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우 작가/문화칼럼니스트

 

‘임진록’은 조선 중기 인조(仁祖, 1595~1649) 임금 즈음 나온 것으로 추정된다. 임진왜란 이후 전국 각지에서 전해 오던 이야기들을 모은 것으로, 전쟁이 일어난 배경과 전개 과정, 전쟁 이후의 수습 과정 등이 기록돼 있다. 이순신, 권율, 사명대사 등 전쟁에서 활약한 인물들의 이야기도 담겨 있다. 내용과 형식면에서 제대로 된 소설이라 보기는 어렵지만, 병자호란을 소재로 한 ‘박씨전’과 함께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전쟁 문학 작품으로 꼽힌다.

‘개 같은 오랑캐 만고의 원수로다’라는 노래를 부른 다음 왜장을 끌어안고 남강으로 떨어진 논개의 이야기며, 사명대사가 왜왕과 담판하러 일본으로 건너갔을 때 벌겋게 단 무쇠 막사에 갇혔으나 얼음 빙(氷) 자를 써 붙여 놓고 막사 안을 얼음으로 뒤덮게 했다는 이야기도 ‘임진록’에 나온다.

‘임진록’은 정쟁에 빠져 백성들의 삶을 살피지 않은 지배층과 왜놈들에 대한 적개심과 분노가 가득 담겨 있다. 때문에 조선시대는 물론 일제강점기에도 읽어서는 안 되는 금서였다. 백성들은 그러나 지배층과 왜놈들로부터 받은 고통을 이야기 속 주인공들을 통해 위안 받고 잃어버린 민족적 긍지와 자부심을 되찾고자 했을 것이다. 책을 읽지 못하는 일반 백성들 사이에서는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며 그 명맥이 이어졌다.

이순신 장군의 활약상은 ‘임진록’에서도 자세하게 기록돼 있지만, 18세기 말인 정조 때 더욱 부각됐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등 국가적 재앙의 교훈을 까맣게 잊은 양반 지배층은 여전히 하품 나는 성리학 타령을 하며 정쟁에 몰두하고 있었고, 백성들은 가렴주구와 학정으로 고통 받고 있었고 이 때문에 곳곳에서 봉기한다는 소문이 돌고 있었다. 정조는 중종반정이나 인조반정처럼 자신 역시 언제 위험에 처하게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시달렸다. 충성스러운 무신들이 필요했다. 무신들을 우대하고 군대양성에도 힘을 썼다. 이순신 장군의 글을 모아 책을 만들고 거북선 모형을 복원하는 등 이순신 장군 선양 사업도 펼쳤다.

19세기 말 일본의 침략이 노골화되고 마침내 일본에 나라를 빼앗기자 이순신 장군에 대한 이야기가 더 많이 돌았다. 사학자 등 뜻있는 사람들이 나서서 이순신 장군의 생애와 업적을 조명했고, 사람들은 삼삼오오 모여 이순신 장군이나 사명대사, 서산대사 이야기를 하며 왜놈들에 대한 적개심과 나라 잃은 분노와 슬픔을 달랬다. 해방 이후에도 왜놈을 물리친 위인들에 대한 이야기가 끊이지 않았고 그들에 관한 책과 영화들이 무수히 이어져왔다.

서울 한복판 광화문광장에는 이순신 장군 동상이 우뚝 서 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365일 한결같이 그 모습 그대로 광장을 지키고 서 있다. 광장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두 눈 부릅뜨고 지켜보고 있다. 천년만년 끄떡없을 것 같은 장군의 동상도 세월 앞에서는 어쩔 수 없었는지, 팔 년 전 겨울에는 한 달여 동안 다른 곳으로 옮겨져 수리를 받아야만 했다. 생애 처음으로 내시경 검사까지 받았다. 다시 멀쩡한 모습으로 돌아왔을 때, 국민들 마음이 좋았다.

서울시가 광화문광장을 새로 뜯어고치면서 이순신 장군 동상을 옳길 생각이 있다고 했다. 동상은 1968년 4월 27일 세워졌다. 올해로 만 51년이다. 정치적 상황과 상관없이, 늘 국민 곁에, 그 모습 그대로 당당하게 서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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