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우 소설가 문화칼럼니스트
일본의 개화기 사상가 후쿠자와 유키치는 1885년 3월 16일자 시사신보(時事新報)에 기고한 ‘탈아론(脫亞論)’을 통해, 일본은 아시아를 벗어나 서구 사회를 지향해야 한다는 탈아입구(脫亞入歐)론을 펼쳤다.

그는 동양을 향해 불어오는 서구화의 바람을 받아들여야 하며 이것이 곧 문명화의 길이며 그 과정에서 가장 핵심적인 것이 바로 아시아를 벗어나 서구사회로 나아가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특히 일본은 이미 정신적으로 아시아를 벗어났지만 이웃나라인 중국과 한국은 개혁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있다고 조롱했다. 심지어 이 두 이웃나라의 유교적 가르침은 위선적이고 뻔뻔하다고 했다.

한 술 더 떠, 그는 서구인들은 일본 중국 한국을 같은 문화를 가진 비슷한 나라로 생각하는데 이건 일본에 걸림돌이 될 뿐이라고 했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못을 박는다. 나쁜 친구를 사귀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에게 좋지 못한 인상을 주기 때문에 일본은 이웃의 나쁜 아시아 나라들과 관계를 끊어야 한다.

메이지 시대 일본인들은 그의 주장에 눈물을 흘리며 감동했고 그들의 눈에 우리나라는 아는 척해서 하나 좋을 것 없는, 친하게 지내면 ‘쪽팔리는’ 나라였던 것이다. 그래, 마침내 이 나쁜 이웃을 36년간 짓밟았다.

우리를 나쁜 이웃이라고 주장한 지가 백 년이 훨씬 지났지만 그들의 잠재의식 속에는 이 나쁜 이웃은 여전히 나쁜 이웃일 뿐이다. 미국과 동맹하고 서구사회 앞에선 머리를 조아리면서도, 이웃나라 대한민국에게는 여전히 오만하고 무례할 뿐 아니라 염치가 없다. 그들에게 우리는 여전히 나쁜 이웃이기 때문이다.

숙명적으로 이웃으로 살아왔지만 결코 친하게 지내서는 안 되는 ‘나쁜 이웃’이 요즘 기세가 등등한 반면 자신들은 경제적인 상황 등 여러 면에서 부진하고 위축되는 형편이어서 그런지 ‘나쁜 이웃’을 대하는 태도가 한심하다.

얼마 전 여자 격투기 선수인 임수정이 일본 방송 TBS <불꽃체육회 TV 복싱대결>에 출연, 일본 남성 개그맨 세 명으로부터 폭행당한 것은 이웃을 대하는 그들의 의식과 태도를 상징하는 것처럼 보인다.

아무리 격투기 선수라고는 하지만 여자를 상대로, 남자 셋이서 돌아가며 더구나 30kg이나 더 나가는 남성이 한 달 전부터 실전 연습을 하고 죽기 살기로 ‘맞짱’을 뜬 건 졸렬하기 짝이 없다. 그게 애초 ‘진검승부’로 기획된 것이라고 하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아무런 보호 장비 없이 링에 오른 여자 파이터가 머리에 보호 장구를 뒤집어 쓴 거구의 남성이 휘두른 펀치에 두들겨 맞고 거침없는 하이킥에 나뒹굴어지는 모습을 본 일본의 시청자들이 통쾌하다며 박수를 쳐댔다면, 그건 분명 가학적 변태 취향이고 그런 끔찍한 성품에 소름이 돋을 지경이다.

일본의 풍속산업 중에 가학 피가학 변태 성행위를 테마로 한 클럽이 유행한 적이 있는데, 이 가당찮은 TV 프로 역시 그들의 잠재의식에 숨어 있는 그릇된 욕망과 맥을 같이 하는 건 아닐까.

한류를 반대한다며 도쿄 시내에서 데모를 하기도 했는데 ‘같은 문화를 가진 비슷한 나라’로 취급당하는 게 끔찍하게 싫은 ‘나쁜 이웃’의 문화 열풍에 대한 경계심과 굴욕감 때문일 것이라 생각하면 영 이해 못할 것도 아니다.

최근 일본에서 들려오는 소식들이 하나같이 옹색하고 낯간지럽다. 통 크게 웃어 넘겨버릴 수도 있지만, 도가 지나치면 큰 싸움이 될 수도 있고 예기치 못한 불행을 불러올 수도 있다. 그래, 웃는 낯으로 대하되 방심은 금물이다. 그게 불량 이웃에 대한 우리의 자세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