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우 소설가 문화칼럼니스트
최근 KBS의 인기 아나운서가 외부 상업 행사 사회를 본 것이 알려져 논란을 빚었다.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광고나 행사 등에 참여할 수 없도록 한 KBS 규정을 어겼다는 것이다.

KBS는 그러나,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것은 사실이지만 실정법 위법은 아니기 때문에 징계 등의 조치는 취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일은 ‘아나운서가 엔터테이너화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것이라 해명하고 재발 방지를 약속했다.

이번에 문제를 일으킨 아나운서는 ‘아나운서의 한계가 어디인지 모를 정도’라는 찬사를 들으며 종횡무진 활약해 왔다. 아나운서의 기본 업무랄 수 있는 뉴스 캐스팅에서부터 각종 예능 프로그램을 누비며 다재다능한 끼를 뽐내 왔다.

이제 세상은, 뉴스나 진행하는 딱딱하고 엄격한 이미지의 아나운서는 더 이상 필요하지 않으며, 아나운서란 개그맨과 연기자, 가수 등의 역할까지 해내는 그야말로 만능 엔터테이너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온몸으로 보여 준 셈이다.

예사롭지 않은 목소리에다 바른 말, 고운 말만을 골라 쓰는 반듯한 모습이 트레이드 마크였던 아나운서들이 엔터테이너로 본격 변신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IMF 이후 방송사 살림살이가 나빠지자 비용이 많이 들어가는 전문 MC나 예능인 대신 자사 소속 아나운서들을 예능 프로에 투입하기 시작한 것이다.

예능 오락 프로에서 밀려난 연예인들로부터 원성을 듣기도 하고 언론인으로서의 정도를 저버리는 처사라는 비난을 듣기도 했지만, 이제 엔터테이너로서의 자질이야말로 아나운서가 반드시 갖추어야 할 덕목처럼 여겨지고 있다.

MBC는 <우리들의 일밤-신입사원>을 통해 자사 신입 아나운서 공채 과정을 공개했다. 거기에 등장한 후보자들은 시종 오락적 재능을 드러내고 인정받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아나운서를 뽑자는 것인지 개그맨을 뽑자는 건지 알 수 없을 지경이었다.

만약 만능 엔터테이너를 선발코자 했다면 ‘종합예술인’ 홍서범을 심사위원장으로 앉혔어야 했다. 게다가 왜 ‘국민’들이 MBC 아나운서들을 뽑아야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래, 프로가 진행되는 내내 불안하고 불편했다.

어쨌거나 엔터테이너로서의 자질을 발휘하고 이 때문에 인기가 높은 아나운서는 각종 행사에 초청을 받거나 진행 제의를 받게 마련이다. 이번에 ‘물의’를 일으킨 KBS 아나운서도 평소 그런 제의나 초정을 수도 없이 받았을 것이다. 그중에는 ‘거절하기 곤란한’ 것도 있었을 것이고 제의나 초청을 받아들이는 것에 대해 크게 개의치 않았을 수도 있다.

이유야 어찌 됐건 규정을 어긴 것이 틀림없는 사실이고 더더욱 그가 국영방송의 녹을 먹는 공인이라면 처신에 특별히 신경을 써야 하는 것은 두말 할 나위가 없다. 특히 국가 위급 상황 시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한 방송을 해야 할 경우를 대비해서라도 아나운서들은 평소 신뢰를 쌓아두지 않으면 안 된다.

시대와 환경에 따라 각 분야 전문가들의 역할이나 기능도 변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어떤 분야든 그것의 기본적인 가치나 정신 같은 것은 변함이 없어야 한다. 아나운서는 엔터테이너이기에 앞서 언론인이어야 한다. KBS의 아나운서라면 더 말할 것도 없다.

‘춤추고 노래하고 웃기는’ 아나운서들에게 마냥 고운 눈길을 보낼 수 없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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