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우의 문화 찔러보기] 신데렐라는 없다
[전경우의 문화 찔러보기] 신데렐라는 없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전경우 작가/문화칼럼니스트

그리스 신화에는 미(美)의 여신 아프로디테와 그의 아들 에로스가 바늘과 실처럼 한 세트로 묶여 다닌다. 신과 인간을 가리지 않고 남자라면 누구나 아프로디테를 보는 순간 곧바로 사랑에 빠져들고 만 것은 에로스의 금촉 화살 때문이다. 에로스는 다른 사람을 사랑에 빠뜨리는 일을 했지만 자신 역시 사랑의 주인공이었다. 잘못해 사랑의 화살촉이 제 몸에 찔려버린 탓인데, 사랑의 상대는 프쉬케였다.

아프로디테는 자신보다 더 아름답다는 칭송을 받는 프쉬케가 눈엣가시였다. 그런 마당에 아들 에로스가 그녀에게 홀라당 넘어가 버렸으니 기분이 좋을 리 없었다. 아프로디테는 프쉬케에게 저주를 퍼붓고 시험에 들게 한다. 밀과 보리 기장 콩 등이 마구 섞인 곡식 더미를 종류별로 고르라 하고, 황금 양털을 가져오라고도 한다. 그 때마다 그를 도와줄 구원자가 등장한다. 곡식은 개미들이 골라주고, 황금양털은 강의 신이 해결해 준다. 프쉬케는 결국 에로스와 결혼해 살고, 둘 사이에 딸이 태어나니 그가 바로 ‘기쁨’이다.

프쉬케는 훗날 신데렐라 이야기로 거듭났고, 우리나라에 와서는 콩쥐와 팥쥐로 재탄생했다. 영화 ‘프리티 우먼’을 비롯해 수많은 예술 작품에서 프쉬케와 신데렐라 이야기가 다뤄져 왔다. 주인공들은 한결같이 ‘아름다운 죄’ 때문에 고통을 겪었으며, 구원자는 백마 탄 왕자들이었다.

뽀빠이는 시금치를 입에 털어 넣고는 올리브를 향해 달려갔고, 팬티 차림으로 나무사이를 누비는 타잔도 위급한 제인을 위해 동물들을 불러 모았다. 백설 공주도 비록 난장이일망정 일곱명의 남자들로부터 보호를 받았고 결국 백마 탄 왕자로부터 구원 받았다.

요즘 크게 인기를 끌고 있는 드라마 ‘하나 뿐인 내편’도 이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아프로디테의 미움으로 힘들어하는 프쉬케와 그녀를 구원하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는 에로스, 그리고 얄미운 팥쥐와 그 엄마도 있다.

신파네 막장이네 하면서도 엄청난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는 것은, 그러한 이야기가 몹시 익숙하기 때문이다. 우연과 억지가 난무하고 그래서 “말도 안 돼!”라며 비난을 하면서도 “그래서 어떻게 되는 거지?” 라며 궁금해 못 견디게 되는, 안 먹어야지 하면서도 자꾸 입맛이 당기는, 중독성 강한 불량식품 같은, 욕하면서 본다는, 그런 드라마다.

그리스 신화를 모티브로 한 캐릭터로 원더우먼을 빼놓을 수 없다. 미국의 윌리엄 몰튼 마스턴은 아프로디테와, 전쟁과 지혜의 신(神)인 아테나, 그리고 헤라클레스의 캐릭터를 버무려 원더우먼을 만들어냈다. 1941년에 만화로 첫 선을 보인 이후 TV 드라마와 영화로도 제작돼 인기를 모았던 원더우먼은 그러나 비키니 차림 때문에 비난을 받기도 했다.

최근 개봉한 영화 ‘캡틴 마블’이 대박을 터트리고 있다. 공군 조종사를 꿈꾸었던 평범한 여성이 슈퍼 히어로가 된다는 내용인데, 화장기 없는 주인공 모습이 원더우먼과 확연히 다르다. 구원을 기다리는 예쁜 신데렐라가 아닌, 세상을 구원하는 여전사의 모습에 사람들이 열광하고 있다.

원더우먼을 만든 마스턴은, 여성 중심의 세상이 올 것으로 확신했다고 한다. 신데렐라 대신 여성 캡틴의 시대가 오고 있는 것일까. 세상이 달라지고 있다는 건 확실하다.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