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우 작가/문화칼럼니스트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섬인 보르네오 섬에는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브루나이 이렇게 세 나라가 있다. 그 중 제주도의 세 배 크기인 브루나이는 1인당 국민소득이 8만 불이 넘고 세금도 내지 않는 지상낙원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명성에 맞지 않게 최근 이 나라에서 살벌한 소식이 들려왔다. 간통을 하면 돌을 던져 죽이고, 도둑질하면 손과 발을 잘라버리는 등 엄격한 이슬람 율법을 적용하겠다는 것이다.이 나라가 이슬람 국가인 줄은 알지만, 그렇다고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지, 세상 사람들이 깜짝 놀라고 있다. 인권
전경우 작가/문화칼럼니스트벌써 오래전 이야기인데, 1997년 장정일이 자신의 소설 가 음란하다 하여 법정 구속되는 일이 있었다. 그보다 5년 앞서 1992년 마광수 교수도 소설 가 외설적이라는 이유로 옥살이를 했다. 마 교수는 이 일로 대학교에서 쫓겨났고 그 이후 줄곧 고달프고 힘든 삶을 살았다.음란죄를 뒤집어 쓴 두 작가의 작품들은 요즘 기준으로 보자면 그리 음란하다고 말할 만한 것도 못된다. 그럼에도 당시 공권력은 국민들의 건전한 성의식과 사회의 보편적 도덕규범에 어긋난다며 작가들을 잡아넣었
전경우 작가/문화칼럼니스트신라 선덕여왕은 당나라 태종이 보내 온 모란꽃 그림을 보고선, 꽃에 향기가 없을 것이라 했다. 함께 보내온 꽃씨를 심어 그 꽃이 피기를 기다려 살펴보니 과연 향기가 없었다. 꽃에 향기가 없다는 걸 어떻게 알았는지 신하들이 묻자, 그림에 나비가 없었기 때문이라 했다.선덕여왕은 당 황제가 과부인 자신의 처지를 조롱했다며 분개했다. 훗날 사람들은 이 이야기가 선덕여왕이 총명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이라 하였다. 하지만 선덕여왕이 그림 보는 법을 몰라 벌어진 우스꽝스러운 일화라는 말도 있다.중국 사람들은 발음이 같
전경우 작가/문화칼럼니스트범죄율이 낮고 자연환경이 뛰어나 지상낙원으로 불리는 뉴질랜드가 총기 난사 사건으로 깊은 슬픔에 빠졌다. 백인우월주의자 남성이 이슬람교도 주민들을 상대로 끔찍한 총기 테러 사건을 일으켜 50명의 생명을 앗아갔다. 한적하고 평화로운 마을이 순식간에 지옥으로 변했고 전 세계 언론들이 앞다퉈 사건을 보도하고 있다.예상하기 어려운 국가적 재난을 당했으나 그에 대응하는 뉴질랜드의 국가 시스템은 칭찬받을만하다. 경찰의 대응도 민첩했고 무엇보다 올해 38세의 젊은 여성 총리 저신다 아던의 언행이 크게 주목받고 있다. 사건
