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우 작가, 문화칼럼니스트

아득한 시절, 1970년대에 ‘잘했군 잘했어’라는 노래가 크게 유행했다. 1971년 하춘화가 고봉산과 함께 부른 노래로, 라디오를 틀기만 하면 빠짐없이 이 노래가 흘러나왔다. 당시에는 TV도 흑백이었고 그나마 동네에 한두 집 있던, 그런 시절이었다. 그러니 집집마다 라디오에 귀를 기울이며 노래를 듣고, 드라마와 뉴스를 들었다.

하춘화는 이 노래로 최고 인기 가수로 올라섰다. 라디오 공개방송이나 ‘리사이틀’이라 부른 개인 공연에서 특히 인기를 모았다. 당시 인기 코미디언이었던 남보원 이기동 송해 등이 하춘화와 무대에 올라 “영감” “마누라” 하면서 이 노래를 불러 관객들을 즐겁게 했다. 노래 가사가 해학적이었기 때문에 코미디언들이 부르면 더 맛이 났다.

남자가 “마누라” 하면, 여자가 “왜 그래요?” 한다. 남자가 “외양간 매어놓은 얼룩이 황소를 보았나?” 하면, 여자가 “친정집 오라버니 장가들 밑천으로 주었지!” 한다. 그러면 남자가 “잘했군 잘했어 잘했군 잘했군 잘했어, 그러게 내 마누라지” 한다. 다음 절에서는 여자가 “영감”을 부르면서 시작하고, 이런 식으로 노래가 이어진다.

별로 잘 한 것 같지 않은데, “잘했군 잘했어” “내 마누라” “내 영감”, 하면서 서로 추켜세우는 모양이 우습고 재미난다. 그래서 노래가 나올 때마다 절로 미소가 나온다. 이 노래도 원래는 신민요라 해서 예전부터 내려오던 노래를 현대적으로 만들어 인기를 모았던 곡 중 하나다. 2009년에는 같은 제목의 TV 드라마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잘했군 잘했어’에 나오는 ‘마누라’ ‘영감’이란 호칭은, 부부가 격식 차리지 않고 허물없이 지낼 때 하는 것이다. ‘여보’ ‘당신’보다 더 격이 없고, 심지어 ‘영감탱이’ ‘마누라쟁이’라며 더 노골적으로 낮춰 부르기도 한다. ‘마눌님’이라고 하는 남자들도 있지만, 진짜 존경심이 있어서 그런지, 마지못해 그런지, 진심은 본인만 안다. 남편을 ‘영감님’이라 부르는 여성은 보기 힘들다.

‘마누라’는 고려 말 때 몽골에서 들어온 것으로, 조선 시대에는 궁중의 극존칭으로 쓰였다. 원래는 ‘마노라’였으나 왕이나 왕비 등 왕족들을 부를 때 ‘마누라’라는 말로 쓰였다. 조선말기 대원군도 며느리인 명성황후를 깍듯하게 ‘마누라’라 불렀다고 한다. 지금의 기준으로 보자면 도무지 맞지 않는 호칭이다.

‘영감’은 원래 조선시대 당상관 이상 벼슬한 자들에게 주는 호칭이다. 지금도 고시에 패스하거나 높은 자리에 오른 사람을 보면 “영감님”이라며 머리를 조아리는 사람이 있다. 새파란 청춘일지언정, 출세를 하면 “영감님” 소리 들으며 세상을 만만하게 내려 보는 것이다.

조선시대에는 오래 산 사람들을 존경하고 우대했다. 해서 여든 살이 넘으면 ‘영감’이라 불러도 좋다는 벼슬 아닌 벼슬을 내렸다. 그야말로 ‘오래 살고 볼 일’이었다. 그래서인지 이 ‘영감’이란 말이 언젠가부터 나이든 남자들을 함부로 대하는 의미로 바뀌고 말았다.

시대에 따라 달라져야 한다. 아, 다르고 어, 다르다 했다. 가족 간에도 시대에 맞는 말을 써야 한다. ‘영감’ ‘마누라’의 원래 뜻이 아무리 좋기로, “영감” “마누라”라 부르며 살자고 할 수는 없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으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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