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우 소설가 문화칼럼니스트 우리나라 어느 대통령은 임기 후 사람들로부터 이런 칭송 아닌 칭송을 받았다. “그래도 그 양반, 깡패하고 물가는 확실히 잡았어!” 죄 없는 사람들까지 졸지에 깡패로 내몰려 곤욕을 치러야 했던, 참으로 야만의 세월이었던 것인데, 아무튼 깡패들의 수난 시대였던 것은 분명하다. 정의사회를 구현한다며 동네 깡패들을 보이는 대로 붙잡아 가서는 군부대에서 혹독하게 훈련을 시킨 것이 삼청교육대라는 것인데, 군복인지 죄수복인지를 입은 장정들이 단체로 통나무를 들고 내리는 장면을 담은 뉴스 화면이 등장하기도 했다. 내막
전경우 소설가 문화칼럼니스트 옆집 사는 초등학교 5학년 개구쟁이 녀석이 요즘 학교에 가기 싫다며 우는소리를 한다고 했다. 학교가 답답하고 재미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 녀석 담임이 여자 교사인데, 수업 시간이나 쉬는 시간은 물론 체육시간에도 아이들이 새색시처럼 굴지 않으면 엄청 혼을 낸다는 것이었다. 아뿔싸 듣고 보니 보통 일이 아니었다. 요즘 아들 키우는 부모들이 은근히 속을 태우고 있다. 남자아이를 초등학교에 보내면 졸업할 때까지 6년 내내 여자 담임만 만나게 된다며 볼멘소리를 한다는 것인데, 여자 선생님이 왜? 엄마들이 하는 소
전경우 소설가 문화칼럼니스트 독일의 사회학자 퇴니스(1855~1936)는 인간의 의지는 본질의지와 선택의지 두 가지로 나눌 수 있고 그에 따라 두 가지 유형의 사회로 구분된다고 했다. 본질의지에 따라 만들어진 사회(게마인샤프트, Gemeinschaft)는 가족이나 친족 마을 같은 것으로 사랑과 우정 신뢰를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구성원 간의 자유롭고 즐거운 대화와 교류가 가능하다. 반면 선택의지에 의해 형성된 사회(게젤샤프트, Gesellschaft)는 계약과 협정 같은 것들을 바탕으로 한 회사 도시 국가 정당 같은 것들이다. 각각을
전경우 소설가 문화칼럼니스트 ‘최종병기 활’은 올해 국내 영화 중 가장 많은 관객을 끌어모은 블록버스터다. 좌절을 딛고 원수를 갚는, 만화나 무협지에서 늘 보아왔던, 맥락에서 보자면 별다를 게 없는 스토리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그러한 텍스트의 원칙에 충실함으로써 극적 완성도를 높일 수 있었다. 사람들은 대개 본성이 선해서인지 선한 것이 이긴다는 사실에 안도하는 경향이 있다. 비록 영화 같은 허구의 세상일지언정, 악한 존재가 선한 존재로부터 응징당하고 마침내 선한 존재가 승리하는 걸 보면, 선한 것에 대한 믿음이 생기고 마음
전경우 소설가 문화칼럼니스트 ‘내게 거짓말을 해봐’라고 하면, 젊은 친구들은 “아 에스비에스에서 방송한 드라마, 거 왜 윤은혜의 패션이며 헤어스타일이 짱 인기였잖아”라고 말할 것이다. 원래는 그게, 1996년에 발표된 소설인데 내용이 몹시 음란하다 하여 작가는 감방에 갇히고 출판사는 책방에 깔린 책들을 모조리 회수하여 폐기처분해야 했던, 그야말로 화제작이었다. ‘내게 거짓말을 해봐’는 영화로도 만들어졌는데 모자이크 처리된 장면이 숱하게 나왔지만(?) ‘19금’이었고, 영화를 보고 나온 여성 운동가 중에는 방송 카메라 앞에서 침을 뱉
전경우 소설가 문화칼럼니스트 요즘 KBS 2TV ‘개그 콘서트’가 볼 만하다. 다른 방송사의 순수 개그 프로가 아예 사라지거나 별 흥미를 끌지 못하는 사이 ‘개그 콘서트’만은 그야말로 승승장구다. 어디서 그런 아이디어가 나왔나 싶을 정도로 기발하고 재치 넘치는 코너들이 이어진다. 뭘 먹을까 고민할 필요 없이 그저 잘 차려진 밥상에 코를 박고 맛있게 먹기만 하면 되는, 개그의 진수성찬이라 할 만하다. ‘애정남’이란 코너는, 애정이 넘치는 남자란 뜻으로 이해되지만 ‘애매한 것을 정해주는 남자’다. 남녀 간의 연애와 관련된 ‘애매한’ 문
