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우 소설가 문화칼럼니스트 훈련병 시절이었다. 저녁 식사가 끝나면, 키가 작고 목이 짧긴 하였으나 발길질과 욕설만큼은 실로 무지막지한 분대장이 소리쳤다. “의무실 갈 훈련병 있으면 앞으로 나와!” 그러면, 아파도 아프다 소리 못 하고 하루 종일 굴렀던 훈련병들이 앞다퉈 환자 대열에 합류했다. ‘환자’들이 줄을 맞춰 의무실로 향했다. 비록 환자라고 하나 엄연히 군기를 따라야 했으므로 앞과 뒤, 오른쪽 왼쪽 줄이 반듯해야 하고 행진 중 군가도 빠지지 않았다. 상의 왼쪽 주머니에 꽂힌 숟가락 대가리가 저녁 햇살에 반짝였다. 반찬을 찍어
전경우 소설가 문화칼럼니스트 ‘레이디 퍼스트’란 말이 있다. 숙녀 먼저란 뜻일 텐데 대한민국 남성들 대개는 이 말을 귓등으로 들어왔다. 무슨 말인지는 알겠으나, 이 말 속에 감춰진 참된 의미를 알려고 애쓰거나 그 뜻을 새겨 생활 속 지침으로 삼으려 노력한 적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레이디 퍼스트란 말은, 아이와 여성들을 낮춰보는 시각에서 비롯됐다는 주장도 있다. 여자와 아이들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없으므로 남자 어른들이 알아서 챙겨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하므로, 레이디 퍼스트란 단어의 함의는 결코 아름다운 게 아니다.
전경우 소설가 문화칼럼니스트 얼마 전 세계적인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박사가 천국이나 사후 세계는 죽음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을 위한 동화일 뿐이라고 말했다는 뉴스가 떴다. 그는 “뇌는 부속품이 고장 나면 작동을 멈추는 컴퓨터다. 고장 난 컴퓨터를 위해 마련된 천국이나 사후 세계는 없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기사를 읽고 나니 “뻔한 소리를 왜 했지?” 싶으면서도, 정말 천국이라는 것이 없다고 하면 섭섭해 할 사람들 또한 많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인생이 유수 같으며 또한 무상하다는 마당에, 천국이나 사후 세계마저 없다고 하면 우리 삶
전경우 소설가 문화칼럼니스트 신화가 생각났다. 이야기는 이러하다. 올림포스의 신 아폴론은 활을 잘 쏘았다. 아프로디테 즉 비너스의 아들 에로스도 활을 잘 쏘기로 유명했다. 맞기만 하면 사랑의 감정에 활활 타오르는 화살을 쏘는 것이었는데, 사람들은 요즘도 사랑에 빠지면 큐피드의 화살에 맞았다고 한다. 큐피드가 곧 에로스다. 에로틱하다는 것이 에로스에서 나온 말이니, 사랑이란 곧 관능이란 말. 하여튼 그러했는데, 아폴론이 보기에 에로스의 활이 우습고 같잖았다. 활 같지도 않은 활이라고 대놓고 비웃자, 에로스는 화가 났고 모욕감에 몸을
전경우 소설가 문화칼럼니스트 또 때렸다는 소식이다. 여교사가 남학생 제자의 뺨을 마구 때리고 급소를 걷어차는가 하면, 대학교에선 선배라는 자들이 후배들을 집합시켜 놓고선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구실을 들이대며 폭력을 휘둘렀다. 충격적이었다. 여교사가 아이의 뺨을 집요하게 두들겨 패고 제 분에 못 이겨 발길질하는 모습도 그러했지만, 명색이 대학생이라는 자들이 조직폭력배들처럼 각목을 휘둘러 후배들의 엉덩이를 내려치고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을 내뱉으며 앞뒤가 맞지 않는 소리로 훈계를 해대는 모습에 말문이 막혔다. 백번 듣는 것보다 한 번
