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우 작가 문화칼럼니스트

 
카메라가 귀한 시절이 있었다. 집집마다 사진기가 있던 때가 아니어서 학교에서 소풍을 가거나 하면 사진관에서 카메라를 빌리곤 했다. 필름을 사진관에 맡기면 며칠 후에 인화된 사진을 찾아 볼 수 있었다. 사진이 인화돼 나올 때까지는 잘 찍혔는지 어떤지 알 길이 없어 은근히 마음이 설레기도 했다. 사진이 잘 나오면 기분이 좋았지만 필름 한 통이 통째로 못 쓰게 돼 한 장도 못 건졌다는 슬픈 소식을 듣기도 했다. 때로는 여행지에서 낯선 청춘들이 사진을 찍어 주고 우편으로 사진을 보내면서 연애가 시작되기도 했다. 그런 시절이었다.

이제는 세상이 달라져 현장에서 사진을 찍는 즉시 바로 들여다보고 확인할 수 있게 됐다. 필름을 들고 가 인화를 맡길 일도 없고 사진에 찍힌 사람 수대로 사진을 뽑아 나눠 줄 일도 없다. 손가락 몇 번 움직이면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사진을 공유할 수도 있다. 사진을 꽂는 앨범도 필요 없다. 컴퓨터에 담아 언제든지 열어 보면 된다. 앨범을 한 장씩 넘기며 사진을 들춰보는 느낌에 비하면 뭔가 빠진 듯도 하지만 아무튼 편한 세상이다.

지나가는 사람에게 사진 좀 찍어주실래요, 하고 부탁할 일도 줄어들었다. 긴 막대기에 카메라를 장착하고 제 모습을 스스로 찍는 셀카봉 덕분에 남의 손을 빌릴 일이 없어진 것이다. 요즘처럼 온 산과 들에 꽃이 마구 피어날 때는 사람들이 앞 다퉈 달려가 사진을 찍는다. 사진을 찍은 그들은 너나할 것 없이 셀카봉을 들고 다닌다. 다른 사람에게 부탁할 일도 없고 눈치 볼 필요도 없이 작대기만 들어 올리면 바로 제 모습을 찍을 수 있다. 연인이라면, 셀카봉으로 사진 찍는 재미가 더 쏠쏠할 것이다.

공중목욕탕에서도 낯선 사람의 등을 밀어주는 모습을 보기 힘들어졌다. 생전 처음 보는 사람들끼리지만 당연한 듯이 등 좀 밀어주시라, 하던 시절이 있었다. 싫지만 싫다 소리 하는 사람이 이상할 것 같아 할 수 없이 그러죠, 하고 남의 등을 밀기도 했을 것이다. 남의 등을 밀어 주고 나서는 역시 당연한 듯 내 등을 들이대면 내 등도 깨끗해졌다. 그렇게 벌거벗은 채 아름다운 상부상조의 정신을 발휘했던 것이다.

요즘은 아버지와 아들 사이 아니면 등을 밀어주는 아름다운 모습을 보기가 힘들다. 친구들 사이에도 서로 등을 밀어주지 않는다. 등을 밀고 싶으면 돈을 내고 시키면 된다. 돈이 아까우면 제 손으로 끙끙거리며 제 등을 밀어야 한다. 아름다운 상부상조보다 남에게 폐를 끼치지도, 눈치를 보며 부탁을 하지도 않겠다는 자급자족의 정신이 발휘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들과 아버지가 서로의 등을 밀어주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처럼 정겨운 것도 없다. 아들 낳아 함께 목욕탕 가고 싶다는 수많은 남자들의 소망이 그렇게 벌거벗은 채 실현되는 것이다. 별 것도 아닌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아버지와 아들은 서로의 등을 들여다보며 서로의 삶을 들여다보고 느끼는 것이다. 아버지는 날로 커져가는 아들의 등을 바라보며 가슴 뿌듯한 기운을 느낄 것이고, 아들은 어느 날 갑자기 쪼그라들고 작아진 아버지의 등을 들여다보며 슬픔이나 연민 같은 것을 느끼기도 할 것이다. 아무튼 벌거벗은 채 서로의 등을 밀어주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다.

사진을 찍든, 등을 밀어주든, 함께하는 것이 좋은 일이다. 함께할 사람이 있다는 것만큼 좋은 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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