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우 작가/문화칼럼니스트

벌써 오래전 이야기인데, 1997년 장정일이 자신의 소설 <내게 거짓말을 해 봐>가 음란하다 하여 법정 구속되는 일이 있었다. 그보다 5년 앞서 1992년 마광수 교수도 소설 <즐거운 사라>가 외설적이라는 이유로 옥살이를 했다. 마 교수는 이 일로 대학교에서 쫓겨났고 그 이후 줄곧 고달프고 힘든 삶을 살았다.

음란죄를 뒤집어 쓴 두 작가의 작품들은 요즘 기준으로 보자면 그리 음란하다고 말할 만한 것도 못된다. 그럼에도 당시 공권력은 국민들의 건전한 성의식과 사회의 보편적 도덕규범에 어긋난다며 작가들을 잡아넣었다.

88올림픽을 계기로 국민들 눈높이가 높아지고 세상이 밝아지면서 우리 사회 곳곳에서 개방의 물결이 넘쳐났다. 문화계에선 소재와 주제가 다양해지고 실험적인 시도가 이뤄지면서 전에 없이 풍요로운 시대를 맞았다. 서태지와 아이들을 필두로 가요계가 절정기를 구가했고, 장르의 영역을 확장한 영화도 큰 인기를 누렸다.

1990년대 들어 우리 사회가 많이 유연해졌다고는 하지만 보수적인 가치관은 여전히 공고했다. 특히 성(性)에 관해서 더욱 그랬다. 기존의 가치와 질서를 거부하는 신세대 작가들이 그려내는 성은 기성세대들이 보기에는 몹시 못마땅하고 위험했다.

보수주의자들은 성이란 모름지기 쥐도 새도 모르게 은밀하게 이뤄져야 하는 것으로 이불 밖으로 나오면 큰일 난다고 주장하였다. 이 사람들은 성이 음지에서 양지로 나오고 누구나 성을 함부로 이야기하게 되면 이 세상이 끝장나는 것처럼 호들갑을 떨었다. 무엇보다 어린 아이들이 성을 아는 것은 더더욱 있을 수 없는 일이라 주장하였고, 성을 소재로 한 만화를 그린 작가들을 법정에 세우기도 하였다. 청소년보호법이 이때 나왔다.

<내게 거짓말을 해 봐>는 남자가 아버지로서 자손 번식을 위해 당연하게 해야 하는 것으로 알았던 생식과 그에 따른 책임을 위해 감내하지 않으면 안 될 노동의 의무를 거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사디즘과 마조히즘 등 도발적인 성적 묘사가 잔뜩 담겼지만 궁극적으로는 기존의 질서와 가치에 대한 파괴 욕구가 가득하다.

<내게 거짓말을 해 봐>는 기득권 보수주의자들로선 괘씸하기 짝이 없는 불온한 책이었던 것이다. 공권력은 이러한 보수주의자들의 편을 들어 작가 손목에 쇠고랑을 채웠다. 요즘 세상이라면 생각하기 힘든 일이지만, 그때는 그랬다. 기존의 것을 깨고 헐어 새 것을 심고 건설하는 것이 그만큼 쉽지 않은 것이다.

원래 것이 틀렸다며, 사람들이 들고 일어나 세상을 바꿨다. 그래서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는’ 세상이 오기를 기대했다. 새로운 세상, 나라다운 나라를 만드는 데 앞장서 주기를 바라며 박수를 쳐 주었고 잘 될 것이라 믿고 싶었다.

그런데 앞으로는 평화, 평등, 정의, 공정 같은, 꿀 떨어지는 소리를 하면서도 뒤로는 제 잇속 채우기 바쁘고, 그러다 탄로가 나면 말 같지도 않은 변명을 남긴 채 슬그머니 사라지는, 그런 염치없는 짓은 이제 그만 좀 했으면 좋겠다.

그래놓고,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 내게 거짓말을 해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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