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우 작가 문화칼럼니스트

 
얼마 전 어느 대학 축제 현장에서 이 학교 총학생회 간부들이 무대 앞 가장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사진이 인터넷을 통해 퍼지면서 논란이 됐다. 양복 차림에 넥타이를 맨 젊은 학생들이 허리를 뒤로 젖힌 채 일렬로 앉아 있고, 연인으로 보이는 여성의 모습도 보였다. 그 뒤로 군복 차림의 학생들이 일반 학생들이 그 구역으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열심히 경호를 서고 있었다.

사람들은 혀를 찼지만, 사실은 우리들이 많이 봐 왔던 풍경이다. 사진 속 그들은 새파란 청춘들이었고, 그래서 화가 났던 것이다. 아이는 어른의 거울이라고, 어른들이 하는 짓을 치기 어린 그들이 똑같이 따라한 것이다. 대학생들도 성인이지만, 아직 배울 것이 더 많고 더 다듬고 가꿔야 할 ‘어린’ 친구들인 것이다. ‘어린’ 그들을 탓하기 전에, 나쁜 본을 보인 ‘어른’들이 먼저 반성해야 하는 게 이치에는 맞다. 

상하 서열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윗분 모시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 무대가 가장 잘 보이는 앞자리는 당연히 높은 분들이 앉게 하고, 아무 짝에도 쓸데없는 하품 나는 소리일망정 윗분의 인사말이라면 반드시 챙겨 넣고, 바람을 가르며 달려가 엘리베이터를 잡아 놓고, 허리를 구십도로 꺾으며 자동차 문을 열어 주어야 한다. 밥을 퍼 먹다가도 윗분이 가자, 하면 숟가락을 던지고 용수철처럼 일어 설 줄 알아야 한다. 하나도 웃기지 않는 소리라도, 윗분의 말씀이라면 큰 소리로 웃어 주어야 하고, 황당하기 짝이 없는 소리를 해도 예 알겠습니다, 하고 큰 소리로 대답할 줄도 알아야 한다. 모욕을 주어도 감사합니다, 하고 인사를 하고, 칭찬을 해 주면 목숨을 바칠 것처럼 감동어린 표정을 지을 줄 알아야 한다.

그것만으로도 윗분 모시기가 성공하면 다행이지만, 대단히 미안하지만, 그 정도 가지고는 턱도 없다. 윗분을 제대로, 잘, 모시려면 그것 가지고는 어림도 없다. 윗분 모시기는 어렵고도 험하지만, 윗분을 잘 모시는 그들은 그것이 행복한지, 늘 웃고 다닌다. 웃어야 복이 오고 복이 와야 웃는다지만, 윗분을 잘 모시는 사람들은, 좋아도 웃고, 싫어도 웃는다.

최근 어느 유명 대학교 부설 초등학교에서 교사들을 대상으로 예절교육을 확실하게 시킨다는 기사가 떴다. 경력과 상관없이 전입 순서에 따라 기수를 매겨 순서를 정하는 것이 예절교육의 시작이라고 한다. 서열에 따라, 선배 교사가 후배 교사에게 ‘예절’을 가르치는데, 식당에 먼저 도착해 물과 수저를 놓고 기다리기, 교장 교감 선배 교사들이 도착하면 일어나 맞이한 다음 맨 나중에 착석하기, 밥을 다 먹었다고 먼저 말하지 않기, 식사 후 교장 교감 선배 교사들 뒤따라 나오기 등. 윗사람부터 앉기, 윗사람에게 술 권하기 없기, 윗사람에게 질문할 수 없기 등은 술자리 예절이다. 이 학교 교장은 “전통적인 기수 문화이며, 교육 차원”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세상이 달라졌고 달라져야 하는데도, 그렇지도 않고 그러려고 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 언제 우리는, 아래 위 줄 세우기, 서열 매기기, 이런 것 하지 않는 세상에 살아 보나. 통일보다, 그런 세상이나 빨리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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