전경우 소설가 문화칼럼니스트 KBS는 좋겠다. 오랫동안 공을 들여왔던 방송수신료 인상이 마침내 이뤄지게 됐으니 말이다. 여당이 앞장서고, 겉으로는 “안 된다”며 인상을 쓰던 야당도 속으로는 대세를 거슬러서는 안 되겠다고 작심한 게 분명하다. KBS에 밉보여 좋을 거 하나 없다는 걸, 정치하는 그들이 모를 리 없다. 수신료라는 게 전기세와 함께 납부 고지가 돼 KBS를 보지 않는 사람은 말할 것도 없고 집에 아예 TV가 없는 사람들도 꼼짝없이 내야 되는 준조세여서, 억울하다는 이들도 많다. 그렇잖아도 물가가 너무 올라 먹고 살기 힘들
전경우 소설가 문화칼럼니스트 몇 해 전 어느 명문 과학고를 방문한 적이 있다. 그 학교 학생들은 머리가 좋기도 하지만 다른 학생들보다 더 열심히 공부한다고 교사들이 입을 모았다. 그 어렵다는 과학고에 들어간 게 타고난 머리 때문만은 아니라는 말이었다. 교장은 학생들 상당수가 다른 학교 학생들에 비해 키가 조금 더 작다고 귀띔해줬다. 학생들이 초등학생 시절부터 밤잠을 설쳐가며 공부한 탓에 또래들보다 키가 좀 덜 자란 것 같다고 했다. 성장호르몬이 듬뿍 나오는 심야 시간에 책과 씨름하느라 키가 클 여력이 없었다는 것인데, 비록 키가 좀
전경우 소설가 문화칼럼니스트 내 어릴 적 소원 중 하나는 일본이 지진으로 바다 속으로 가라앉는 것이었다. 학교 선생님은 일제 강점기 시절 일본과 일본인들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설명해 주었고 만화책이나 TV 드라마에도 나쁜 짓을 일삼는 일본인들의 모습을 보는 게 어렵지 않았다. 그래, 내 마음 속에는 일본과 일본인에 대한 분노와 적개심이 움텄고 일본이 지진으로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본 것이다. 그런 황당하지만 간절한 소망을 가진 아이는 비단 나뿐만 아니었고 김일이 박치기로 일본의 자이언트 바바를 때려눕히거
전경우 소설가 문화칼럼니스트 배고픈 여우가 있었다. 마침 시냇가에 죽은 물고기 한 마리가 눈에 띄었다. 여우는 허겁지겁 먹어치우기 시작했다. 뼈를 발라낼 틈도 없이 통째 물고기를 집어 삼켰다. 물고기를 꿀꺽 삼키는 순간, 목구멍이 찌릿해지고 숨이 막혀왔다. 가시가 걸린 것이다. 여우는 캑캑거리며 바위에 올라 뛰어내려도 보고 물을 벌컥 벌컥 마셔보기도 했지만 가시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우리는 안다. ‘목구멍에 걸린 가시처럼’이란 말이 무슨 뜻인지. 아무튼 그렇게 여우가 몸부림을 치고 있는데, 마침 황새 한 마리가 곁을 지나고 있었다
전경우 소설가 문화칼럼니스트 동백섬에 봄 햇살이 쏟아지고 있었다. 동백섬에는, 동백나무가 지천이었고 동백꽃이 앞다퉈 피고 있었다. 계절이 심술을 부렸지만 섬에는, 이미 봄이 와 있었다. 남도가 늘 봄과 함께 제 소식을 알리는 까닭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동백섬은 섬이었으나 오랜 세월 퇴적 작용으로 육지와 이어졌다. 해운대 해수욕장의 백사장에서 바다를 바라보고 서면, 오른쪽으로 동백섬이 보인다. 옛날에는 해운대라는 곳이 한갓진 곳이어서 여름철 해수욕 철에나 사람들로 붐볐고, 동백섬을 찾는 이들도 바닷바람 쐬러 부러 멀리서 찾아 온 외