전경우 작가/문화칼럼니스트그리스 신화에는 미(美)의 여신 아프로디테와 그의 아들 에로스가 바늘과 실처럼 한 세트로 묶여 다닌다. 신과 인간을 가리지 않고 남자라면 누구나 아프로디테를 보는 순간 곧바로 사랑에 빠져들고 만 것은 에로스의 금촉 화살 때문이다. 에로스는 다른 사람을 사랑에 빠뜨리는 일을 했지만 자신 역시 사랑의 주인공이었다. 잘못해 사랑의 화살촉이 제 몸에 찔려버린 탓인데, 사랑의 상대는 프쉬케였다.아프로디테는 자신보다 더 아름답다는 칭송을 받는 프쉬케가 눈엣가시였다. 그런 마당에 아들 에로스가 그녀에게 홀라당 넘어가 버
전경우 작가/문화칼럼니스트봄이 되면 어린 아이들이 나들이에 나선다. ‘병아리 떼 쫑쫑쫑 놀고’ 가는 것처럼, 아이들이 봄날의 풍경을 아름답게 물들인다. 아이들을 이끌고 가는 선생님의 표정도 꽃처럼 밝다. 그 모습이 몹시 흐뭇하고 보기에 참 좋지만, 아이들이 무사히 소풍을 마치고 잘 돌아갈 수 있을까, 걱정이 되기도 한다. 자식 키워 본 부모들 마음이 그렇다.어린 아이들이 봄 소풍을 잘 마치고 다시 부모 품으로 돌아갈 수 있는 것은 선생님 덕분이다. 선생님을 믿기 때문에 아이들을 바깥으로 내 보내는 것이다. 아이를 돌본다는 것은 무척
전경우 작가/문화칼럼니스트대한민국 많은 남성들이 TV 속 ‘자연인’들을 부러워한다. 세상과 떨어져 깊은 산속에 홀로 살고 있는 사람을, 방송에서 자연인이라 부른다. 남자들은 TV 속 자연인을 보며, 상팔자가 따로 없구나 하며 부러워하거나, 나도 언젠가 자연으로 돌아갈 것이라며 다짐을 해 보기도 한다. 아내들에게 그런 소리를 하면, 십중팔구 혼자 들어가 살든지 죽든지 알아서 하시오, 란 소리를 듣는다.남성들이 자연인에 열광하는 것은 도망가고 싶은 마음 때문이다. 가장 노릇하랴 직장생활 하랴 고달프기만 한 세상살이에서 벗어나고 싶은 것
전경우 작가/문화칼럼니스트1894년 하나야마란 일본 사람이 10대를 들여 온 것이 우리나라 인력거의 시초다. 당시 우리는 가마를 타던 시절이다. 가마는 양반들이나 타는 것이고, 여염집에서는 시집가는 신부가 탈 수 있었다. 가마는 장정 넷이 들어야 하고, 안에 탄 사람은 멀미 때문에 고생을 했다. 생전 처음 가마를 타고 시집을 간 신부가 멀미 때문에 시댁에 가서 절도 제대로 못하는 일도 있었다.가마에 비하면 인력거는 참으로 신통한 물건이었다. 가마처럼 여러 사람 필요 없이 한 사람이면 되고, 멀미도 없는데다 빠르기까지 했다. 인력거꾼
전경우 작가, 문화칼럼니스트아득한 시절, 1970년대에 ‘잘했군 잘했어’라는 노래가 크게 유행했다. 1971년 하춘화가 고봉산과 함께 부른 노래로, 라디오를 틀기만 하면 빠짐없이 이 노래가 흘러나왔다. 당시에는 TV도 흑백이었고 그나마 동네에 한두 집 있던, 그런 시절이었다. 그러니 집집마다 라디오에 귀를 기울이며 노래를 듣고, 드라마와 뉴스를 들었다.하춘화는 이 노래로 최고 인기 가수로 올라섰다. 라디오 공개방송이나 ‘리사이틀’이라 부른 개인 공연에서 특히 인기를 모았다. 당시 인기 코미디언이었던 남보원 이기동 송해 등이 하춘화와
