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우 작가 문화칼럼니스트

 
봄 햇살 좋은 요즘 여기저기서 축제다 뭐다 해서 행사가 많이 열린다. 꽃잎이 흩날리는 가운데 팡파르가 울려 퍼지고, 자리를 빛내 주신 분들 소개가 이어진다. 계급 순서에 따라 차례로 이름이 불리면 자리에 앉아 있던 사람들이 일어나 인사를 한다. 줄줄이 사탕처럼 이름들이 이어지고 사람들의 박수 소리도 점점 흥을 잃어간다. 박수칠 기분마저 싹 사라지고 하늘의 뭉게구름을 올려다보려는데, 이번에는 높은 분들 축사가 이어진다.

높은 분들의 축사는 약속이나 한 듯 역시나 높은 분들의 이름을 차례로 부르며 자리를 빛내 주셔서 감사하다고 말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 다음 높은 분도 또 그렇게 높은 분들 이름을 차례로 부르며 존경의 뜻을 전한 다음 인사말을 이어간다. 높은 분들은 그렇게 돌아가며 서로의 이름을 불러주고, 주거니 받거니 사랑의 하트를 뿅뿅 날린다. 자리를 전혀 빛내지 못하고 있는 별 볼일 없는 관중들은 그러거나 말거나 먼 하늘의 뭉게구름을 올려다 볼 뿐이다.

트로트 가수가 노래를 하거나 예쁜 청춘들이 단체로 춤을 추는 모습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자리는 높은 분들이 다 차지하고 있다. 행사의 주인이라는 군민이나 시민들에게는 뒷자리가 제격이고, 등 굽은 할머니도 다리 불편한 아이들에게도 앞자리는 언감생심, 그림의 떡이다. 그렇게 축제가 끝나고 다음 날 신문에는 축제 소식이 대문짝하게 실리고 거기에는 가슴팍에 머리통만한 꽃을 꽂은 높은 분들이 도열한 채 활짝 웃고 있다. 축제의 주인이라는 군민이나 시민들은 아지랑이처럼 뿌옇게 흩어져 배경으로 존재할 뿐이다.

어느 꽃 축제에서는 높은 분들이 일렬로 줄을 맞춰 사진을 찍은 다음 함께 꽃길을 걷겠다며 우르르 길을 나섰다. 높은 분들이 행차하기 전부터, 계급이 높지는 않지만 꽃을 사랑하여 먼 길을 달려온 사람들이 꽃길을 걷고 있었다. 높은 분들이 길을 나서자 길잡이들이 앞장서 뛰고 걸으며 길을 틔우기 바빴다. 앞서 길을 가던 사람들은 옆으로 비켜서 길을 터 주어야 했고, 얼쩡거리다가는 길잡이로부터 핀잔을 듣거나 등을 떠밀려야 했다.

꽃길을 걷는 동안 높은 분들의 사진 찍기가 이어졌고 그럴 때마다 사람들은 방해가 되지 않도록 얼른 몸을 피해주어야 했다. 하나 둘 셋, 찰칵 소리가 끝나기 전까지 그 앞을 지나 갈 수도 없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본의 아니게 부동자세로 서 있어야만 했다. 높은 분들 중 몇몇은 좌판을 벌이고 있는 상인들에게 달려가 악수를 청하며 아는 체를 했다. 아무개 의원입니다, 하며 손을 내밀고 얼굴 도장 찍기에 열을 올렸다. 펭귄 떼처럼 일제히 검은 양복을 입고 등장한 높은 분들이 그렇게 봄날의 화사한 꽃 축제 현장을 누비고 있었다.

경북 영천시가 이달부터 기관장들이 앉던 맨 앞 줄 의자에 시민들이 앉도록 하겠다고 했다. 시민들에게 위화감, 불편함을 없애기 위해 내빈석을 따로 만들지 않기로 했다는 것이다. 아무나 먼저 도착하는 대로 앉으면 된다. 인사말 하는 인원도 딱 3명으로 제한하되, 3분을 넘지 않도록 한다. 높은 분들 가슴팍에 달던 꽃도 없앤다.

영천시의 실험이 성공하고 확산됐으면 좋겠다. 우리들 마음도 봄날처럼 화사해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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