전경우 소설가 문화칼럼니스트 그때 내가 교회에 간 것은 순전히 선물 때문이었다. 크리스마스가 되면 교회에선 필통이나 연필 같은 선물을 나누어 주기도 했고 평소 구경하기 힘든 과자나 사탕을 얻어먹을 수도 있었다. 물론, 크리스마스 때 느닷없이 등장하면 너무 속보였으므로 12월 초쯤부터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었다. 코흘리개 철부지였을망정 그 정도 눈치코치는 있었다. 크리스마스 때 교회는 참 아늑하고 평화로웠다. 익숙하지 않은 찬송가를 따라 부를 때는 왠지 어색한 기분에 교회 천장을 쳐다보기도 하고 기도를 할 때는 언제 끝나나 생각하며 옆
전경우 소설가 문화칼럼니스트 얼마 전 배우 현빈의 군 입대 소식이 화제였다.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는 그가 군대에서도 가장 ‘빡세다’는 해병대에, 그것도 4대 1이 넘는 경쟁률을 뚫고 동기생 중 가장 많은 나이로 입대했다 해서 주목을 받은 것이다. 그가 훈련소에 들어가는 날, 일본 등 해외에서까지 팬들이 모여들어 국경을 넘어선 그의 인기를 실감케 했다. 팬들에게 큰 절 한 번 하고 돌아서 들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콧날이 시큰했다고 했다. 군대를 다녀 온 남성들은 특히 그런 그의 심정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기에 절대
전경우 소설가 문화칼럼니스트 “텔레비전에 내가 나온다면 정말 좋겠네~ 정말 좋겠네. 춤추고 노래하는 예쁜 내 얼굴~” 어린 아이들이 부르는 이런 노래가 있다. 천진난만한 어린 아이들이 텔레비전에 나와서 예쁜 짓을 하는 자신의 모습을 그려보는 즐겁고 유쾌한 노래다. 그런데 이 노래를 인생의 주제가처럼 부르고 다니는 어른들도 많다. 어떻게 하면 텔레비전에 한 번 나올 수 있을까, 온갖 궁리를 다하는 것인데 정치인에서부터 장사를 하는 사람까지 계층과 부류를 가리지 않는다. 일반인들 중에서도 텔레비전에 한 번 나가 보는 게 평생소원인 사람
전경우 소설가 문화칼럼니스트 봄이다. 마침내 봄이, 왔다. 혹독한 계절이 가고 마침내, 희망과 생명의 계절이 왔다. 봄이야 말로 청춘 그들의 계절이다. 봄이면, 대학 캠퍼스로 달려가고 싶었던 때가 있었다. 그것도 다 옛날이야기다. 상상도 가당찮은, 노쇠의 시기에 접어든 탓일 게다. 봄 햇살 쏟아지는 캠퍼스 풍경 속으로 녹아들 때, 그 때가 어쩌면 절정의 시기일지 모른다. 살아보니, 그러하다. 그렇다고 무작정 행복한 것만은 아니다. 청춘은 청춘대로 짊어져야 할 삶의 무게가 따로 있는 까닭이다. 누구는 가슴 가득 자부심을 안고 학교로
전경우 소설가 문화칼럼니스트 서울대 음대 여교수의 제자 폭행 논란이 한창이다. 사건 당사자인 교수는 폭행 논란에 대해 도제식으로 이루어지는 수업 방식 때문이라며 매우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진상조사가 끝나면 진실이 밝혀지겠지만 도제식 수업이란 게 새삼 화제로 떠올랐다. 도제식(徒弟式) 수업이라 하면 중세 유럽의 수공업자 등이 특별한 기술이나 비법을 일대일 교육을 통해 전수해 주던 것과 비슷한 방식으로 이뤄지는 수업일 것이다. 폭행 논란에 휩싸인 여교수의 항변에서처럼 우리 예술계 대학들에서도 중세 유럽처럼 도제식 수업이 이루어지고 있는