전경우 소설가 문화칼럼니스트 불교에선 생로병사(生老病死), 즉 태어나 늙고 병들고 죽는 것을 인간이 반드시 겪어야 할 네 가지 고통이라 했다. 짧고 무딘 생각으로는, 태어나는 것이야 내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절로 이뤄진 것이라 그게 고통인지 모르지만 늙고 병들고 죽는 것은 온몸으로 겪어야 할 피할 수 없는 고통임에 틀림없다. 어린 시절에는, 늙는다는 것이 도무지 실감이 나지 않을 뿐 아니라, 백발 성성한 노인들을 보면 저 나이에도 살고 싶을까 하는 생각까지 들게 마련이다. 하지만 세월이란 게 가혹하여 홍안의 청년이 순식간에 깊은 주
전경우 소설가 문화칼럼니스트 국민 코미디언이라 할 만한 심형래 씨가 이끌던 영화 제작사 영구아트가 사실상 문을 닫았고, 거기서 일하던 직원들이 밀린 임금을 받게 해 달라며 진정서를 냈다는 소식이다. 대한민국 대표 코미디언에서 한국형 SF 영화의 선구자로 변신, 이름을 드날리던 심 씨가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전직 대통령이 골목길에서 기자회견을 한 것에 대해 염치가 없다느니 뻔뻔스럽다니 비난과 조롱이 퍼부어진 적이 있는데, 영구아트 전 직원들은 공터에서 기자들에게 자신들의 어려운 처지를 하소연했다. 전직 대통령의 골목길 기
전경우 소설가 문화칼럼니스트 대구에서 열리고 있는 세계육상선수권대회를 가까이서 지켜보고 있다. TV로만 보아왔던 경기를 현장에서 생생하게 접할 수 있게 된 것인데, 세계 각국에서 모인 선수들의 이런저런 모습을 보면서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된다. 첫날 아프리카 케냐는 아침에 벌어진 대회 첫 경기인 여자 마라톤에서 금, 은, 동메달을 싹쓸이한 데 이어 저녁에 벌어진 만 미터 결승에서도 1, 2, 3위를 독식, 그날 치 메달을 모두 휩쓸어갔다. 그야말로 케냐는 잔칫날이었다. 공식 기자회견장에서는 선수들의 심정이나 앞으로의 계획 등을 묻게
전경우 소설가 문화칼럼니스트소설가 N군이, 대구에서 세계육상선수권대회가 열린다는데, 구경 한 번 가야겠다고 했다. 하면, 어느 날 가는 게 좋을까 의논을 하게 되었다. 세상에서 가장 빠른 사나이 우사인 볼트가 과연 세상에서 가장 빨리 달리는지, 눈으로 직접 확인해 보는 게 어떠냐는 의견이 먼저 나왔다. N군은 다른 사람의 생각이 어떠한지 알아봐야겠다며 여기저기 전화를 해댔다. N군이 내린 결론은 이러하였다. 동행할 만한 사람 몇에게 물어보았더니, 세상에서 가장 빠른 사나이에는 전혀 관심이 없으며, ‘미녀 새’가 과연 아름답게 날아오
전경우 소설가 문화칼럼니스트 일본의 개화기 사상가 후쿠자와 유키치는 1885년 3월 16일자 시사신보(時事新報)에 기고한 ‘탈아론(脫亞論)’을 통해, 일본은 아시아를 벗어나 서구 사회를 지향해야 한다는 탈아입구(脫亞入歐)론을 펼쳤다. 그는 동양을 향해 불어오는 서구화의 바람을 받아들여야 하며 이것이 곧 문명화의 길이며 그 과정에서 가장 핵심적인 것이 바로 아시아를 벗어나 서구사회로 나아가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특히 일본은 이미 정신적으로 아시아를 벗어났지만 이웃나라인 중국과 한국은 개혁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있다고 조롱했다.
