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우 작가 문화칼럼니스트

 
광주와 대구를 잇는 88고속도로는 ‘죽음의 도로’로 악명이 높다. 최근 10년 새 교통사고 사망률 1위로 운전자들에게 공포심을 안겨 주는 도로다. 말이 고속도로지 왕복 2차선 구간이 많고 그나마 꼬불꼬불 곡선도로가 많아 속도를 내기도 쉽지 않다. 성질 급한 운전자들은 경적을 울리거나 헤드라이트를 깜빡이며 앞차 운전자를 자극한다. 속도가 느린 화물차 뒤를 따라 가다보면 속이 터지기 일쑤다. 앞차를 추월하기 위해 곡예 운전을 하기도 해 보는 이의 가슴을 졸이게도 한다.

대구 쪽에서 광주 방향으로 들어서는 88고속도로에는 ‘졸면 죽음’이라는 경고문이 이어진다. 운전자들은 졸지 않아도 죽을 수 있는 위험천만한 도로라는 것을 알고 있다. 때문에 긴장을 놓을 수 없다. ‘졸면 죽음’이라는 경고 대신 졸아도 죽지 않을 안전한 도로로 왜 만들지 않았는지, 그게 의아할 뿐이다.

88고속도로는 88서울올림픽을 앞두고 급조됐다. 영호남을 연결하는 도로를 만들어 화합하게 만든다는 취지로 1984년에 만들어졌지만 영호남의 소통과 교류에 오히려 걸림돌이 돼 왔다. 대구에서 광주, 광주에서 대구로 가고 싶어도 이 88고속도로를 이용할 생각을 하면 머리가 먼저 아파오는 것이다. 산 넘고 물 건너 구불구불한 길을 가다 보면, 영호남 단절의 현실을 상징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88고속도로가 개통된 지 30년이 지나도록 죽음의 도로라는 오명을 안고 있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이다. 고속열차가 시속 300㎞로 쌩쌩 달리는 세상이다. 10년 전에 서울과 부산을 오가는 고속철도가 완공됐고, 4월이면 서울과 광주 사이에도 고속철도가 완전 개통된다. 전국이 반나절 생활권으로 엮이게 됐다. 하지만 88고속도로가 보여주는 것처럼, 영남과 호남은 여전히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들이다. 광주와 담양 함양 대구를 연결하는 내륙철도(191㎞) 건설과 김천~전주 복선전철화 사업도 아직 결정된 게 없다.

하지만 동서화합을 위한 활동이 전개되고 있어 영 희망이 없는 것도 아니다. 광주와 대구는 광주의 옛 이름인 ‘빛고을’과 대구의 옛 지명인 ‘달구벌’의 앞 글자를 딴 ‘달빛동맹’을 맺고 교류와 소통을 위한 발판을 마련했다. 광주 북구 대상공원에는 대구 팔공산 조형물과 대구 시목인 전나무를 심은 ‘대구 시민의 숲’이 있다. 대구 두류공원에는 광주 무등산의 상징인 주상절리 조형물 등으로 꾸며진 ‘광주 시민의 숲’도 만들어져 있다. 

얼마 전 대구에서 열린 2.28민주운동 기념식에는 광주와 전남, 대구와 경북 시장·도지사들이 한데 모여 손을 맞잡았다. 지난 1월 영호남 상생발전을 위한 공동선언을 한 지 한 달 만에 영호남의 리더들이 함께 잘 살아보자며 머리를 맞댄 것이다. 좋은 일이다. 정치인이든 일반 시민이든 자주 보고 만나야 서로를 이해하고 정도 쌓이는 법이다.

올해 말에는 88고속도로도 확장공사를 마치고 고속도로다운 면모를 갖춘다고 한다. 늦었지만 다행이다. 길이 제대로 뚫리고 나면 양쪽 지역 사람들이 더 많이 오가고 만날 기회도 많아질 것이다. 영남과 호남이 사이좋은 이웃으로 살아가는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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