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우 작가/문화칼럼니스트

 

군대에서 가장 힘든 과정 중 하나는 유격훈련을 받는 일이다. 한겨울 혹한기 훈련을 몇 번이나 받는지, 유격훈련에 몇 차례나 참여하는지가 군대 복을 좌우한다. 대한민국의 수많은 남자들이 제대를 하고 나서도 군대 꿈을 꾸고, 꿈속에서 유격훈련을 받으며 낑낑댄다. 분명히 제대를 했는데도 다시 군대에 가서 유격훈련을 받는, 참으로 얄궂은 꿈을 꾸기도 한다.

유격훈련을 받을 때는 이름과 계급 따위는 상관없다. 이등병과 병장이 똑같은 자세로 똑같이 취급받으며 함께 뒹군다. 조교의 기세도 등등하다. 창이 긴 빨간 모자를 눌러 쓰고 있으면 눈이 보이지 않는다. 눈이 보이지 않으니 무슨 표정을 짓고 있는지 가늠하기 어렵다. 자신의 눈을 가려 상대를 제압하는 것이다. 모자에 ‘조교’ 두 글자를 새겨 넣고 호루라기를 입에 문 조교가 하늘이고 법이다. 조교에게 밉보이거나 눈 밖에 나면 바로 군화발이 날아오거나 가혹한 기합을 받아야 했다.

맞지 않기 위해서는 조교의 눈치를 살펴야 했다. 눈치를 살피며 비굴해지는 것이다. 비굴해져야 살아남는다는 것을 온몸으로 깨닫는 것이다. 어린 코끼리의 등을 쇠꼬챙이로 마구 찔러 극한의 고통을 느끼게 하고 그렇게 인간에 순응하게 하는 것처럼, 훈련도 그런 것이다. 군말 없이 명령에 복종하고 시키는 대로 고분고분 말 잘 듣는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다. 강인한 체력과 불굴의 정신력은 덤일 뿐이다.

싸움에서는 기선 제압이 중요하다. 조교는 다수의 교육생을 상대로 먼저 기를 꺾어놓아야 한다. 먼저 앞줄과 옆줄을 칼로 잰 듯 정확하게 맞춰 도열하게 한 다음 곧바로 체조를 시킨다. 구령에 맞춰 체조를 시키면서 교육생은 모두 일심동체라고 일러준다. 체조가 끝나기가 무섭게 좌로 굴러, 우로 굴러, 앞으로 취침, 뒤로 취침을 반복한다. 땅에 눕고 엎어지는 것을 왜 취침이라고 하는지 알 수가 없지만 아무튼 무수히 취침을 반복한다.

그렇게 굼벵이나 구더기처럼 왼쪽 오른쪽 앞으로 뒤로 구르고 뒤집고 하다보면 땅에 끈적한 것들이 쏟아지기 시작한다. 구토를 하는 것이다. 끈적이는 것과 땀이 뒤섞인 연병장을 정신없이 구르다 보면 내가 인간인지 오물인지 알 수가 없다. 내가 인간이라고 느끼는 순간 쓸데없이 더 비참해지기 때문에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 게 좋다. 뒹구는 동안, 하얀 가방을 앞으로 맨 의무병들은 저 멀리서 남의 일처럼 구경을 하고 있다. 교육생들은, 의무병으로 군대에 오지 않은 자신을 책망한다.

끈적한 것과 땀이 뒤범벅 된 채 무아지경에 이를 즈음, 호루라기 소리와 함께 십분 간 휴식이라는 소리가 들려온다. 복음이 따로 없다. 누군가가 옆구리에 차고 있던 수통을 들어올린다. 모두 목이 타들어가는 참이다. 이때 최고 선임이 “막내부터 줘!”라고 외친다. 계급이 가장 낮은 병사부터 물을 마시라는 것이다. 그렇게 수통이 계급의 역순으로 전해지고 마침내 마지막 한 모금의 물이 최고참의 목으로 넘어간다.

하늘같은 ‘고참’이 ‘졸병’에게 물을 양보함으로써 고참은 존경을 받는다. 맨날 괴롭히기나 하는 고참이 아니라 배려할 줄도 아는 좋은 사람이구나, 싶은 생각이 들게 하는 것이다. 어려울 때일수록 사람의 됨됨이를 안다고 했다. 지도자도 그렇다. 나라의 지도자라면 더욱 그렇다. 나라가 위태롭다. 국민들 눈에 피눈물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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