전경우 소설가 문화칼럼니스트 일본 사람들은 남에게 메이와쿠(迷惑), 즉 폐 끼치는 것을 싫어한다. 아무리 불쾌하고 기분 상하는 일을 당하더라도 면전에 대놓고 화를 내거나 함부로 말하는 것조차 꺼린다. 당연히 화를 내야 할 상황에서도 극도의 자제심을 보이는 것은, 그렇게 하는 것이야말로 폐를 끼치지 않는 것이라 여기는 것이다. 지난 3월 뜻하지 않은 쓰나미로 국가적 재앙을 당하고서도 침착한 모습을 보여 과연 일본인답다, 일본의 저력은 바로 저것이다, 그것은 바로 오랜 세월 그들이 금과옥조처럼 여겨온 메이와쿠 문화 덕분이라며 우리는 입
전경우 소설가 문화칼럼니스트 세종대왕이 한글을 만든 건, 우리말이 중국과 다른데도 우리글이 없어 불편을 겪는 백성들을 가엽게 여겼기 때문이다. 세종의 백성 사랑하는 마음도 그러하지만 한글이야말로 세상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는 실로 과학적이고 쓰기 좋은 글이라는 데 딴소리할 사람은 없다. 그런데 요즘 논란이 되고 있는 사이시옷 규정을 보고 있노라면, 한글을 연구하고 관련법을 만드는 사람들이 세종의 뜻을 제대로 헤아리고 있는지 의아해진다. 쓰기에 불편함이 없도록 해 백성들이 행복해지라고 만든 한글을 왜 이 모양으로 배배 꼬아서 사람
전경우 소설가 문화칼럼니스트 고대 올림픽의 발상지 그리스 아테네에 가면 당시의 모습대로 복원된 올림픽 경기장을 만날 수 있다. 말발굽 모양으로 생긴 이 경기장에서 고대 아테네 남성들은 발가벗은 채 경기를 펼쳤다고 한다. 여성들은 관람조차 허용되지 않은 남성들만의 공간이었다고 한다. 여기에 가면 재미난 조각 작품 하나를 만날 수 있다. 사각 기둥 모양의 대리석 양쪽에 수염을 휘날리는 노인과, 혈기가 넘치는 청년의 얼굴이 각각 새겨져 있다. 놀랍게도, 노인과 청년의 얼굴 아래 부분에 남자의 성기가 도드라져 있다. 매우 사실적으로 조각된
전경우 소설가 문화칼럼니스트 1971년 미국 스탠포드 대학의 심리학자 필립 짐바르도 교수는 아주 별난 실험을 했다. 멀쩡한 사람들을 감옥에 가두고 한 쪽은 간수로, 또 다른 그룹은 죄수로 생활하게 하고 이들을 관찰하기로 한 것이다. 참가자들은 그것이 실제 상황이 아닌 실험이라는 것을 분명 알고 있었고 평소 심신이 건강한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실험 결과는 놀라웠다. 시간이 흐르면서 간수 역할을 맡은 사람들이 폭력적으로 변하기 시작했고 간수와 죄수 역할을 맡은 사람들 사이에 극심한 갈등이 빚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원래 실
전경우 소설가 문화칼럼니스트 머리 나쁜 사람을 새나 닭의 머리에 비유하기도 한다. 새나 닭이 들으면, 왜 하필 우리냐며 펄쩍 뛸지 모를 일이지만, 아무튼 그렇다. 그런데, 이 닭이란 동물이 머리만 나쁜 게 아닌 모양이다. 닭은 무리를 지어 산다. 그런데 무리 중 한 놈이 상처가 나 피를 흘리게 되면, 나머지 모두가 약속이나 한 듯 달려들어 상처 부위만 집중 공격한다. 만약 제때 무리들로부터 떼어 놓지 않으면 죽음을 면키 어렵다. 털 하나 없이 발가벗겨진 채 튀겨져 우리들의 입을 즐겁게 하는 ‘치킨’이 이처럼 잔혹한 동물이라는 것이다
