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우의 문화 찔러보기] 백살 먹은 우리 영화 계속 발전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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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우 작가/문화칼럼니스트

 

지금으로부터 백 년 전인 1919년 10월 27일, 서울 종로에 있던 단성사에서 ‘의리적 구토(義理的仇討)’라는 연쇄극(連鎖劇)이 공연됐다. 연쇄극이란 연극 막간에 영화가 상영되는 것인데, 연극과 영화가 혼합된 새로운 작품 형식이었다. 연쇄극은 주로 일본인들에 의해 주도되었고, 이날 첫 선을 보인 ‘의리적 구토’는 김도산이 이끌던 신파 극단 신극좌가 만들어 무대에 올렸다.

‘의리적 구토’는 일반 연회장으로 인기가 높았던 단성사를 1918년에 인수해 전문 영화상영관으로 탈바꿈시킨 박승필(1875~1932)이 제작했다. 김도산이 감독과 각본, 주연을 맡고 신극좌의 단원들이 배우로 무대에 올랐다. 이때만 해도 우리나라에는 영화 촬영 기술자가 없었기 때문에 일본 사람 미야가와 소우노스케가 촬영을 했다.

‘의리적 구토’는 어릴 적 어머니를 여의고 모진 삶을 살았던 주인공 송산이 계모의 부당한 처사에 맞서 눈물을 머금고 복수에 나선다는 내용이다. 당시 여배우가 없어 남자 배우 김영덕이 계모 역할을 맡아 연기했다고 한다.

박승필은 개봉 당일인 1919년 10월 27일자 신문에 광고를 내고 대대적으로 선전을 했다. ‘신파극좌 김도산 일행의 경성에서 촬영된 대연쇄극… 경성의 제일 좋은 명승지에서 박혀 흥행할 작정으로 본인이 오천원의 거액을 내어… 오는 27일부터 단성사에서 봉절개연을 하고 대대적으로 상장하오니 우리 애활가 제씨들은 한번 보실 만한 것이다.’

이 연쇄극 제작에 투입된 돈이 5000원이었다고 하는데, 이 금액은 시골 부자 다섯명 전 재산을 합친 것과 맞먹는다. 박승필이 통 크게 투자를 한 것이다. 입장료는 특등석이 1원 50전, 1등석 1원, 2등석 60전이었다. 설렁탕 한 그릇에 10전 할 때였으니 요즘 시세와 비교를 해도 꽤나 비싼 편이었다. 그런데도 연쇄극을 보겠다며 전국 각지에서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1919년 10월 29일자 매일신보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쵸저녁부터 도쇼갓치 밀니는 관객남녀는 삽시간에 아래위층을 물론하고 빡빡히 차셔 만원의 패를 달고 표까지 팔지 못한 대셩황이 잇더라.’ 상영 첫날부터 극장은 문전성시를 이뤘고, 10만 명의 관객이 몰려들어 대성공을 거뒀다. 신문은 또 관객들 중에는 기생이 200명이나 됐다고 기록하고 있다.

‘의도적 구토’의 첫 상영일을 기념해 1963년 영화의 날(10월 27일)이 제정되면서 ‘의도적 구토’가 우리나라 최초의 영화로 공식 인정됐고, 이에 따라 올해가 우리나라 영화 100주년이 된다. 우리나라는 작년 매출 금액으로 보면 세계 5위 영화 시장으로 성장했다. 1인당 평균 연간 극장 관람 횟수는 4.5회로 미국(4.3회)보다도 많은 세계 1위, 영화관 스크린 수도 2017년 10월 기준 2804개, 스크린 1개당 인구가 1만명대 후반으로 세계 10대 영화 시장 중 가장 적은 편이다.

미디어 환경과 기술의 발달에 따라 영화를 비롯한 콘텐츠 산업이 격변의 소용돌이로 빠져들고 있다. 백 살 먹은 우리 영화가 생명력을 잃지 않고 계속 발전해 나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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