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우 작가 문화칼럼니스트

 
프랑스 자락의 프로방스 지방에 엘지아 부피에라는 목동이 살고 있었다. 그는 평범한 농부였지만 하나뿐인 아들과 아내를 잃은 다음 산으로 올라가 양을 키우며 살았다. 그런데 산이 점점 황량해져가자 그는 도토리나무를 심기 시작했고 밤나무와 떡갈나무 같은 것들도 심었다. 1,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고 세상이 혼란스러웠지만 그는 나무 심기를 멈추지 않았다. 몇 십 년이 흐른 뒤 황량한 산은 숲으로 우거졌고, 새들과 짐승들이 깃들고, 냇물이 흐르고 물고기가 살게 됐다.

장 지오노는 이 이야기를 ‘나무를 심는 사람’이라는 소설로 썼고, 이것을 바탕으로 프랑스 출신 캐나다 작가 프레데릭 백이 동명의 애니메이션 영화로 만들었다. 1987년에 개봉된 이 30분짜리 영화는 광택을 없앤 아세테이트 위에 색연필로 작업했는데, 그해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했다. ‘나무를 심는 사람’은 남을 위해 헌신하는 한 인간의 숭고한 정신을 감성적 터치로 표현한 수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요즘 전남 광양에 가면 매화꽃 천지다. 광양시 다압면 도사리의 섬진마을에서는 매화축제가 한창이다. 이 마을은 해마다 이맘때면 매화꽃이 만발하고 축제를 열어 상춘객들을 불러 모은다. 볕이 잘 드는 백양산 자락에 매화꽃이 피어나고 멀리 꿈결처럼 흐르는 섬진강을 바라보고 있으면 세상살이 고단함을 잊게 된다.

매화축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열리는 꽃 축제 중 하나인데, 올해는 이 마을에 매화문화원을 열어 그 의미를 더했다. 도지자와 지역의 인사들이 참가한 가운데 문화원 개막식을 열고 이 마을의 상징인 홍쌍리 여사와 함께 마을길을 걸으며 축하인사를 나눴다. 길가에는 나물 파는 할머니들도 있고 이 마을 매실로 만든 음식과 매화 묘목도 살 수 있다. 축제 기간 내내 흥겨운 잔치마당이 펼쳐진다. 

섬진마을은 섬진강 555리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꼽힌다. 오늘날 이곳이 대한민국에서 가장 유명한 매화마을로 자리 잡게 된 것은 ‘청매실 농원’의 홍쌍리 대표의 힘이 컸다. 홍 여사는 경남 밀양의 만석지기 부잣집의 8남매 중 셋째로 태어났지만 학교 문턱조차 밟지 못했다. 짧은 스커트를 입고 부산 광복동을 누비던 젊은 시절도 있었지만,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이곳의 가난한 시골 집안으로 시집 온 뒤에는 삶이 달라졌다. 김치와 닭백숙을 팔며 생계를 꾸려야 했던 그가 위안을 삼은 것은 시아버지와 함께 밤나무와 매화나무를 심는 것이었다.

홍 여사가 지금의 작은 매화 왕국을 일구기까지는 숱한 눈물과 한숨이 있었다. 하지만 세상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사람을 따뜻하게 대하는 선한 심성 덕분에 모든 것을 이겨낼 수 있었다고 한다. 칠순이 넘은 지금도 밭일을 멈추지 않고, 방문객들을 살갑게 맞아주는 모습에서 그 힘을 느낄 수 있게 된다.  

꽃 피는 봄, 프로방스의 엘비아 부피에와 광양 섬진마을의 홍쌍리 여사를 생각하면서, 십년을 내다보고 나무를 심는다는 선현의 가르침을 다시 새겨본다. 좋은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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