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우 작가 문화칼럼니스트

 
얼마 전 이집트 프로축구 경기장에서 난투극을 벌인 사람들이 무더기로 사형선고를 당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지난 2012년 이집트 지중해 연안도시 포트사이드에서 벌어진 프로축구 경기에서 홈팀 ‘알 마리스’가 수도 카이로를 연고지로 한 최강 ‘알 아흘리’에게 승리하자 홈팬과 원정팀 팬들이 경기장에 난입, 난투극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74명이나 숨지고 1000여명이 부상했다. 1996년 과테말라 시티에서 벌어진 경기장 난투극으로 78명이 숨진 이후 최악의 경기장 폭력 사태였다. 이집트 법원은 여기에 가담한 주동자 11명에게 사형선고를 내린 것이다.

스포츠 관중 폭력 사건은 축구 경기장이 악명 높다. 축구 발상지이자 종주국이랄 수 있는 영국에서 처음 생겨난 훌리건이 축구 경기장 폭력의 원조로 꼽힌다. 훌리건(Hooligan)은 ‘못된 짓을 골라 하는 아일랜드 출신 불량배’를 가리키는 말이었으나, 축구에 열광해 폭력을 마다하지 않는 관중이라는 의미로 불리게 됐다. 훌리거니즘(Hooliganism)은 경기와 상관없이 폭력을 일삼는 무질서한 상태를 일컫는다.

영국에서 훌리건들이 등장한 것은 1960년대다. 자신이 응원하는 팀이 패하거나 질 것 같으면 그라운드에 난입하는 관중들이 생겨났는데, 그런 사람들을 훌리건이라 하고 그런 행위를 ‘사커 훌리거니즘(Soccer Hooliganism)’이라 불렀다. 1964년 페루와 아르헨티나 대표팀 경기에선 300명 넘는 관중이 사망했고 부상자 수만 5000명을 넘었다. 같은 해 터키와 아르헨티나에서 각각 44명과 74명이 목숨을 잃는 등 세계 곳곳에서 축구 경기장 참사가 일어났다.

1970년대 들어 훌리건들의 폭력 행위는 더 과감해졌고 조직화됐다. 백인 우월주의를 표방하는 스킨헤드족들이 훌리건의 세력으로 합세하고 민족적 갈등으로 번지면서 정부 차원에서도 대책 마련에 들어갔다. 정부의 통제와 감시에도 불구하고 훌리건들의 ‘활약’은 멈추지 않았다. 1982년 구소련의 모스크바 파르타와 하를렘 팀 간의 경기 도중에는 69명이 숨졌고, 1985년 벨기에 헤이젤에서 벌어진 유벤투스 FC와 러버풀 FC 전에선 39명이 사망하고 454명이 다쳤다. 1989년 영국 힐스보로에선 96명의 관중이 압사하기도 했다.

훌리건들은 주로 노동자나 교육 수준이 낮은 계층에서 생겨났는데, 실업 등으로 인한 상대적 박탈감과 소외감이 주된 원인이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외국인에 대한 혐오감과 민족주의, 인종 차별주의, 종교 편향적 시각, 남성우월주의, 경쟁의식, 집단의식 등이 뒤섞이면서 훌리거니즘의 원인과 양상이 복잡해지고 있다. 언론의 관심과 보도도 훌리건들의 ‘의욕’을 불타오르게 한다는 주장도 있다.

우리나라는 훌리건 청정지역이다. 경기장에서 난동을 피우는 일이 가끔 있긴 하지만 사람이 수십명이나 죽고 다치는 일은 없었다. 프로야구장에서 자신이 지지하는 팀이 지고 있는데도 신나게 응원하는 것도 보기 좋은 모습이다. 메르스다 뭐다 해서 어수선하지만, 그럼에도, 그럴수록, 더 즐겁게 살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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