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우 소설가 문화칼럼니스트
세종대왕이 한글을 만든 건, 우리말이 중국과 다른데도 우리글이 없어 불편을 겪는 백성들을 가엽게 여겼기 때문이다. 세종의 백성 사랑하는 마음도 그러하지만 한글이야말로 세상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는 실로 과학적이고 쓰기 좋은 글이라는 데 딴소리할 사람은 없다.

그런데 요즘 논란이 되고 있는 사이시옷 규정을 보고 있노라면, 한글을 연구하고 관련법을 만드는 사람들이 세종의 뜻을 제대로 헤아리고 있는지 의아해진다. 쓰기에 불편함이 없도록 해 백성들이 행복해지라고 만든 한글을 왜 이 모양으로 배배 꼬아서 사람들을 골탕 먹이는지 모르겠다 싶은 생각마저 들게 한다.

‘북어국’ ‘등교길’ 하던 것이 ‘북엇국’ ‘등굣길’ 따위로 표기되기 시작하면서, 처음이라 낯설어서 그렇겠지, 시간이 지나고 익숙해지면 괜찮아질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볼 때마다 어색하기 짝이 없고 글을 쓸 때도 사이시옷 규정 때문에 모니터에 빨간 줄이 그어지기 일쑤다.

그래, 사이시옷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제대로 알아나 보자 싶어 관련 정보들을 뒤져보니, 아이쿠 머리가 나빠서 그런지 도무지 알아먹을 수가 없다. 원래 법이라는 게 누구나 다 알기 쉽게 돼 있지 않고, 그 때문에 전문가들이 있는 것이고 그들이 밥 먹고 산다고는 하지만, 이건 좀 다른 문제다.

1988년 한글맞춤법이 개정되면서 사이시옷 규정이 바뀐 것인데, 그동안 무시되어 오다 최근 언론 등에서 규정에 충실한다며 전에 보지 못한 글들이 등장했다. 맞춤법이라는 건, 말이 법이지 잘못한 사람을 잡아 가두거나 벌을 주기 위한 게 아니라 일종의 방법이나 수단일 뿐이며 그래서 아예 없애버려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맞춤법을 없애느냐 존속시키느냐를 따지기 전에, 이 사이시옷 규정 때문에 멀쩡한 사람들이 제 나라 글도 제대로 쓸 줄 모르는 한심한 인간이 되고 있다는 걸 알아야 한다.

밥 먹고 한글만 연구하는 사람들이야 그게 직업이니까 아무리 복잡하고 까다로운 규정이라도 그걸 이해하고 활용하는 데 별 문제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보통 사람들 입장에선 그야말로 ‘귀신 씨 나락 까먹는’ 소리다. 일반인들을 상대로 사이시옷 규정에 관한 시험 문제를 내면 과연 몇이나 통과할까. 국어로 밥 먹고 사는 선생님들이나 작가들 중에서도 이걸 제대로 알고 쓰는 이가 얼마나 될까.

사이시옷이 들어가면서 원래 단어의 의미를 알 수 없게 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격한 소리를 내지 않도록 한다며 ‘관건’을 ‘관껀’이라 하지 않고 ‘관건’이라고 하거나 ‘효과’를 ‘효꽈’라 하지 않고 ‘효과’로 발음하도록 하면서 사이시옷을 넣어 된소리로 만드는 것도 이해하기 어렵다.

과학적이고 아름다운 우리말을 잘 다듬고 지키려는 마음으로 이 규정을 만들었다고 하면 이해 못할 것도 없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사이시옷 규정이 우리말을 망치고 있다. 당장 뜯어고쳐야 한다. 우리말과 글을 아끼고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의 생각이 그러하다면, 그렇게 해야 한다.

사이시옷 규정이야말로 당장 뽑아내야 할 우리말 우리글의 전봇대다. 이것도 대통령이 나서야 하나.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