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우 작가 문화칼럼니스트

 
아득한 시절 그리스인들은 고대 올림픽을 여는 동안 신전에 불을 피웠다. 신의 세계에만 존재하던 불을 훔쳐 인간에게 가져다 준 프로메테우스를 기리기 위해서였다. 프로메테우스는 불을 훔친 죄로 독수리에게 간을 쪼여 먹히는 고통을 당했지만, 인류 문명을 태동시킨 고마운 존재로 여겨졌다. 그리스의 고대 올림픽은 신에게 경배를 올리는 제례의식으로 출발했고, 신전에 신성한 불(Sacred fire)이 타오르고 있는 동안에는 전쟁이 사라지고 평화와 화합의 노래가 울려 퍼졌다. 성화는 1928년 제19회 암스테르담올림픽 때 다시 타 올랐고,  1950년에 올림픽 헌장을 통해 ‘신성한 올림픽의 불(Sacred Olympic Fire)’, 즉 성화(聖火)란 이름이 붙여졌다. 

성화가 대중들의 관심을 받고 올림픽의 중요한 행사 중 하나로 자리 잡은 것은 1936년 베를린올림픽 때였다. 1936년 7월 20일 정오 그리스 올림피아 헤라 신전에서 여신의 복장을 한 15명의 성녀(聖女)들이 성화를 채화했다. 성녀에게서 소년의 손으로 넘어간 성화는 장장 3000㎞에 걸친 대장정에 올랐다. 불가리아, 유고슬라비아, 헝가리, 오스트리아를 거쳐 베를린에 도착하기까지 3000명의 주자가 동원됐다. 성화가 지나가는 베를린 시내에는 나치스를 상징하는 갈고리 십자 모양의 하켄크로이츠 깃발이 나부꼈고, 성화대가 설치된 메인 스타디움에도 대형 하켄크로이츠 깃발이 걸려 있었다. 나치 독일은 베를린올림픽을 통해 게르만 민족의 우수성을 과시하고 민족의 단합을 꾀하기 위한 선전의 장으로 이용하려 했던 것이다.

성화 점화행사에는 유명 배우 등 미인들이 성녀로 참여해 세계인들의 관심이 집중된다. 올림픽 성화 채화 장면은 올림픽의 서막을 알리는 가장 중요한 행사로 거의 예외 없이 세계 전역으로 방송된다. 최종 성화 주자도 마지막 순간까지 베일에 가려져 궁금증을 자아낸다. 최종 성화 주자는 개최국이 배출한 스포츠 영웅들이 맡는 게 관례로, 1996년 미국 애틀랜타올림픽 때는 복싱 전설 무하마드 알리가, 2008 베이징올림픽엔 중국의 체조 영웅  리닝이 성화대에 불을 붙였다. 2014 소치동계올림픽에선 러시아의 피겨 영웅 이리나 로드리나와 아이스하키 영웅인 블라디슬라프 트레티악이 함께 최종 주자로 나셨다.

1968년 멕시코올림픽에서 처음으로 여성이 최종 주자로 나서면서 화제가 됐고, 1976년 몬트리올올림픽에서는 사상 최초로 남녀가 함께 성화 점화자로 등장해 세상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2002 부산아시안게임에서는 대한민국의 유도 영웅 하형주 선수와 북한의 유도 스타 계순희 선수가 함께 성화를 점화해 스포츠를 통한 남북 화해와 평화의 의미를 되새기는 뜻 깊은 행사가 됐다.

다음 달 3일부터 12일간 광주에서 세계 대학생 올림픽인 하계유니버시아드대회가 열린다. 유니버시아드 성화도 지난 5월 대학 스포츠 발상지인 프랑스 파리 소르본대학에서 채화된 다음 광주로 건너와 무등산에서 채화된 불과 합화돼 전국을 순회하고 있다. 메르스 때문에 일부 구간은 트럭을 통해 봉송되기도 하는 등 우여곡절을 겪기도 했지만 예정된 여정을 무난히 소화하고 있다고 한다. 유니버시아드 성화를 계기로 메르스 걱정도 사라지고 평화롭고 즐거운 일상이 다시 시작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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