전경우 작가/문화칼럼니스트일본의 해상 초계기 도발로 나라가 시끄럽다. 일본, 참 가깝고도 먼 나라,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다. 잊을 만하면 불쑥 튀어나와 국민들 마음을 어지럽게 한다. 얼마 전에는 일본 국민들이 제일 싫어하는 나라가 북한, 중국, 한국 순이라는 뉴스가 나왔다. 오히려 세상에서 일본을 제일 싫어하는 나라가 바로 이 세 나라이지 싶다. 적반하장도 유분수다.일본인들은 대신 서양 국가들에 대한 호감은 엄청나다. 탈아입구(脫亞入歐), 즉 아시아를 벗어나 유럽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개회기 때의 열망이 아직도 가슴속 깊이
전경우 작가/문화칼럼니스트‘임진록’은 조선 중기 인조(仁祖, 1595~1649) 임금 즈음 나온 것으로 추정된다. 임진왜란 이후 전국 각지에서 전해 오던 이야기들을 모은 것으로, 전쟁이 일어난 배경과 전개 과정, 전쟁 이후의 수습 과정 등이 기록돼 있다. 이순신, 권율, 사명대사 등 전쟁에서 활약한 인물들의 이야기도 담겨 있다. 내용과 형식면에서 제대로 된 소설이라 보기는 어렵지만, 병자호란을 소재로 한 ‘박씨전’과 함께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전쟁 문학 작품으로 꼽힌다.‘개 같은 오랑캐 만고의 원수로다’라는 노래를 부른 다음 왜장을
전경우 작가/문화칼럼니스트태국이나 캄보디아 같은 곳에는 코끼리를 길들이는 독특한 방식이 있다. 어린 코끼리를 잡아다 몸을 움직일 수 없는 좁은 나무 우리에 가둬놓고 쇠꼬챙이로 마구 찔러대는 것이다. 이것을 파잔 의식이라고 하는데, 극심한 고통과 공포, 충격에 사로잡힌 어린 코끼리는 그 때부터 고분고분 인간의 말을 듣기 시작한다. 인간의 지시에 따라 춤도 추고 자전거도 타고 등에 사람을 태우고 다니기도 한다. 어린 시절 엄마 코끼리와 떨어져 그렇게 인간의 노예로 평생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이걸 알면, 코끼리 타고 밀림 구경하고 싶은
전경우 작가 / 문화칼럼니스트 올해는 돼지 중에서도 황금돼지해라 기대가 크다. 곧이곧대로 믿을 건 아니지만, 다들 사는 게 힘이 들어 그런지 부질없는 줄 알면서도 은근히 희망을 품어본다. 황금돼지 덕에 대박이 나지는 않더라도, 서민음식이라는 돼지고기라도 마음 편히 잘 먹고 살 수만 있어도 좋겠다 싶은, 그런 시절이다. 조선을 세운 이성계와 돼지에 얽힌 재미난 이야기가 있다. 고려 말, 명을 치기 위해 요동정벌에 나섰던 이성계가 위화도에서 지금의 개성인 개경으로 회군해 권력을 잡았다. 쿠데타를 일으킨 것이다. 이성계는 우왕을 강화도로
전경우 작가 / 문화칼럼니스트 조선시대에는 과거합격이 출세의 지름길이었다. 과거에 붙었다 하면 권세를 누리고 떵떵거리며 살았다. 초시니 진사니 하는 소리만 들어도 에헴 하며 뒷짐을 지고 다녔다. 그러니 선비라면 너나 할 것 없이 과거에 매달렸다. 젊은 나이에 합격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평생 공부만 하다가 늙어 죽는 이들도 수두룩했다. 이율곡은 20대 초반에 처음 치른 과거에 장원을 한 수재였지만, 환갑을 넘긴 나이에 겨우 합격한 이들도 있었다고 한다.당대는 물론 후대까지 금수저로 살 수 있었으니 과거에 합격하기 위해 별짓을 다했다.
