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우 작가/문화칼럼니스트

일본의 해상 초계기 도발로 나라가 시끄럽다. 일본, 참 가깝고도 먼 나라,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다. 잊을 만하면 불쑥 튀어나와 국민들 마음을 어지럽게 한다. 얼마 전에는 일본 국민들이 제일 싫어하는 나라가 북한, 중국, 한국 순이라는 뉴스가 나왔다. 오히려 세상에서 일본을 제일 싫어하는 나라가 바로 이 세 나라이지 싶다. 적반하장도 유분수다.

일본인들은 대신 서양 국가들에 대한 호감은 엄청나다. 탈아입구(脫亞入歐), 즉 아시아를 벗어나 유럽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개회기 때의 열망이 아직도 가슴속 깊이 새겨져 있다. 이웃 나라들은 상종하기조차 싫지만, 유럽이나 미국은 더불어 살아야 할 고귀한 존재로 여긴다. 고향 땅에서는 출세를 못한다 했다. 동네 사람들이 미주알고주알 다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도 아득한 시절 미개하게 살았고, 그것을 잘 알고 있는 이웃 국가가 싫은 것이다.

일본 사람들은 체면을 무척 중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상대가 불편해하지 않도록 직설적인 말을 삼가고 무슨 말이든 에둘러 표현한다. 폐를 끼치지 않는 것이야말로 최고의 미덕이라 여기고, 체면이 상했다고 여겨지면 주저 없이 머리를 조아리고 용서를 빈다고 했다. 사무라이들이 주름잡던 시절에는 스스로 배를 가르고 남의 목을 칼로 내려쳐 죽는 것을 도와주기도 했다. 요즘도 회사에서 잘못한 일이 있으면 최고 경영자가 나와 눈물을 흘리며 사과를 하곤 한다.

그런 일본인들이지만, 이웃 나라에 대해서는 전혀 그렇지 않다. 대놓고 폐를 끼치고 노략질을 하고 사람을 죽여도 잘못했습니다, 하고 진심으로 사과하지 않는다. 미안한 마음보다는, 잃어버린 과거의 영광이 억울하고 분할 뿐이다. 그들 속마음은 하루 빨리 군사력을 키우고 헌법을 바꿔서라도 잃어버린 제국의 영화를 되찾는 것이다.

그들은 자신보다 강한 자 앞에서는 머리를 숙이지만, 약한 자 앞에서는 한없이 교만하다. 봉건시절 상공인들은 사무라이들을 상대로 거래를 했고, 속이거나 건방지게 굴면 당장 목이 날아갈 수도 있었다. 때문에 제 분수를 지키고, 거짓말 하지 않고 친절하게 사람을 대하는 것이 몸에 뱄다. 칼이 그들을 그렇게 만든 것이다.

다른 나라를 상대할 때도 그렇다. 자신들보다 약하다 싶으면 주저 없이 달려들고, 강한 상대에게는 넙죽 엎드려 숨을 죽인다. 미국이 죽으라 하면 죽는 시늉을 하는 것도, 미국이 강하기 때문이다. 일본이 도발을 하며 지역 정세를 불안하게 하는 것도 미국의 영향력 감소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일본에게 당하지 않으려면 힘을 기르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

한 마음으로 나라 형편을 살펴야 할 때이지만, 좋은 자리 앉은 사람들 하는 짓을 보면 국민들 가슴이 더 답답해진다. 욕심을 채우려다 들키자 사나운 표정으로 싸움닭처럼 사방팔방 분란을 일으키지를 않나, 해외 연수랍시고 국민 세금으로 놀러 나가서는 사람을 두들겨 패지를 않나,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친박이니 비박이니 동네 해장국집처럼 원조 경쟁을 하지를 않나.

신동엽 시인께서 ‘껍데기는 가라’, 하셨다. 그렇다. 껍데기들은, 제발 좀 가 주었으면 좋겠다. 돼지 껍데기만도 못한, 정치 껍데기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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