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우 소설가 문화칼럼니스트
햇볕이 따갑게 내리쬐던 날, D시의 시립미술관을 찾았다. 몇백억 원의 공사비를 들여 건립했다는 미술관이 마침내 문을 열었으며 그것을 기념하기 위해 마련한 전시회가 평소 보기 힘든 걸작들로 꾸며졌으니 많이 와서 구경하라는 소식을 들었던 것이다.

전시된 작품들은 미술관의 자랑대로 수준이 높았고 지역 주민들에게는 모처럼 문화적 향취를 누릴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하지만 관람객을 위한 배려는 부족해 보였다.

작품마다 제목과 작가, 재료, 제작 시기 등을 알려주는 안내표지를 하지 않았다. 대신 작품 배치도를 담은 별도의 안내문을 나눠주었다. 이 때문에 관람객들은 계속 안내문을 들여다보지 않으면 작품을 감상할 수 없었다.

안내문에는 작품마다 번호가 매겨져 있었지만 실제 작품이 걸린 곳에는 번호표가 따로 붙어있지 않았다. 이런 탓에 퍼즐 게임하듯 실제 작품과 안내문의 작품이 일치하는지 일일이 맞춰 보지 않으면 안되었다.

함께 온 관람객들은 이게 맞네 저게 맞네 하며 목소리를 높였고 눈이 침침한 어른들은 아예 안내문을 들여다보지도 않았다. 처음에는 열심히 들여다 보다 얼마 못 가 안내문을 집어 던져버리는 관람객들도 많았다.
전시회가 열리고 있지 않은 쪽 입구 큰 유리문에는 미술관 공사를 하면서 돈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는 어느 업체의 호소문이 붙어 있었다. 모처럼 좋은 기분으로 미술관을 찾은 관람객들은 뜻밖의 볼썽사나운 모습에 불쾌해졌고 이런 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무심한 미술관의 태도에 혀를 찼다.

얼마 전 이 지역 신문은 이 도시 시민들이 식당에서 느끼는 가장 큰 불만이 종업원들의 무뚝뚝한 표정과 말투라고 전했다. 같은 말을 쓰고 같은 문화권에 속한 처지라 하더라도 식당의 불친절만큼은 도저히 참아 주기 어렵다는 것이었는데, 식당은 그렇다 치더라도 품격을 갖추었다는 미술관의 서비스 정신마저 식당 수준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은 짚어 볼 문제다.

그 이후 쉬는 날을 골라 경주를 찾았다. 책에서만 보아왔던 불국사며 다보탑과 석가탑, 석굴암 같은 귀한 것들을 아이에게 보여 주고 싶었다. 연휴라 그런지 고속도로 인터체인지를 벗어나 경주 시내로 들어서는 순간부터 자동차가 밀리기 시작했다.

불국사까지 가는 길은 그야말로 주차장이었고 불국사에서 석굴암까지, 평소 10분 정도면 가뿐하게 가는 길이 두 시간 넘게 걸렸다. 자동차들이 꼬리를 물었고 석굴암 근처에는 도로에 무단 주차한 차들 때문에 혼잡이 극심했다. 햇살은 따가웠고 사람들은 지쳤다.

석굴암 앞 식당에는 컵라면 쓰레기가 수북하게 쌓였고 허리 굽은 할머니들이 콩죽 같은 땀을 흘리며 국수 따위를 말아 팔고 있었다. 손님들은 기다리다 지쳤고 힘에 겨운 할머니들 모습에 속이 불편했다.

석굴암에 들어가려면 입장료를 내야 하는데, 신용카드로는 결제가 안 된다고 했다. 이 또한 무슨 해괴한 소리인가. 그러고 보니 유명 사찰에서 입장료를 받으면서 카드는 아니 되며 오로지 빳빳한 현금만 받겠다는 곳이 여기뿐만 아니었다. 이건 무슨 꼼수인가!

입구에는 석굴암이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이라고 자랑하는 현수막이 내걸려 있었지만 손님을 맞는 자세와는 어울려 보이지 않았다. 한참을 기다려 마침내, 부처님을 뵈었다. 실로 오랜만에 뵌 부처님이 반가웠고 대자대비한 미소에 그간의 고행(?)이 눈 녹듯 사라졌다.

돌아오는 길에, 우리들 모두가 좀 더 친절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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