 기분마저 싹 사라지고 하늘의 뭉게구름을 올려다보려는데, 이번에는 높은 분들 축사가 이어진다.높은 분들의 축사는 약속이나 한 듯 역시나 높은 분들의 이름을 차례로 부르며 자리를 빛내
전경우 작가 문화칼럼니스트 마지막 손님을 보내고 가게 문을 닫으려는데, 한 여자가 아이 둘을 데리고 들어왔다. 아이들은 금방 사 입힌 듯 편안한 옷차림이었으나 여자는 철지난 허름한 옷을 입고 있었다. 여자는 우동 일인분을 시켜도 되느냐고 묻는다. 주인은 “예, 우동 일인분” 하고 큰 소리로 대답하고 주방으로 들어왔다. 아내가 3인분을 주자고 했지만, 주인은 그러면 손님이 불편해 한다며 일인분인 한 덩어리에 반 덩어리를 보태 삶았다. 세 모자는 우동 한 그릇을 가운데 놓고 맛있게 먹은 뒤 일인분의 돈을 내고 돌아갔다. 섣달 그믐날이었
전경우 작가 문화칼럼니스트 프랑스 자락의 프로방스 지방에 엘지아 부피에라는 목동이 살고 있었다. 그는 평범한 농부였지만 하나뿐인 아들과 아내를 잃은 다음 산으로 올라가 양을 키우며 살았다. 그런데 산이 점점 황량해져가자 그는 도토리나무를 심기 시작했고 밤나무와 떡갈나무 같은 것들도 심었다. 1,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고 세상이 혼란스러웠지만 그는 나무 심기를 멈추지 않았다. 몇 십 년이 흐른 뒤 황량한 산은 숲으로 우거졌고, 새들과 짐승들이 깃들고, 냇물이 흐르고 물고기가 살게 됐다. 장 지오노는 이 이야기를 ‘나무를 심는 사람’이
전경우 작가 문화칼럼니스트 조선시대 벼슬길에 오르려면 과거를 보아야 했다. 과거에 합격하는 것을 급제라 했고, 그 중에서 1등을 장원이라 했다. 장원급제는 수석합격이라는 뜻이니 그야말로 가문의 영광이요 자랑이었다. 문과 무과 급제자들이 30여명 됐는데, 임금 앞에 죽 늘어서서 붉은 종이에 쓴 합격증서인 홍패(紅牌)를 받고 세 가지 색깔의 무궁화로 만든 어사화를 받았다. 임금은 잔치를 하라며 술도 내려주었다. 급제자들이 머리에 어사화를 꽂고 홍패를 들고 대궐을 나서면 한판 거리행진이 벌어진다. 악공들이 나발을 불면서 앞서고 예인들은
전경우 작가 문화칼럼니스트 광주와 대구를 잇는 88고속도로는 ‘죽음의 도로’로 악명이 높다. 최근 10년 새 교통사고 사망률 1위로 운전자들에게 공포심을 안겨 주는 도로다. 말이 고속도로지 왕복 2차선 구간이 많고 그나마 꼬불꼬불 곡선도로가 많아 속도를 내기도 쉽지 않다. 성질 급한 운전자들은 경적을 울리거나 헤드라이트를 깜빡이며 앞차 운전자를 자극한다. 속도가 느린 화물차 뒤를 따라 가다보면 속이 터지기 일쑤다. 앞차를 추월하기 위해 곡예 운전을 하기도 해 보는 이의 가슴을 졸이게도 한다. 대구 쪽에서 광주 방향으로 들어서는 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