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우 작가/문화칼럼니스트

태국이나 캄보디아 같은 곳에는 코끼리를 길들이는 독특한 방식이 있다. 어린 코끼리를 잡아다 몸을 움직일 수 없는 좁은 나무 우리에 가둬놓고 쇠꼬챙이로 마구 찔러대는 것이다. 이것을 파잔 의식이라고 하는데, 극심한 고통과 공포, 충격에 사로잡힌 어린 코끼리는 그 때부터 고분고분 인간의 말을 듣기 시작한다. 인간의 지시에 따라 춤도 추고 자전거도 타고 등에 사람을 태우고 다니기도 한다. 어린 시절 엄마 코끼리와 떨어져 그렇게 인간의 노예로 평생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이걸 알면, 코끼리 타고 밀림 구경하고 싶은 마음이 싹 사라진다. 그런 코끼리는 그나마 다행이다. 험준한 밀림 산악을 누비며 통나무를 끌다 비참하게 생을 마감하는 코끼리도 수두룩하다.

경마장에선, 옆을 보지 못하게 눈을 가린 말들이 입에 거품을 물고 달리고 달린다. 말 등에 올라탄 기수는 쉼 없이 팔을 휘두르며 채찍질을 해댄다. 말발굽 소리와 함께 말 엉덩이에 내리꽂히는 채찍질 소리가 인간의 환호성과 뒤엉킨다. 사람들은 어느 말이 몇 등으로 들어왔는지에만 관심이 있지, 어느 말이 몇 대의 채찍질을 당했는지 모른다. 그걸 알려고 하는 사람도 없고, 알 필요도 없다. 말은 그렇게 매번 달릴 때마다 엉덩이에 불이 난다.

그런데 이 말 못하는 말이라고 함부로 때려서는 안 된다. 인간에게 인격권이 있듯, 동물에게도 동물권이라는 게 있기 때문이다. 경주마를 하도 두들겨 패니까, 이를 보다 못한 뜻있는 사람들이 들고 일어났다. 영 못 때리게 할 수는 없고, 때리는 횟수만이라도 줄이자 해서, 그렇게 하자 했다. 결승점 400미터를 앞두고서는 20번 넘게 못 때리도록 했다. 채찍에는 패드를 붙여 덜 아프도록 했다. 그게 2012년 1월의 일이다.

그런데 이게 지켜지지 않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 때렸다. 더 때리는 걸 과다부당채찍이라고 하는데, 이걸로 인한 과태료가 6배나 늘었다. 더 때린다고 해서, 때리는 사람이 아픈 것도 아니고, 더 때려 벌금 내는 것보다 이겨서 상금 받는 게 훨씬 남는 장사이기 때문에, 때리고 또 때리는 것이다. 말 못하는 말의 고통은 날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 경주마 이야기다.

알고 보니 우리나라 말들이 제일 불쌍한 축에 들었다. 우리나라 경주마들은 결승점 400미터 전까지는 채찍질 제한도 없다. 결승선 400미터부터 그나마 20번만 때리게 됐다. 영국은 출발부터 결승선까지 7번, 프랑스는 6번만 할 수 있고, 호주는 결승 전방 100m까지만 모두 5번 채찍질을 할 수 있다. 많이 때린다고 더 잘 달린다는 근거도 없다. 훨씬 덜 맞는 영국의 말들이 우리나라 말들보다 1200미터 기록이 2초나 앞선다고 한다. 더 때린다고 더 잘 달리는 게 아니라, 잘 달리는 품종이 따로 있다는 것이다.

어린 코끼리의 등을 쇠꼬챙이로 찌르고, 앳된 송아지의 코를 뚫어 코뚜레를 꿰고, 낙타의 말에 재갈을 물리고, 달리는 말의 엉덩이에 채찍질을 가하는 것은, 인간이 제 욕심 때문에 짐승을 순종케 하려는 것이다.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치더라도, 그건 어디까지나 인간과 동물 간의 이야기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는 그래서는 안 된다. 꽃으로도 때리지 마라 했다. 정말, 그래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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