전경우 소설가 문화칼럼니스트 “빵이 없으면 과자를 먹으면 되지!” 솜털 보송한 시절, 프랑스 대혁명 때 마리 앙투아네트라는 왕비가 글쎄 배고파 울부짖는 백성들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는구나, 하고 선생님께서 말씀하시는 순간, 어린 내 가슴에 뜨거운 김이 확 올랐다. 그 전에는 좀체 느껴보지 못한 희한한 감정이었다. 속이 마구 울렁거리는 것도 같았고 약간 슬픈 것도 같았고 로봇 태권 브이 생각도 했던 것 같기도 하다. 그 이후 나는 마리 앙투아네트라는 여자가 우리나라로 치면 이순신을 모함한 원균이나 콩쥐를 못살게 구는 팥쥐와 그녀의 엄마
[천지일보=송범석 기자] 아이를 가르치는 방법을 담은 책들이 수없이 쏟아져 나온다. 온갖 방법이 들어 있지만 여간해서는 내 아이에게 꼭 맞추기가 힘들다. 아이들마다 환경과 재능, 그리고 기질과 성향이 다르기 때문이다. 다른 아이에게 가르쳐서 좋은 효과를 거뒀더라도 정답이라고는 할 수 없다. 이런 이유로 저자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교육열이 높다는 서울 강남구 대치동 엄마들의 자녀 교육법을 살펴본다. 그들의 교육 방식이 참고할만한 가치가 있을 거라는 맥락에서다. 대치동의 교육 방법은 우리의 선입관과는 많이 다르다. 대치동 엄마들은 아이가
전경우 소설가 문화칼럼니스트 덩치 값 못한다는 말이 있다. 누가 처음 한 말인지, 잘도 만들었다. 프로야구 롯데 자이언츠 하는 짓을 보면, 아하 이럴 때 쓰는 말이구나 싶다. 지난해 도루를 제외한 타격부문 7관왕, 9경기 연속 홈런이라는 어마어마한 기록을 세우고 골든글러브와 최우수선수상을 거머쥔 대한민국 간판타자 이대호 선수와의 연봉 협상에서 롯데는 그 이름 자이언츠, 즉 거인에 전혀 걸맞지 않은 소인배 행태를 보였다. 한국야구위원회(KBO) 조정으로 6억 3000만 원으로 결정이 났는데, KBO라는 게 구단의 편을 들 수밖에 없는
전경우 소설가 문화칼럼니스트 미안하지만, 캄보디아 이야기 한 번만 더 하자. 캄보디아에 들어가려면 그 쪽 공항에서 비자를 받아야 한다. 앙코르 와트로 유명한 시엠립 공항에서도 비자 발급 업무를 한다. 관광 목적이면 비자 발급료가 20달러다. 그런데 사람들은 모두 21 달러를 내야만 했다. 비자 발급료 20달러 외에 추가로 지불해야만 하는 1달러는, 알고 보니 일종의 급행료였다. 1달러를 주면 애 먹이지 않고 빨리 비자를 내 준다는 것이었다. 1달러 그까짓 것, 하는 사람도 있지만 기분 나쁘다는 사람들도 많다. 이 급행료 1달러는 유
전경우 소설가 문화칼럼니스트비행기가 착륙할 청주의 기온이 영하 16도라는 기내 방송을 듣는 순간, 온몸이 오싹해졌다. 캄보디아 출장에서 돌아오는 길이었다. 과연, 공항의 새벽 공기는 차가웠으며 칼바람이 세차게 따귀를 후려쳤다. 정신차렷! 새벽 찬바람이 뺨을 후려치자 번쩍 정신이 들었다. 퍼뜩 든 정신으로, 달렸다. 찬바람에 얻어터지지 않으려면, 달려야 했다. 어둠 속에서 택시들이 줄 지어 서 있었다. 우리는 ‘공정’한 사회의 일원으로서, 맨 앞에 서 있는 택시를 향해 달렸다. 달린 다음, 택시의 뒷트렁크를 두들겼다. 찬바람이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