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우 작가/문화칼럼니스트
강원도 대관령면 횡계리는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이 열렸던 곳이다. 이곳에는 개·폐막식장과 시상식장, 스키 경기장, 슬라이드 경기장 등이 있었다. 지금 이곳은 언제 올림픽이 열렸나 싶을 정도로 삭막하다. 개·폐막식장은 일부 건물만 남아 있고, 사람들로 북적였던 시상식장 광장엔 찬바람만 몰아치고 있다. 대한민국 최초의 봅슬레이 올림픽 금메달로 국민들을 환호케 했던 슬라이드 경기장은 인적이 끊긴 지 오래다. 강릉의 경기장들도 마찬가지다.
‘연극이 끝나고 난 뒤 혼자서 객석에 남아 조명이 꺼진 무대를 본 적이 있나요. 음악 소리도 분주히 돌아가던 세트도 모두가 멈춘 채 무대 위엔 정적만이 남아 있죠. 고독만이 흐르고 있죠~’ 노래 가사처럼, 대관령엔 정적만이 남아 있고, 고독만이 흐르고 있다.
올림픽이 열릴 때는 난리도 아니었다. 올림픽 시작 전부터 시찰단이다 공연단이다 해서 북한 사람들 방문이 줄을 이었고, 대접을 너무 잘해주네 어떠네 말도 많았다. 대회 기간 중에는 북한 응원단이 내려와 ‘우리는 하나다’라며 경기장을 뜨겁게 달궜다. 여자 아이스하키 팀은 논란 속에서도 단일팀을 만들어 분위기를 띄웠다.
당장이라도 무슨 대단한 일이라도 벌어질 것 같았던 올림픽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어느 누구도 평창올림픽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평창올림픽이 평화올림픽이 되었다고 말하지도 않는다. 올림픽이 끝나자 선수와 코치 간의 부적절한 관계 같은 좋지 못한 소식들이 터져 나왔고 그 바람에 즐겁고 신났던 올림픽 이야기는 사라지고 말았다.
동계 스포츠 시즌이 돌아왔음에도 조용하기만 하다.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TV에선 쇼트트랙 경기 중계로 시끌벅적하다. 우리 선수들이 물 찬 제비처럼 빙판을 지치며 결승선을 통과하는 모습이 국민들을 즐겁게 만든다. 다른 종목은 몰라도 쇼트트랙만큼은 대한민국이 최고라는 자부심이 있고 금메달을 못 따면 그게 이상하다 여길 정도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올 겨울은 별다른 소식이 없다.
원래 우리가 겨울 스포츠를 잘 하는 나라는 아니다. 쇼트트랙과 김연아 같은 세계적인 스타를 빼고 나면 이렇다할만한 게 없다. 그럼에도 동계올림픽을 통해 국가의 체면도 세우고 동계 스포츠 종목 경기력도 끌어올려보자 했던 것이다. 하지만 한철 장사처럼 잠시 시끌벅적했다가 세월 저편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불모지나 다름없던 봅슬레이도 평창올림픽 때는 야단법석이더니 이제는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다.
88서울올림픽은 여러 가지로 좋은 본보기가 된다. 경기장 등 올림픽 시설물들이 잘 보존 관리되고 있고 올림픽 공원도 훌륭하다. 무엇보다 88서울올림픽을 기점으로 많은 변화가 있었다. 안에만 갇혀 있다가 바깥세상으로 눈을 돌리면서 좀 더 큰 시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됐다. 평창올림픽은 그로부터 30년 만에 치른 올림픽이다. 그런데 뭔가 허전하고 아쉽다. 세상이 달라져서 그런 건지, 사람이 달라서 그런지, 아무튼 좀 그렇다. 이왕 짓고 만들어 놓은 것들이 잘 활용이 되고 오래도록 그 가치가 이어졌으면 좋겠다. 겨울이 되니, 평창올림픽 생각이 잠시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