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우 작가 문화칼럼니스트

 
2002년 FIFA 월드컵은 ‘4강 신화’와 함께 ‘붉은 악마’를 선두로 한 길거리 응원이라는 멋진 기억을 남겼다. 붉은 옷차림을 한 청춘들이 길거리에 모여 밤샘 응원을 하는 모습은 세계인들의 눈을 휘둥그레지게 할 정도로 신선한 충격이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같은 옷을 입고 목청껏 응원을 하는 모습은 대한민국의 역동성과 열정을 과시하기에 충분했다. 응원 열기 못지않게 스스로 질서를 지키고 거리의 휴지를 줍는 젊은이들의 선행도 보기 좋았다.

2007년 태안에서 사상 초유의 원유 유출 사고가 발생하자 국민들은 큰 충격에 빠졌다. 지역의 생태계가 파괴되고 주민들의 생업이 크게 위협받는 상황이 됐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전국 곳곳에서 자원봉사자들이 몰려와 바다 위의 기름을 걷어내고 돌과 바위를 닦기 시작한 것이다. 일손을 돕겠다는 사람들을 실은 버스들이 몰려들고 자원봉사자들을 지원하는 또 다른 자원봉사자들까지 생겨났다. 자원봉사자들의 헌신과 노력 덕분에 태안은 다시 살아났고, 그렇게 ‘태안의 기적’이 일어났다. 

우리에게 자원봉사라는 개념이 소개된 것은 86아시안게임과 88서울올림픽이었다. 88서울올림픽 때에는 정식 자원봉사자 2만 6000명, 비정규 자원봉사자 3만 8000명이 참가했다. 자원봉사자들은 경기장과 선수촌, 미디어 시설 등에서 안내를 하고 청소를 하며 구슬땀을 흘렸다. 86아시안게임과 88서울올림픽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될 수 있었던 것은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은 수많은 자원봉사자들 덕분이었다.

국가나 지역 공동체에 어려운 일이 생기면 힘을 합쳐 위기를 극복하고 단합을 과시한 것은 우리 민족의 오랜 전통이었다. 조선시대에는 두레가 체계화되고 조직화되면서 그 위력이 더욱 커졌다. 마을의 연장자를 수장으로 해서 각자의 역할을 정하고 함께 일을 하고 놀고 쉬면서 가족처럼 지냈다. 두레에 빠지거나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마을에서 쫓겨날 정도로 두레의 결속력은 대단했다. 잔치나 상가일을 함께 했던 품앗이도 주민 간의 유대감을 높이는 데 큰 힘이 됐다.

청년들이 돌을 던지며 싸우는 석전(石戰)이나 씨름 같은 민속놀이도 마을 주민들 간의 단합을 과시하는 수단으로, 두레의 정신을 놀이로 승화한 것이다. 지역 공동체 의식은 나라가 위기에 빠졌을 때 더욱 빛을 발했다. 임진왜란 때 왜놈들과 맞서 싸운 의병들도 두레의 조직력에서 그 힘이 나왔고, 동학혁명 때는 두레의 풍물패들이 마을을 돌며 사람들을 모으고 봉기의 횃불을 피워 올렸다.

두레에 뿌리를 둔 참여와 협동의 정신은 국제 스포츠대회에서 그 위력을 뽐낸다. 자원봉사자 없이는 국제 스포츠 행사를 치를 수 없을 정도로 그 중요성이 커졌다. 작년에 열린 인천아시안게임에서도 자원봉사자들의 활약이 컸고 덕분에 대회가 무사히 끝날 수 있었다.

다음 달 광주에서 세계 대학생들의 스포츠 문화 축제인 하계유니버시아드대회가 열린다. 여기에도 1만명 넘는 자원봉사자들이 참여한다고 한다. 자원봉사자들의 멋진 활약으로 메르스로 걱정하고 있는 국민들의 걱정이 시원하게 날아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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