전경우 소설가 문화칼럼니스트 ‘완전식품’이라던 농심 신라면 블랙 광고가 ‘완전 어이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가장 이상적인 영양균형’을 갖추었다는 선전이 허위 과장이었다는 것이다. 1억 5500만 원의 과징금이 부과됐지만 출시 이후 벌어들인 160억 원에 비하면 새 발의 피다. 시정하라고도 했지만 광고의 일부 문구만 바꾸었을 뿐이고, 가격도 내리지 않았다. 사람들이 ‘국민도 속고 나도 속았다’며 뜨거운 기운을 뿜어내고, 블랙이라고 하더니 알고 보니 농심 사람들 속이 블랙이라며 욕을 해대기도 하지만, 농심은 그러거나 말거나, 다. 라
전경우 소설가 문화칼럼니스트 최근 KBS의 인기 아나운서가 외부 상업 행사 사회를 본 것이 알려져 논란을 빚었다.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광고나 행사 등에 참여할 수 없도록 한 KBS 규정을 어겼다는 것이다. KBS는 그러나,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것은 사실이지만 실정법 위법은 아니기 때문에 징계 등의 조치는 취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일은 ‘아나운서가 엔터테이너화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것이라 해명하고 재발 방지를 약속했다. 이번에 문제를 일으킨 아나운서는 ‘아나운서의 한계가 어디인지 모를 정도’라는 찬사를 들으며 종횡무진
전경우 소설가 문화칼럼니스트최근 한국의 팝 그룹들이 파리의 팬들을 녹였다는 소식이다.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샹송의 나라 프랑스의 국민들이 대한민국 대중음악에 열광했다는 사실이, 2002년 월드컵에서 대한민국이 4강에 오른 만큼이나 놀랍고 신기하다. 한류가 일시적인 유행으로 그치지 않을까, 우려도 없지 않았지만 그 기세가 더욱 거세지고 있다. 한류는 이제 드라마나 영화, 음악 등 대중문화뿐 아니라 음식이나 자동차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전 방위로 퍼져나가고 있다. 치밀하고 장기적인 준비와 집중적인 투자 등이 한류의 성공 요인으
전경우 소설가 문화칼럼니스트 햇볕이 따갑게 내리쬐던 날, D시의 시립미술관을 찾았다. 몇백억 원의 공사비를 들여 건립했다는 미술관이 마침내 문을 열었으며 그것을 기념하기 위해 마련한 전시회가 평소 보기 힘든 걸작들로 꾸며졌으니 많이 와서 구경하라는 소식을 들었던 것이다. 전시된 작품들은 미술관의 자랑대로 수준이 높았고 지역 주민들에게는 모처럼 문화적 향취를 누릴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하지만 관람객을 위한 배려는 부족해 보였다. 작품마다 제목과 작가, 재료, 제작 시기 등을 알려주는 안내표지를 하지 않았다. 대신 작품 배치도를 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