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우 작가 문화칼럼니스트

 
마지막 손님을 보내고 가게 문을 닫으려는데, 한 여자가 아이 둘을 데리고 들어왔다. 아이들은 금방 사 입힌 듯 편안한 옷차림이었으나 여자는 철지난 허름한 옷을 입고 있었다. 여자는 우동 일인분을 시켜도 되느냐고 묻는다. 주인은 “예, 우동 일인분” 하고 큰 소리로 대답하고 주방으로 들어왔다. 아내가 3인분을 주자고 했지만, 주인은 그러면 손님이 불편해 한다며 일인분인 한 덩어리에 반 덩어리를 보태 삶았다. 세 모자는 우동 한 그릇을 가운데 놓고 맛있게 먹은 뒤 일인분의 돈을 내고 돌아갔다. 섣달 그믐날이었다. 

다음해 같은 날에도 세 모자가 찾아와 역시 일인분의 우동을 시켰다. 주인은 이번에도 넉넉하게 우동을 삶아냈고, 세 모자는 우동 한 그릇을 나눠먹고 돌아갔다. 다음해에는 우동 값이 200엔으로 올랐지만 주인은 오르기 전 가격인 150엔의 안내판을 붙여두고, 세 모자가 앉았던 자리는 예약석으로 비워둔다. 그 다음해에는 우동 2인분을 주문해 먹고 돌아갔지만 이후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주인은 섣달 그믐날이면 늘 세 모자의 자리를 비워두었다.

십년여의 세월이 흐른 섣달 그믐날, 두 청년과 여자가 들어선다. 바로 그 세 모자였다. 큰 아들은 의사로, 작은 아들은 은행원으로 성장하였고, 아버지 묘소 참배를 가던 중 들렀다고  말한다. 큰 아들은 “그때 한 그릇의 우동에 용기를 얻어 셋이 손을 맞잡고 열심히 살 수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인생 가운데 가장 사치스러운 일을 계획했습니다. 그것은, 섣달 그믐날 어머니와 함께 삿포로의 북해정을 찾아와 삼인분의 우동을 주문하는 것이었습니다”라고 말한다. 주인은 눈물을 흘리며 그들이 예전에 앉았던 자리로 안내한다.

1989년 일본에서 출간돼 600만권이나 팔린 구리 헤료이, 다케모노 고노스케의 ‘우동 한 그릇’이다. 일본 열도를 울린 이야기라며 당시 우리나라에도 소개되는 등 화제를 모았던 작품이다. 실화인지 지어낸 이야기인지 분명하지는 않지만, 우동 한 그릇의 힘이 얼마나 큰 것인지, 사람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진정한 사랑이란 무엇인지, 나눔과 베풂이라는 것이 또 어떤 의미인지 곰곰 생각하게 만든다.

광주광역시에는 이보다 더 가슴 따뜻한 이야기가 있다. 문화예술 야시장으로 최근 전국적으로 이름을 알리게 된 광주의 대인시장에는 ‘해뜨는 식당’이 있다. 이 식당은 형편이 어려운 사람을 위한 ‘천원짜리 백반’으로 유명하다. 주인 김선자 할머니는 IMF 때 사업에 실패한 뒤 한 끼 밥이 얼마나 절실한 것인지 깨닫고선 식당을 열고 천원짜리 밥을 팔기 시작했다. 일용직 근로자나 독거노인 등 넉넉지 않은 사람들이 주로 찾았다. 자식들이 주는 돈을 보탰지만, 늘 적자였다. 할머니는 2012년 대장암으로 쓰러지면서 식당 문을 닫기도 했지만 주위의 도움으로 작년에 문을 다시 열었다.

김선자 할머니가 얼마 전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해뜨는 식당’ 문은 닫히지 않았다. 앞으로도 계속 ‘천원짜리 백반’으로 손님을 맞는다고 한다. 시장의 상인들이 할머니의 뜻을 이어받아 식당을 운영해 나가기로 했다고 한다.

누구에게는 걸인의 밥처럼 보일지라도, 누구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배부른 밥일 수도 있다. 밥 이야기 함부로 해서는 안 된다. 학교에 밥 먹으러 가는 게 아니라고, 함부로 말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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