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우 소설가 문화칼럼니스트
불교에선 생로병사(生老病死), 즉 태어나 늙고 병들고 죽는 것을 인간이 반드시 겪어야 할 네 가지 고통이라 했다. 짧고 무딘 생각으로는, 태어나는 것이야 내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절로 이뤄진 것이라 그게 고통인지 모르지만 늙고 병들고 죽는 것은 온몸으로 겪어야 할 피할 수 없는 고통임에 틀림없다.

어린 시절에는, 늙는다는 것이 도무지 실감이 나지 않을 뿐 아니라, 백발 성성한 노인들을 보면 저 나이에도 살고 싶을까 하는 생각까지 들게 마련이다.

하지만 세월이란 게 가혹하여 홍안의 청년이 순식간에 깊은 주름 잡힌 맥 빠진 노인으로 변하게 하는데, 이때 비로소 사람들은 청춘이 아름다웠노라 한탄하게 마련이다.

사람들은 대개 손에 쥐고 있거나 곁에 있을 때는 모르고 있다가 잃고 나서야 그것이 얼마나 고맙고 가치로운 것이었던 것인지 뒤늦게 깨닫곤 한다.

청춘도 그러한 것이어서, 청춘 시절에는 그것이 버거워 차라리 ‘스킵’해 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심지어 목숨을 송두리째 던져 청춘의 짐에서 벗어나려 하기도 한다. 그래, 어떤 이는 다시는 청춘 시절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거나 중년 이후의 삶이 훨씬 여유롭고 좋다 말하기도 한다. 많이 아팠을 청춘시절을 생각하면 이해가 가고도 남는다. 하지만 많은 이들은, 스러져 간 청춘을 아쉬워한다. 눈부신 청춘들을 보면, 눈물이 나는 것이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이 있지만 사실 그것은 노인들을 위로하기 위한 수사일 뿐이고, 먹은 나이를 다시 토해낼 재간은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그것이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것일지언정, 나이를 비웃기라도 하듯 청춘처럼 씩씩하게 사는 모습을 보면 절로 박수가 짝짝 쳐지는 것 또한 인지상정이다.

요즘 KBS 2TV ‘해피 선데이-남자의 자격’이란 프로가 ‘청춘 합창단’이라는 주제로 끌고 가고 있는데, 여기서 청춘이란 역설적이게도, 까마득한 시절에 이미 청춘이 저물었던 오십 대 이후의 사람들이다. 그들이 노래를 통해 삶의 의미를 새롭게 일깨워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올드’들이, 나이 먹은 것도 서러운데 그것도 모자라 저마다의 가슴 아픈 사연이 있다. 사랑하는 남편을 먼저 떠나보낸 이, 암수술을 받았거나 신장 간 이식 수술을 받은 이, 외아들을 잃은 부부…. 비극적인 사연을 품은 이들이 청춘 합창단의 멤버가 되고 싶다며 오디션 문을 두드렸다.

사실 스토리는 뻔하다. 모진 삶이지만 그것에 굴하지 않고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것은 물론 공동의 목표와 조화를 위해 기꺼이 자신을 내려놓는 겸손함과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 등 우리들이 대개 선하고 아름답다고 하는 가치들을 고스란히 녹여 보여줌으로써 공감을 얻는 것이다. 그것이 설령 잘 짜여진 각본에 따른 의도된 연출이라 할지라도 보는 이의 마음을 얻어내는 데는 충분히 성공한 셈이다.

그간 ‘남자의 자격’이, 공동의 목표를 설정하고 출연진들이 그것을 이뤄내는 여러 과정들을 보여 주면서 시청자들로부터 많은 관심을 모았고 비교적 긍정적이고 우호적인 반응을 이끌어냈다. 사람들은 대부분 ‘진실’에 감동받는다는 아주 평범한 사실에 충실한 때문이다. 어쨌거나 ‘남자의 자격’이 이번에도, 청춘을 떠나 보낸 수많은 ‘청춘’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던져 주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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