전경우 작가/문화칼럼니스트이럴 줄 알았다. 그해 겨울, 사람들이 촛불을 들고 광장에 모여 들고, 광장은 밤마다 빛으로 가득 찼다. 사람들은 앞 다퉈 광장으로 나아갔고, 나가지 못한 사람들은 뒤에서 박수를 보냈다. 모두가 그런 건 아니었지만, 아주 많은 사람들이 응원을 했었고, 그것은 세상이 좀 달라졌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광장의 군중들 앞자리에 낯익은 얼굴들이 슬그머니 나타나기 시작했고, 그들은 하나같이 뭔가 기분 좋은 일이 생겼다는 표정이었다. 그럼 그렇지, 그렇게 정치하는 인간들이 광장으로 나서
전경우 작가/문화칼럼니스트동물들은 농장의 주인인 인간을 내쫓았다. 두 발로 걷는 것들은 모두 적이며, 동물들은 옷을 입어도 안 되고, 침대에서 자거나 술을 마셔도 안 되며, 무엇보다 모든 동물들은 평등하다는 규칙을 만들었다. 하지만 반란을 주도한 돼지들은 교활했으며, 마침내 인간의 흉내를 내며 동물들 위에 군림했다. 농장은 평등하지 않았고, 동물들의 삶도 고달팠다.‘그녀(짐수레를 끄는 암말 클로버)의 머릿속에 담긴 미래의 그림이 있었다면 그것은 굶주림과 회초리에서 벗어난 동물들의 사회, 모든 동물들이 평등하고 모두가 자기 능력에 따
전경우 작가/문화칼럼니스트얼마 전 씨름이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 목록에 등재됐다는 소식이 있었다. 남북한이 공동으로 등재신청 한 것으로, 복수의 나라가 개별적으로 신청한 문화유산에 대해 공동등재를 한 것은 전례가 없다고 한다. 두 나라가 별도 신청한 유산을 하나의 무형문화유산으로 올릴 수 있다는 사례가 처음 만들어진 것이다. 씨름에 대한 우리나라의 영어 표기인 Ssireum과 북한식 영어표기인 Ssirum을 함께 표기하기로 했다고 한다. 남북한의 여러 상황을 감안할 때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씨름이 세계가 알아주는 문화유산으로
전경우 작가/문화 칼럼니스트 1876년 강화도 조약 체결로 일본과 서구 문화가 들어오면서 일본과 서양식 집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서양식 집과 함께 서양식 난방도 선을 보였다. 당시 이화학원의 기숙사로 쓰였던 정동의 한 호텔에서는 스팀 난방을 했는데, 쇳김이 여학생들의 기운을 상하게 하여 임신을 못하게 할 수 있다며 반대했다는 기록도 있다. 1970년대 새마을운동이 전개되면서 초가도 많이 사라졌다. 새마을운동 노래에도 ‘초가집도 없애고, 마을길도 넓히고~’ 하는 가사가 나오는 걸 보면, 당시 초가가 얼마나 많았는지 짐작케 한다. 초
전경우 작가/문화 칼럼니스트 조선 말기 때 서구 문화가 들어오면서 우리 전통 생활양식에도 변화가 일어났다. 교회가 세워지고 기독교식 의례가 행해지면서 결혼이나 장례 문화에도 그 영향이 미쳤다. 1888년 정동교회에서 아펜젤러의 주례 아래 진행된 신자 한아무개씨와 과부 박씨의 결혼식이 우리나라 최초의 신식 결혼식으로 알려져 있다. 2년 후에는 박아무개씨와 강아무개씨가 신식으로 결혼했다. 하지만 사람들 눈이 무서워 의복은 전통방식을 따랐다. 다시 2년 후 배재학당 남학생 신랑은 프록코트를 입고 신부 황 씨는 면사포를 쓰고 예물까지 교환
전경우 작가/문화 칼럼니스트 1882년 임오군란 때 청나라 군인들과 함께 중국인 상인들이 많이 들어왔다. 일제 말기 우리나라에 거주한 화교가 6만명을 넘었고, 중국 음식점도 300개 정도 됐다. 당시 중국 음식점의 고객은 대개 중국인들이었다. 해방이 된 뒤 중국인들은 난감해졌다. 대륙이 공산화되어 돌아갈 수 없게 된데다 한국 정부가 화교들의 무역을 금지시키자 살길이 막막해진 것이다. 중국인들은 음식점을 열어 살길을 찾았고, 중국 음식을 우리 입맛에 맞게 개발하면서 활로를 찾았다. 이 때 나온 게 자장면이다. 자장면은 1950년대 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