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우 작가/문화칼럼니스트

 

얼마 전 씨름이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 목록에 등재됐다는 소식이 있었다. 남북한이 공동으로 등재신청 한 것으로, 복수의 나라가 개별적으로 신청한 문화유산에 대해 공동등재를 한 것은 전례가 없다고 한다. 두 나라가 별도 신청한 유산을 하나의 무형문화유산으로 올릴 수 있다는 사례가 처음 만들어진 것이다. 씨름에 대한 우리나라의 영어 표기인 Ssireum과 북한식 영어표기인 Ssirum을 함께 표기하기로 했다고 한다. 남북한의 여러 상황을 감안할 때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씨름이 세계가 알아주는 문화유산으로 등록됐지만 정작 우리나라 씨름 열기는 시들하기만 하다. 천하장사 씨름대회가 생중계되면 사람들이 TV 앞에 모여들어 손에 땀을 쥐며 환호성을 지르곤 했지만 이제는 TV 중계도 거의 없고 씨름에 대한 소식이 별로 나오지도 않는다. 축구나 야구 등 볼거리가 많아져서 그렇기도 하지만 씨름이 재미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씨름은 원래 힘과 기술을 겨루는 놀이로 상대에게 해를 입히거나 목숨을 빼앗는 격투기와는 다르다. 한때 잘 나가던 씨름의 인기가 식으면서 천하장사 출신이 일본으로 건너가 격투기에 입문했지만 제대로 힘을 써보지 못하고 두들겨 맞는 모습을 보인 적이 있다. 샅바를 잡고 모래판을 호령하던 천하장사가 낯선 링 위에서 고전하는 걸 보면서 우리들도 마음이 아프고 자존심이 상했던 기억이 있다. 씨름은 애초 상대를 해치는 격투기와는 거리가 먼 것이어서 제 아무리 천하장사여도 격투기 경기에서는 어려움을 겪게 마련이다. 

씨름이 서양의 권투나 레슬링 같은 격투기와 달리 방어적인 성격을 갖는 것은 우리 민족이 원래 남을 해치는 성정이 아니어서 그렇다. 땅을 지키며 온순하게 농사를 지으며 살았기 때문에 남의 나라에 쳐들어가 괴롭힐 일도 없었고 누구를 공격하고 해칠 마음도 없었다. 다른 민족의 침입에 대비한 방어기술이 필요했고 씨름도 그런 배경에서 나온 것이다. 어느 한쪽의 몸이 땅에 닿으면 더 이상 공격하지 않고 경기를 끝내는 것이 씨름의 그러한 성질을 가장 잘 나타내는 것이다. 

씨름이 일본으로 건너가 스모나 유도로 발전했고 그것들이 지금도 전성기를 누리고 있지만 우리 씨름은 그렇지 못해 안타깝기만 하다. 일제강점기에는 씨름뿐 아니라 석전, 동채싸움, 횃불놀이, 장치기 등이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특별법으로 금지됐고, 줄다리기, 지신밟기, 답교놀이뿐 아니라 여성들의 놀이인 놋다리밟기, 기와 밟기, 강강술래 등도 치안과 풍기를 문란하게 한다며 못하게 했다. 택견을 하면 모조리 잡아갔고, 가라데를 하도록 했다. 

일제 때에는 대신 축구 농구 권투 야구 따위가 큰 인기였고, 우리 선수들이 일본 선수를 제압하면서 망국의 한을 달랬다. 특히 권투는 일본선수를 공식적으로 대놓고 두들겨 팰 수 있는 아주 좋은 기회였다. 일본의 스포츠 논설위원 가마다는 ‘조선 선수들이 주먹 힘을 키운 것은 불리한 판정을 피하고 KO로 이기기 위한 뜻도 있었지만, 관중들이 보는 앞에서 공공연히 일본인을 두들겨 패서 코피를 흘리도록 만들고 쓰러질 때까지 때려 주는 데 목적이 있었다’라고 쓰기도 했다. 

우리 천하장사가 일본 격투기 링에서 수모를 겪는 일이 없도록 씨름이 다시 전성기를 누렸으면 좋겠지만, 무엇보다 씨름의 정신을 잊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힘과 기술을 겨루되, 결코 상대를 해치는 일 없이, 승자나 패자 모두 아무 탈 없이 툴툴 털고 일어나 서로의 등을 두들겨 주는, 상생의 정신. 독한 입씨름으로 사람들이 무수히 상처를 입고 심지어 목숨까지 위협당하는 험한 세상이기에 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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